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출산을 앞둔 예비부모들이 점집을 찾는 이유

새 날 2016. 12. 4.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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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을 앞둔 예비 부모들이 점집을 찾고 있다는 소식이다. 곧 태어날 자식에게 좋은 사주팔자를 물려 줄 요량으로 출생 시기마저도 운이나 사주에 기댄다는 다소 씁쓸한 얘기이다. 물론 이는 과거에도 간혹 볼 수 있었던 현상이긴 하다. 다만, 근래 사회 분위기가 이를 더욱 부추기고 있는 터라 과거와는 그 차원이 사뭇 다르다. 그동안 우리만의 특징이자 상징이었을 법한 자녀의 조기 사교육 광풍을 이끌던 부모의 자녀 사랑이 어느덧 출생 시기마저도 원하는 대로 저울질하는 시대를 낳고 있는 모양새다. 출생운에도 인위적인 칼질을 가하기 시작했다. 


실태가 이렇다 보니 결코 웃을 수 없는 현상마저 비일비재하게 벌어진다. 이를테면 산부인과에서는 좋은 날이라며 점찍어 놓은 날짜에 아이를 출생시켜 달라고 유도분만이나 제왕절개를 요구하는 산모들이 늘고 있단다. 무릇 새 생명을 탄생시키는 일이란 모든 생명체에 있어 고귀하면서도 숙명과도 같은 발생 과정 중 하나이자, 산모의 뱃속에 수정된 배아가 착상되어 일정한 시기가 지나면 어엿한 한 개체로 탄생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러한 자연의 섭리조차 원하는 날짜와 시각에 맞춰 자식의 타고나는 운을 의도적으로 만들어내는, 결코 웃을 수 없는 일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포커스뉴스


물론 출생이란 단어는 우리에게 있어 무척 반가운 것임엔 틀림없다. 알다시피 우리의 출산율은 지극히 낮아 초저출산국가의 범주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녀의 출생운을 따지며 출산 시기를 저울질하는 현상은 산모의 건강에도 결코 이로울 게 없으며, 윤리적인 측면으로 보더라도 과도한 현상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상이 왜 우리의 일상에까지 파고들어 오는 것일까? 이에는 무조건 살고 봐야 한다는 간절함 따위가 배어 있다. 각자도생이라는 처절한 생존 환경에 놓인 우리의 팍팍한 삶과 무한경쟁 시대가 만들어낸 일종의 살풍경이다. 


자식을 향한 사랑은 누구인들 다르지 않다. 가능한 모든 걸 베풀고 싶은 게 부모의 한결 같은 마음이자 바람일 테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과는 많이 다르다. 더구나 우리 사회엔 여전히 반칙이 난무하고 있다. 심지어 자식 하나 때문에 대학 교칙을 변경시키는 등 교육 농단을 일삼는 무리들이 주변에 건재하다. 누군가처럼 무소불위의 권력을 등에 업은 채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자식에게 해 줄 형편은 못되고, 아울러 물려줄 재산마저 없어 금수저가 되게 할 수도 없는 처지라면 그나마 해 줄 수 있는 건 타고나는 운만이라도 좋은 쪽으로 만들어 주고 싶은 게 인지상정 아닐까? 


그러니까 이 자연스럽지 못한 기이한 현상은 무한경쟁과 불공정, 불평등한 사회가 빚어낸 씁쓸한 세태 중 하나라는 의미이다. 이는 다양한 기관들이 내놓은 국가별 행복지수를 통해서도 일정 부분 확인 가능하다. 유엔이 발표한 '세계행복지수 2016'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전체 조사대상 157개 국가 중 58위를 기록했다. 지난해보다 무려 11단계나 하락한 수치이다. 직장인만을 대상으로 한 행복지수는 이보다 더욱 심각한 수준이다. 스웨덴의 ‘유니버섬'이 전 세계 57개국의 젊은 직장인 20만명을 대상으로 ‘행복지수’를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는 최하위권인 49위를 기록했다.



유엔은 낮은 행복지수의 근원을 불평등으로 지목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불평등은 어느 정도의 수준일까? 국제통화기금의 '아시아 불평등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소득 중 상위 10%에 해당하는 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45%로 아시아 국가 중 불균형의 정도가 가장 심했고, 범위를 전 세계 주요국으로 넓혀 봐도 미국 다음으로 높은 수준이었다. 특히 이 비율은 근 20년 사이 빠른 속도로 증가해 왔다. 국가 전체로 볼 땐 소득 수준이 선진국에 근접해 가고 있으나 개인들 저마다는 먹고 살기 힘들다며 아우성인 이유가 바로 이 지점에 있었다.


아울러 유엔은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다. '인간은 더 많은 기회와 소득이 있을 때 행복하다' 즉, 불평등이 심해질수록 사회적 신뢰와 안전, 건강과 교육에 관한 공정한 접근 기회 등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의미이다. 이런 국가가 좋은 정부를 소유할 수 없음은 두 말 하면 잔소리일 테다. 이는 새삼스러운 결과물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를 한 번 돌아 보라. 정답은 너무도 명약관화하지 않은가. 


최근 불거진 비선 실세 국정 농단 사태로 인해 국가 지도자 및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와르르 무너졌다. 교육 영역을 비롯한 사회 전 분야에 걸쳐 불신이 팽배한 상황이다. 총리가 자신의 의전 차량을 대기시킨다며 버스 정류장에서 승객을 태우기 위해 기다리던 버스를 내쫓는 일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난다.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사적 소유인 양 오남용하며 반헌법적인 행위마저 일삼는 지도자가 버젓이 버티고 있는 상황이니 이러한 결과는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결국 오늘날 자녀의 출생운을 좋게 한다며 출산일을 조정하는 일조차도 실은 '헬조선'으로 대변되는 극악의 생존 환경으로부터 탈출을 꾀하려는 민초들의 처절한 몸부림이었던 셈이다. 


ⓒ노컷뉴스


이런 처지에서 예비 부모들이 자신의 자녀만큼은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삶을 살아가게 하겠다며 출생운을 기대하고 출생 날짜를 조정하여 태어나게 하는 일이 큰 흠이 될 수 있을까? 부모로부터 물려 받은 신체의 일부를 뜯어 고쳐 자신의 운명을 새로이 개척하는 일도 마다 않는 성형 만능의 시대, 초일류 성형 강국이거늘, 유도분만을 하든 혹은 제왕절개를 시도하든 태어날 아기의 출생일을 살짝 조정하는 게 그렇게나 큰 흠이 될 수 있을까? 실제로 출생운이라는 게 존재하는지는 나로선 알 수 없는 노릇이나, 오죽하면 이런 사안에까지 신경을 써가며 매달려야 할까? 


앞서 언급한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는 덴마크라고 한다. 반면, 최하위는 아프리카에 위치한 부룬디였다. 이들 사이엔 좁히기 힘든 커다란 간극이 가로 놓여 있다. 단순한 경제력의 차이를 언급하려 함이 아니다. 한 국가는 사회 전반에 기회가 균등하게 보장되어 있고, 그만큼 평등한 데다가 사회 보장 제도 또한 잘 갖춰져 있다. 반면, 또 다른 국가는 정치적으로 불안하기 짝이없고, 지극히 불평등한 사회 구조를 지녔다. 


많은 예비부모들이 자연발생적인 현상마저 인위적으로 조정해 가며 출생운 따위에 기대를 걸고 있는 모습이다. 이러한 현상의 유행은 무척 씁쓸하지만, 해당 현상을 유발하고 있는 그 이면에 놓인 우리 사회의 현실은 그보다 몇 갑절은 더 씁쓸하다 못해 참담하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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