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생명체의 탄생, 축복인가 재앙인가 '라이프'

새 날 2017. 4. 6.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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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탐사의 일환인 '필그림' 프로젝트를 수행 중이던 6명의 대원은 임무를 무사히 마치고 우주정거장으로 귀환한다. 이들은 화성을 탐사하던 도중 외계 생명체가 담긴 것으로 추정되는 샘플을 채취하는 데 성공한다. 이는 대단한 성과였다. 휴(앨리욘 버케어)는 생명체가 활동 가능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갖은 정성과 노력을 기울인다. 마침내 흡사 원생생물처럼 생긴 아주 작고 보잘 것 없던 외계의 생명체가 긴 잠에서 깨어나더니 촉수처럼 생긴 신체 부위를 꼼지락거리면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외계 생명체의 최초 발견과 이의 활동을 직접 눈으로 확인한 지구촌은 온통 축제 분위기에 휩싸인다. 


인류는 친절하게도 외계 생명체를 향해 '캘빈'이라는 이름을 부여하는 일도 잊지 않는다. 캘빈은 우주정거장 내의 실험실에서 따뜻한 보호를 받으며 무럭무럭 성장한다. 원생생물에 불과해 보였던 작은 몸집이 세포 분열과 증식을 통해 또렷한 외양을 갖춰나가기 시작한다. 절지동물 내지 연체동물과 흡사하게 생긴 외계 생명체는 몸집이 작아 아직은 위협적인 존재가 아님이 분명했다. 적어도 외견상으로는 그러했다. 


그러던 어느날의 일이다. 캘빈을 깨우는 데 성공한 휴가 그것과 처음으로 신체적 접촉을 시도하기로 한다. 만약을 대비해 특수 장갑을 착용하고 아주 조심스럽게 접근하는데...



'필그림' 프로젝트가 지구 전체를 아우른다는 사실은 여섯 대원들의 면면을 통해 확인 가능하다. 이들은 다양한 국적과 인종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에게 부여된 임무 가운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외계 생명체에 의해 혹시 일어날지도 모를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캘빈이 지구의 대기권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이를 방어하는 일이었다. 여섯 대원들은 그에 맞춰 고도로 훈련돼 있었다. 즉, 외계 생명체의 발견은 인류 역사에 또 한 차례의 획을 긋는 대단한 성과임이 분명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미지의 영역에 대한 두려움과 경계가 여전히 높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아직 단 한 차례도 조우해보지 못한, 상상 속에서나 가능했던 외계 생명체는, 인류에겐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자 위협적인 존재가 아닐 수 없다. 그들의 진화 정도와 인류를 향한 적대적 감정의 여부를 헤아릴 길 없는 상황에서 어쩌면 두려움을 겉으로 표출하고 경계심을 늦출 수 없는 건 불안한 상황에서 흔히 작동하곤 하는 인간이 지닌 본성인 방어기제의 또 다른 양태임이 분명하다. 때문에 최근 개봉한 영화 '컨택트'뿐 아니라 이 작품에서도 인류와 미지의 세계에서 온 외계 생명체와의 접촉은 더없이 조심스럽기만 하다. 



외계 생명체의 발견과 이의 생존이라는 놀라운 소식을 전한 우주정거장, 지구에서 실시간으로 이의 대원들과 통신을 주고 받던 한 꼬마 아이가 전 세계에 생중계되던 상황에서 외계 생명체에 캘빈이라는 이름을 부여한다. 처음엔 몸집도 작고 꼬마 아이가 붙여준 이름처럼 귀요미로 다가오던 외계 생명체였으나 점차 몸집을 불려나가기 시작하고 예측 불허의 진화 과정을 거치면서 막연히 전달되던 두려움과 위협이 점차 현실로 둔갑해간다. 캘빈의 능력은 놀라웠다. 일찍이 지구에서는 유사한 사례를 결코 경험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진화와 놀라운 지능 그리고 탁월한 환경 적응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우주정거장 내부를 마치 자신의 집인 양 마구 휘젓고 다니던 캘빈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여섯 대원들에게는 치명적이었다. 하지만 대원들에게 부여된 진짜 중요한 임무인 외계 생명체의 대기권 안으로의 진입을 막는 사안이 사실은 보다 급선무였다. 초반에 다소 느슨하게 진행되던 극의 흐름은 캘빈의 급속한 진화와 동시에 대원들에게 위협적인 존재로 다가오기 시작하면서 긴박하게 흘러간다. 


비로소 스릴러 장르로써의 제대로 된 면모를 갖추던 순간이다. 캘빈의 존재는 워낙 막강했다. 뛰어난 지능, 빠른 진화, 탁월한 환경 적응력, 아울러 인류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괴력의 피지컬은 무엇으로도 도저히 이를 당해낼 재간이 없어 보인다. 이 녀석이 지구에 떨어지게 될 경우 재앙은 불을 보듯 뻔했다. 그만큼 무지막지한 녀석이었다.



재난이든 그렇지 않은 상황이든 사람 사는 세상에서는 늘 갈등과 다툼이 있기 마련이다. 우주정거장이라고 하여 별반 다르지 않다. 이곳 역시 사람과 사람이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섯 대원의 직업적 사명감과 이타심은 유독 두드러졌다. 그 덕분인지 적어도 우주 공간에서 고립된 이들 여섯 대원들은 달랐다. 외계 생명체가 시시각각 위협해오는 상황에서도 그들은 자신의 안위보다는 인류를 먼저 생각했고, 동료를 배려하는 태도를 끝까지 견지했다. 



물론 캘빈의 위협 수준이 워낙 크고 긴박하여 갈등 따위가 비집고 들어올 여지가 아예 없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따뜻한 동료애와 인류를 향한 살신성인의 자세는 모두에게 귀감이 될 만하다. 인류를 구하기 위해 캘빈에 맞서 사력을 다한 대장(올가 디호비치나야), 로리(라이언 레이놀즈), 데이빗(제이크 질렌할), 미란다(레베카 퍼거슨), 쇼(사나다 히로유키), 휴 등 여섯 대원들의 고군분투가 안쓰럽게 다가오는 이유도 이 지점에 있다. 


과거에 결코 경험해보지 못했을 만큼 캘빈이 워낙 신출귀몰한 데다가 뛰어난 능력을 보유하고 있어 보는 내내 긴장감을 늦출 수 없게 하는 묘미는 이 작품만이 지닌 강점이다. 극적인 반전도 흥미로운 요소다. 



잠들어 있던 캘빈이 우주정거장 대원들의 노고 덕분에 깨어나면서 최초의 외계 생명체로 각인되던 순간, 지구 한켠에서는 쇼(사나다 히로유키)의 2세인 '메이'가 만인의 축복과 환호 속에서 탄생한다. 극적인 대비다. 모름지기 한 생명체의 탄생은 이렇듯 축복할 만한 사안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 또한 지극히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 누군가에게는 축복으로, 혹은 재앙으로 다가올 수도 있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그에 따른 해답은 결국 이 영화 속에서 찾아 봐야 할 것 같다.



감독  다니엘 에스피노사


* 이미지 출처 :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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