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특이점이 온 듯한 대의민주주의

새 날 2016. 12. 6.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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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시각 대한민국의 광장 곳곳을 누비며 이 땅을 환히 비추고 있는 건 놀랍게도 촛불이다. 이에 담긴 시민들의 염원과 의지는 한결 같다. 이 장엄한 촛불 물결과 넘실거리는 파고를 바라보고 있자니 괜시리 경외감 같은 게 밀려든다. 그동안 수백만 명에 달하는 시민들이 촛불을 든 채 이 대열에 합류했다. 이에 참여한 시민들은 특정 계층으로 콕 집어 단정짓기 어려울 정도로 무척 다양하다. 사람 사는 세상이라면 으레 그러하듯 이쯤되면 각기 다른 목소리를 내고 또한 서로 충돌을 야기하며 충분히 갈등을 빚을 법한 상황이지만,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단일 대오 그 자체다. 


지난 2일 야권이 박근혜 대통령을 겨냥한 탄핵안 발의와 함께 이의 의결을 코앞에 두고 있던 시점, 시민들은 빠른 시간 내 탄핵안 가결 소식을 손꼽아 기다렸으나 국민의당이 이에 어깃장을 놓으며 의결은커녕 발의마저 원천적으로 무산되고 만다. 시민들은 단단히 뿔이 났다. 치솟는 분노를 다양한 양태로 분출시키기 시작했다. 안철수, 박지원 두 정치인은 공공의 적이 되어 시민들의 모진 비난과 뭇매를 오롯이 감수해야 했다. 그들을 성토하는 글들이 인터넷과 SNS에 도배되다시피 했고, 그래도 분을 삭이지 못한 다수의 시민들은 공개된 해당 의원들의 전화번호로 직접 항의의 뜻을 표출하기도 했다.


ⓒ세계일보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고 이를 달게 받아들이기보다 또 다시 정치적 꼼수를 들고 나온 대통령의 3차 대국민담화와 정치권의 계속되는 헛발질은 가뜩이나 분노한 민심을 더욱 자극시키는 촉매제가 되기에 충분했다. 3일 개최된 촛불집회엔 성난 민심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한 주 전에 세웠던 시위 기록을 새롭게 갈아치우는 등 역대 최대 인파가 몰렸다. 이쯤되면 작금의 민심이 어떠한 종류의 것인지, 아울러 그 비등점이 어느 수준에 이르고 있는지를 아주 명료하게 드러낸 셈이다.


오늘날 우리를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는 시민이 선출한 대표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주권을 행사하는 대의 민주주의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사실 민주주의의 가장 이상적인 형태는 시민이 직접 주권을 행사하는 직접 민주정지 제도가 맞다. 그러나 사회의 규모가 갈수록 커지고 있고 복잡다단해지면서 특정 공공 사안을 결정짓기 위해 모든 시민이 매번 한곳에 모이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워졌다. 이로 인해 의원과 대통령 등의 대표자를 선출하고, 이들로 하여금 공공의 의사를 결정짓게 하는 방식이 다름아닌 대의 민주주의 제도다. 이는 현대 정치의 유일한 대안이 되다시피 해 왔다.



그러나 근래 대의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가 그 어느 때보다 짙게 부각되고 있는 실정이다. 대표에 의한 시민의 의사 전달이 올바로 반영되지 못하고 심지어 왜곡되는 경향마저 비일비재한 까닭이다. 게다가 최근엔 인터넷 등 통신의 발달로 인해 직접 민주정치에로의 가능성마저 활짝 열리면서 대의 민주정치에 대한 불만이 더욱 고조되고 있다. 비선 실세 게이트가 불거지고, 이에 촛불이 다시 광장을 환히 밝히기 시작했다.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를 직시한 시민들이 촛불로 응수하고 있는 셈이다. 더불어 그의 양상 또한 과거와는 사뭇 달라졌다.


단순히 질서있고 평화로운 집회 형식 때문만은 아니다. 촛불은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를 넘어 새로운 양식의 직접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대통령은 언제인지 못박지는 않았으나 어쨌든 정치권이 합의할 경우 퇴임하겠노라고 선언했다. 하지만 이 언급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시민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당장 권력을 내려놓던지, 그렇지 않으면 탄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정치권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은 대통령이 던진 미끼를 덥썩 물더니 예상했던 대로 사분오열된 채 갈짓자 행보를 잇고 있다. 


이렇듯 갈팡질팡하며 방향 감각마저 잃고 있는 정치권을 향해 어떠한 방향으로 가야 옳은 길인지 정확한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는 것도 다름아닌 시민들이다. 그동안 시민들의 권리엔 손톱만큼의 관심조차 없었으며, 오로지 개인과 정파의 이익에만 눈이 멀었던 정치권은 결국 촛불의 기세에 눌려 시민들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촛불 민심은 이 혼란한 시국에 정치공학적 셈법에 의한 잇속만을 챙기려던 정치권을 다잡고, 잔꾀를 부리며 자리 보전을 꿈꾸던 대통령을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고 있다. 


ⓒ세계일보


자신들을 대신하여 주권을 행사하라며 대통령과 정치인들에게 한 표를 던졌더니, 정작 이들은 국민들이 위임한 권한을 오남용해 온 셈이다. 이러려고 투표를 했나 하는 자괴감이 들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주말이면 만사를 제쳐놓고 한 손엔 촛불을, 또 다른 한 손엔 피켓을 든 채 광장으로 광장으로 모여드는 시민들은 이렇듯 자신들의 주권을 대행하는 이들의 올곧지 못한 행동에 분노하며 이들을 향해 옐로우카드를, 때로는 레드카드를 꺼내들어 몸소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광장엔 촛불이 타오르고 있고, 그 주변에선 시민들의 자유 발언이 이뤄진다. 이는 어느덧 특이점에 다다른 듯한 간접 민주주의의 한계를 상징하는 장면이자, 시민들이 직접 구현해낸 직접 민주주의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촛불 민심이 결국 대한민국의 정치 지형마저 새롭게 바꾸고 있는 모양새다. 87년 민주화 체제와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를 뛰어넘는 또 다른 민주주의를 향한 시민들의 실험과 도전은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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