미르의 전설

집 나가면 개고생 2

새 날 2017. 7. 16.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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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르가 대문이 열린 사이 집 밖으로 뛰쳐나가 버렸다. 물론 내가 현장에 있었다면 당장 쫓아가 어떡하든 녀석을 낚아채려 했겠으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주초 새벽의 일이다. 미르가 뛰쳐나간 그날 밤엔 장맛비가 억수로 퍼붓던 매우 궂은 날씨였다. 요란한 빗소리에 취해 잠이 들었을 정도다. 새벽이 되어서야 빗소리가 잦아진 듯싶었다. 난 꿈나라를 헤매고 있었다. 그런데 거실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미르가 없어졌단다. 이 말이 어떤 의미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 난 순간 잠이 달아남과 동시에 긴 한숨을 내쉬고 만다.


'옳거니, 또 다시 사단이 벌어진 게야' 


녀석이 집 밖으로 뛰쳐나가자마자 바로 뒤를 밟았다면 잡을 확률이 매우 높았을 텐데, 이미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었다. 귀소 본능 없이 오로지 앞만 보고 걷거나 달릴 줄 아는 녀석으로부터 일말의 기대를 건다는 건 결국 부질 없는 짓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녀석이 없어진 걸 인지한 그 시각이면 서식지로부터 벌써 수 킬로미터 이상을 벗어났음직하다. 


그동안 녀석이 집을 뛰쳐나간 횟수는 양손의 손가락 모두를 사용해야 할 정도로 제법 된다. 그럴 때마다 아주 애를 먹곤 했다. 무엇보다 걱정이었던 건 아무리 사람을 잘 따르며 좋아하는 성향이라 한들 덩치가 워낙 큰 녀석이라 누군가에게 민폐를 끼치는 일이 발생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었다. 


경험상 수도권에서 신고되는 분실견이 구조될 경우 모두 한국동물구조관리협회라는 곳으로 옮겨진다. 분실견을 신고하는 경로는 수 곳에 이르나 결국 이들의 구조 및 반환 등 이를 최종적으로 마무리 짓는 곳은 해당 협회가 유일했다.


아침 9시 정각이 되자마자 협회에 연락을 취해본다. 예전과는 달리 협회에서 분실신고를 직접 접수하지는 않는단다. 구조된 동물들은 실시간으로 홈페이지를 통해 안내되고 있으니 수시로 이를 확인하는 방법밖에 없단다. 누군가의 신고로 해당 협회를 통해 미르가 구조되는 사례가 내가 바라는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였으나 결국 녀석이 사라진 당일에는 어떠한 소식도 들을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몹쓸 사람에게 잡혀갔거나 해코지를 당하면 어쩌나 하는 불길한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녀석이 사람을 워낙 좋아하고 잘 따르다 보니 더욱 염려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교통사고도 우려된다. 무작정 앞만 보고 내달리는 녀석에게 그동안 자동차는 그다지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었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이렇듯 한 걱정하는 사이 또 다시 하루가 지났다. 이른 시각부터 협회 사이트를 들락거리며 녀석의 구조 소식을 애타게 기다렸건만, 여전히 깜깜무소식이었다. 


오후로 접어들었다. 전화 한 통화가 걸려온다. 모르는 번호였다. 


"혹시 개 잃어버려 찾고 계시죠? 말씀하신 종류의 개가 구조된 듯하니 홈페이지에서 확인해 보세요"


부리나케 홈페이지에 접속해본다. 찍힌 사진을 보니 녀석이 틀림없었다. 우리는 녀석 때문에 한 걱정 하고 있었는데, 왠지 녀석의 표정은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 심드렁한 데다가 천연덕스러웠고 심지어 개구져 보이기까지 했다. 내심 괘씸했다. 협회에서 기록해놓은 녀석의 특징을 확인해보니 미르임이 더욱 확실해진다. 이제 녀석을 데리러 가야 하는데, 시간이 여의치 않았다. 여건상 평일 협회 운영 시간 내에는 도저히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협회에 연락을 취해 주말에 들르겠노라며 양해를 구했다.



우여곡절 끝에 아침 일찍 협회에 도착했다. 대형견 우리 안에 갇혀 있는 녀석을 보니 정말로 반가웠다. 녀석도 내심 반가웠는지 우리 밖을 벗어나자마자 벌떡 일어서며 내게 두 손을 맡겨온다. 승용차의 뒷좌석에 태우려 하니 녀석이 잔꾀를 부린다. 바닥에 벌러덩 누운 채로 장난을 걸어오는 게 아닌가. 차에 타기 싫다는 의사 표현이다. 그래서 내가 먼저 좌석에 앉았다. 녀석은 순순히 내 뒤를 따라 차에 오른다. 이토록 순한 녀석이거늘.....  


그 큰 덩치로 자세를 잡으려 하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 자세 저 자세를 취해 보다가 결국 의자 위로 몸을 길게 눕히더니 내 다리 위로 녀석의 두 앞발을 척 하고 올려놓은 채 머리도 함께 살포시 내려놓는 게 아닌가. 난 왼쪽 팔을 들어 녀석을 조심스레 품어본다. 녀석의 맥박과 체온이 느껴진다. 따뜻했다. 비로소 안도의 숨이 내쉬어진다. 녀석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내 몸은 이내 녀석의 털과 침으로 엉망이 되었지만, 이렇게 체온과 맥박을 가까이서 느낄 수 있는 기회도 드문 듯싶어 난 녀석을 더욱 힘차게 껴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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