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의 전설

고맙고 또 고마워 미르야

새 날 2017. 7. 31.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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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마구 쏟아지던 날이다. 밤길인 데다가 도심을 벗어난 길이라 가뜩이나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는데, 비마저 내리니 미르가 마지막으로 가는 길은 그야말로 고난의 연속이다. 이번 장마가 시작된 이래 가장 많은 비를 뿌리기 시작한 날이 바로 그날 아니었던가 싶다. 승용차 뒷좌석에 미르를 눕히고 머리가 향하고 있는 방향으로 내가 앉는다. 이미 사지가 굳어버린 후였지만, 여전히 미르 고유의 향기는 남아 있었다. 난 이를 최대한 오래 기억하고 또한 간직하고 싶어 코로 들어오는 미르의 입자를 뇌에 각인시키려 부단히 노력한다.


마침내 미르를 실은 자동차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다른 반려견을 화장하고 있는 까닭인지 무언가를 태우는 역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해온다. 얼굴이 절로 일그러진다. 반려동물 장례식장 내에는 투명한 창이 설치되어 있어 화로에서 이뤄지는 모든 과정을 반려견의 주인이 직접 볼 수 있게 설계되어 있었다. 그 맞은편엔 추모실이 있었고, 이미 사망한 듯 보이는 작은 반려견 한 마리가 탁자 위에 놓여져 있었다. 화장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미르를 화장하려면 대략 30분가량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시간은 벌써 밤 11시를 훌쩍 넘어섰다. 우린 휴게실로 올라가 마음을 추스린다.


미르가 입양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모습


그 때다. 미르의 급작스런 사망 소식을 아내에게는 일부러 알리지 않았는데,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울음 섞인 목소리로 미르에 대해 물어온다. 그러고선 바로 이곳으로 오겠단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장례식장 관계자가 우리를 부른다. 미르와의 마지막 작별을 고하란다. 추모실로 발걸음을 옮긴다. 미르가 눕혀져 있었다. 당장이라도 벌떡 일어나 꼬리를 흔들며 나를 반겨줄 것 같았지만, 이미 차갑게 경직된 몸은 누운 채 꼼짝을 않는다. 향을 피우고 미르와의 마지막 인사를 나눠야 했다. 


'그동안 우리 가족들을 행복하게 해주어 너무 고맙고, 또 고마워. 잘 가라 미르야~" 


미르가 우리집으로 입양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찍은 청년 미르의 늠름한 모습은 안타깝게도 영정 사진으로 둔갑해 있었다. 관계자 두 분이 들어오시더니 이제 화장해야 한다며 미르를 번쩍 들고 나간다. 이윽고 연기가 피어오르는 화로의 문이 열리더니 미르의 육신을 꿀꺽 삼켜버린다. 한창 화장이 진행되고 있을 때 아내 등이 도착했다. 다행히 미르의 유골을 수습하는 모습만큼은 볼 수 있었다. 이윽고 화로의 문이 열리자 하얀 뼈만 남은 미르가 모습을 드러낸다. 곱게 빻아진 미르의 유골은 유골함 한가득 담겨 내게 전달됐다. 너무도 허망하다.



7월22일 토요일, 오후 4시가량이었던 것 같다. 미르가 입원해 있는 동물병원으로부터 전화가 결려왔다. "미르의 상태가 많이 안 좋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상태가 호전되어 물과 사료를 먹곤 했는데, 오늘 갑자기 악화되어 현재 누워 있는 상태입니다. 이르면 오늘밤을 넘기기 힘들지도 모르니 가족들이 오셔서 마지막 모습을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가족들을 모두 데리고 부리나케 동물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이게 웬 날벼락인가. 입원실 케이지 안에 있던 미르는 우리가 왔는 데도 이미 숨을 거둔 듯 아무런 기척이 없다. 의사 말로는 방금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정말로 당황스럽고 화가 났다. 의사에게 이것 저것 따져 물었지만, 내가 이렇게 한들 미르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뒤였다. 이제 보니 미르를 입원시키겠다며 가둬놓은 케이지는 미르에게는 너무도 비좁았으며, 입원 조치가 이뤄졌으면 24시간 관리에 들어갔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해당 동물병원의 수준은 그렇지 못했던 듯싶다. 능력이 안 되면 치료를 말아야 할 것을 무리하게 맡았다가 사단이 벌어진 셈이다. 너무 억울하고 죽은 미르에게 미안했다. 



