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상식적인 사회로의 복원을 요구하는 촛불 민심

새 날 2016. 11. 13. 15:34
반응형

12일 오후 2시 무렵 서울 종로3가 부근은 평소와 다름없었다. 지극히 당연하겠지만 차도 위로는 차량이, 보도 위로는 사람이 가득 들어찬 채 각기 저마다 목적지를 향해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난 친구와 함께 영화관으로 향했다. 현재는 자본에 의해 그 판도가 모두 뒤바뀌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곳 종로3가는 영화 애호가들에게 있어 가장 인기 높은 장소 중 하나였다. 서울, 단성사, 피카디리극장 등이 차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 자웅을 겨루었던 탓이다. 하지만 지금은 서울극장만이 그 명맥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으며, 단성사는 우리 곁에서 완전히 사라졌고 피카디리는 앞서 언급한 자본에 의해 흡수되는 비운을 맞이하고 말았다.


영화 관람을 마치고 나온 시각이 4시 가량이었다. 길어 봐야 불과 두 시간 남짓이었건만 그사이 세상의 모습은 많이 변해 있었다. 종로3가 대로는 이미 차량 진입이 금지돼 있었으며, 민중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한꺼번에 거리로 쏟아져 나온 인파로 인해 도심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집회를 이끄는 행사 차량에서 흘러나오는 각종 노래와 연사들의 연설 및 구호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리며 흥을 돋우는 모양새였다. 도심 차도 한복판 위를 무심히 걷고 있자니 문득 과거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당시에도 분명히 지금 곁에 있는 친구와 난 이 도심 한가운데를 걷거나 뛰고 있었다. 



하지만 작금의 분위기는 그 시기와 사뭇 다르다. 합법적인 시위가 보장되지 않았던 당시엔 시위는 무조건 불법 행위였던 터라 우린 잡히지 않기 위해 혹은 죽지 않기 위해 최루가스 자욱한 거리를 무작정 달려야 했고, 비장한 각오로 구호를 외쳤으며 중무장한 경찰에 의해 형성된 전선을 피해 요리조리 옮겨다니며 본의 아니게 숨바꼭질 놀이를 해야 했다. 



반면 12일의 집회는 시위라기보다 일종의 시민 축제였다. 이제 시민들의 얼굴엔 비장함 따위는 온 데 간 데 없고, 흡사 나들이를 나온 듯 온통 흥겹고 즐거운 표정 일색이었다. 최루가스로 대변되는 시위가 20세기형이라고 한다면, 12일의 그것은 한층 진화한 진정한 21세기형의 시위 형태가 아닐 수 없었다.



종로를 상징하는 랜드마크가 저 앞에 그 웅장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대로 위로는 집회 참가 인파가 끝도 없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분명히 혼란스러운 시국과 관련한 집회임에도 운동가요가 아닌 최신가요가 연신 흘러나오며 참석자들의 흥을 돋우고 있는 건 시대 변화의 한 흐름으로 받아들여진다.



탑골공원 앞엔 전국에서 올라온 청소년들이 한데 모여 박근혜 정권을 규탄하고 있었다. 교복을 입은 채로 참석한 아이들의 앳된 모습을 통해 우린 미래의 희망을 엿볼 수 있었다. 어찌 대견스럽지 않을 수 있겠는가.



댄스 팀이 연단에 올라와 집회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고 있었다. 역시 청소년다운 재기발랄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행사 지원용으로 보이는 차량에 붙은 현수막의 글귀가 우리의 심금을 마구 울린다.





종로에서 벗어나 점차 광화문과 시청 방향으로 가까워질수록 인파가 급속히 늘어나는 추세다.



세종대로에 접어든 뒤로는 급기야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는 일조차 버거웠다. 거리는 인파로 가득했다.



메인 행사가 진행되고 있는 시청 쪽으로 간신히 걸음을 옮겨 놓긴 했는데, 더 이상의 진행은 사실상 무리였다.





공식 행사가 모두 끝나고 드디어 촛불 행진이 시작됐다. 이 긴 행렬이 과연 온전하게 이동할 수 있을까? 



또 한 명의 친구가 제법 먼 곳에서 올라와 일행과 합류했다. 상식적인 사회를 돌려달라며 요구하던 촛불 민심과 함께 이날 우린 밤 늦은 시각까지 도심을 누볐다.



대학생부터 청소년까지 적지 않은 학생들이 현 권력의 퇴진을 촉구하고 나섰다. 어디 학생들뿐이랴. 이날 시민 일백만 명이 도심으로 쏟아져 나왔다. 이는 상식과 정상적인 사회로의 복원을 요구하는 간절한 목소리이다. 이 에너지는 과연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대한민국의 인구가 모두 5천만 명이라고 한다면, 그러니까 50명 중 한 명이 동시에 한 장소로 집결한 셈이 된다. 대단한 응집력이 아닐 수 없다. 결정적인 순간에 다시 한 번 우리만의 저력을 여지없이 드러낸 셈이다. 


이날 시민들이 쏟아낸 구호와 함성은 명료하였으며, 목표 또한 뚜렷했다. 시민들이 바라는 바는 한결 같다. 대통령의 사과나 단순 미봉책이 아님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제 공은 정치권으로 넘어갔다. 그들이 시민들의 목소리에 답할 차례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