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편견을 깨는 시도가 돋보이는 영화 '오두막'

새 날 2017. 4. 21.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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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샘 워싱턴)은 두 딸 그리고 아들과 함께 차량을 이용, 가족여행을 떠난다. 아이들은 들뜬 기분을 도무지 주체할 수가 없는 모양이다.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유리창으로 스치는 풍광은 평소와는 달리 아이들의 시선을 제대로 사로잡는다. 목적지에 도착하려면 시간이 촉박함에도 당췌 아이들의 성화를 당해낼 수가 없다. 운행 도중 차량을 수시로 멈춰야 했다. 이윽고 도착한 여행지의 풍광은 더욱 장관이다. 숙영지 앞에는 넓고 아름다운 호수가 펼쳐져 있고, 밤하늘엔 일시에 쏟아질 것 같은 별빛이 아주 촘촘히 박혀 있다.


가장 신이 난 건 역시 아이들이다. 큰 딸 케이트(메건 카펜티어)와 아들 조쉬는 일찌감치 배를 타고 호수에 나간 뒤였다. 맥이 어린 딸 미시(아멜리 이브)와 한창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던 찰나, 케이트가 장난을 치다가 그만 배가 뒤집혀 조쉬와 함께 물에 빠지고 만다. 다행히 케이트는 배로부터 떨어져 있었으나 조쉬는 뒤집힌 배 밑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게 된 상황이다. 아이들의 비명소리에 놀란 맥은 앞뒤 가릴 것 없이 물로 뛰어들어 조쉬를 간신히 구조해낸다. 그 때다. 당연히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할 막내딸 미시가 그 사이 감쪽 같이 시야에서 사라진 것이다.



주변에 수소문해 보았으나 목격자를 찾을 수 없었다. 무언가 불안해지기 시작한 맥은 경찰에 실종 신고를 한다. 대대적인 수색이 시작된다. 그러나 미시의 행방은 여전히 묘연했다. 얼마 후 맥에게 전달된 소식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내용이었다. 아동 유괴범에 의해 미시가 유괴되었고, 결국 살해됐다는 것이다. 


이후 절망감과 죄책감에 빠져든 맥은 몸과 마음을 추스릴 겨를이 없었다. 시간이 흘러도 그는 이로부터 헤어나올 수 없었다. 괴롭고 힘든 나날의 연속이다. 딸 살해범을 향한 분노가 솟구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러던 어느날의 일이다. 그에게 배달된 의문의 편지 한 통, 딸 아이가 살해된 오두막에서 보자는 내용이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오두막으로 향하는데...



윌리엄 폴 영이 쓴 동명 소설 '오두막'이 이 작품의 원작이다. 해당 소설은 전세계 46개 국에서 출간되었고, 총 2천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한 역대급 작품이다. 아울러 언론보도에 따르면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70주 연속 1위, 워싱턴포스트 55주 연속 베스트셀러, 아마존 종합 베스트셀러 1위, 2008년 전미 베스트셀러,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 TOP 100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타이틀이자 영화속 주요 공간적 배경으로 활용되는 오두막은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유괴범에 의해 딸이 살해된 공간인 이곳은 그를 현재 단단히 옭아매고 있는 절망과 분노의 상징 같은 장소로써 황량하기 그지없는 일종의 그의 내면 상태를 잘 보여준다. 아울러 그를 인도한 파파(옥타비아 스펜서)의 오두막은 그녀와 예수(아브라함 아비브 알루쉬) 그리고 사라유(스미레)에 의한 치유 과정을 통해 그가 안고 있던 상처와 불안, 분노를 말끔히 씻어내고, 비로소 평화와 안식을 얻게해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사실 맥은 아버지의 지속적인 가정 폭력으로 인해 어릴적부터 무수한 상처를 안고 살아온 인물이다. 아버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를 향한 분노가 사그러들지 않고, 늘 그의 내면 한쪽에 자리잡은 채 불쑥불쑥 튀어나와 맥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곤 한다. 영화는 그가 오두막에 발을 들여놓음과 동시에 본격적인 위로와 치유의 과정으로 진입한다. 파파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고 일종의 정령인 사라유가 그의 치유를 돕는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하던 맥의 딸 미시가 살해됐다. 맥은 너무도 고통스럽다. 큰딸 케이트 역시 자신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다.



맥이 현재 안고 있는 상처는 비슷한 처지를 겪어보지 못한 우리로서는 절대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깊고 아프다. 파파가 따스하게 던지던 위로의 한 마디에 맥은 눈물을 주르륵 흘리고, 정령인 사라유는 그의 곁에서 맥을 보듬으며 그가 흘리던 눈물을 소중히 거둔다. 맥과 비슷한 비중의 상처는 아니겠으나 나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 역시 세상을 살다 보면 크고 작은 상처를 안고 있기 마련이다. 때문에 종교 여부를 떠나 파파가 던지는 위로의 한 마디는, 우리가 지니고 있던 상처를 함께 어루만져주는 뭉클함으로 다가온다.



이 작품에서의 '파파'란 기독교에서 일컫는 하나님이다. 기독교 신자가 아닌 까닭에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하나님 하면 보통 근엄하면서도 인자한 표정의 흰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할아버지를 연상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의 파파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거나 기대하던 하나님의 외피를 과감히 벗어던졌다. 여기서의 하나님은 늘 우리 삶 속에서 함께하는, 우리의 이웃과도 같은 친숙한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 실제로 흑인이자 여성의 외형으로 등장한 파파는 맥의 어린 시절 그의 주변에서 함께하던 이웃이다. 이쯤되면 파격이라 할 만하다. 편견을 깨는 감독의 시도가 돋보이는 영화다. 



삶은 고통의 연속이다. 어쩌면 이러한 고통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 삶일지도 모른다. 맥도 그랬고, 맥의 큰딸 케이트도 그랬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무수한 상처를 입고, 또한 절망감과 분노 속에서 몸둘 바를 모른 채 살아간다. 이 작품이 비록 종교적인 색채를 띠고 있긴 하지만, 감독이 하나님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노력했듯이, 우리 역시 이러한 편견을 한 꺼풀 걷어낸 뒤 바라본다면 충분히 위로로 다가올 법한 영화다. 아울러 삶에 대해 조용히 관조케 하는, 훌륭한 기회도 제공해준다.



감독  스튜어트 하젤딘


* 이미지 출처 :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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