7월20일 목요일, 미르의 몸 상태가 더욱 악화됐다. 설사 증상이 심해진 것이다. 사료도 안 먹고 기운 없이 축 늘어져 있는 모습을 보니 너무 안쓰러워 보여 병원에 데리고 가기로 했다. 집에서 가장 가깝고 평소 심장사상충약 구입 등 소소한 치료를 위해 자주 들르던 병원이다. 의사는 일단 췌장염이 의심스러워 보인다며 피검사와 기타 키트를 이용한 검사를 진행해 보자고 한다. 여기엔 심장사상충 키트도 포함됐다. 물론 이는 엄연히 과잉진료에 해당한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신장에 살짝 염증이 있는 듯보이고, 췌장염 키트 검사 결과 수치가 400 이내가 정상인데, 2000을 훌쩍 넘게 나왔다며, 아무 것도 먹이지 말고 오로지 수액을 맞은 채 입원시켜 추이를 살펴야 한다고 한다.


미르가 수액을 맞고 케이지에 넣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선 병원문을 나섰다. 이때까지만 해도 미르가 곧 건강하게 회복되어 우리의 품으로 금방 돌아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7월15일 토요일, 집을 뛰쳐나간 미르가 한국동물구조관리협회에 보관돼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우리는 미르를 집으로 데리고 오기 위해 아침일찍 서둘렀다. 대형견 우리에 갇혀있던 미르는 매우 건강한 모습이었다. 우리문을 열어주자 펄쩍 뛰쳐나와 쏜살같이 달려가는 등 집에서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내가 미르를 부르니 냉큼 달려와 벌떡 일어서서 그 큰 앞발을 손 위에 턱 걸친 채 격하게 반가움을 표시해온다. 승용차에 미르를 태우려 하니 꿈쩍도 않은 채 장난만 걸어오는 녀석이다. 


내가 먼저 승용차 뒷좌석에 앉으니 녀석이 냉큼 쫓아 들어온다. 문을 닫는다. 차의 시동을 건다. 녀석이 자세가 불편한지 안절부절 못하는 눈치이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더 지나니 알아서 최적의 자세를 찾은 미르다. 뒷좌석에 가로로 누운 채 두 손과 얼굴을 내 허벅지 위에 맡겨왔다. 미르의 냄새가 콧속으로 파고든다. 왼팔로 미르를 힘껏 껴안는다. 따뜻한 체온과 맥박의 느낌이 좋다.


생전 미르의 마지막 모습


미르가 살아 생전에 승용차 뒷좌석에 누워 내게 오롯이 몸을 맡긴 건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미르가 죽은 날 난 이를 그대로 재현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살아 있을 때 했던 것처럼 녀석을 승용차 뒷좌석에 그대로 눕히고 머리를 내 방향으로 향하게 한 뒤 녀석의 체취를 영원히 잊지 않기 위해 뇌리에 꾹꾹 눌러 담는다. 



7월23일 일요일, 하늘에는 구멍이 뚫렸나 보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고 있다. 미르 생각이 간절하여 마당으로 내려가본다. 다행히 꾹꾹 눌러담은 미르의 체취와 동일한 향이 아직 집 주변에 남아 있었다. 미르가 가장 오래 생활했던 곳들을 둘러본다. 빗물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는 것들이 내 얼굴 위로 하염없이 흘러내린다. 빗소리에 잘 들리지 않을 것 같아 마음껏 흐느껴본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자니 또 다시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주착이다. 


미르야, 잘 가라~ 그동안 정말로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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