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추락하는 보수엔 날개가 없다

새 날 2016. 12. 4.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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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선 실세 국정 농단 사태로 촉발된 촛불 민심이 수그러들기는커녕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거세지고 있다. 물론 이는 이번 사태의 중심에 놓인 박근혜 대통령의 처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진정성 없는 사과로 일관하거나 그때그때마다 태도가 달라지는 등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수준의 얄팍한 대응으로 국민들의 피로도와 분노를 급상승시켜 온 데다가 급기야 지난 주에는 자신의 책임을 정치권에 떠넘기는 꼼수까지 꺼내들며 가능한 방법을 총동원, 어떡하든 현재의 자리를 보전하려는 의지를 내비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세는 이미 거스를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시민들은 현명했다. 촛불의 열망은 오로지 단 하나의 대오를 형성하면서 추호도 흔들림이 없는 모양새다. 탄핵 시기를 저울질하는 듯한 정치권을 향해서도 촛불 민심은 오히려 '좌고우면 하지 말 것이며 빨리 탄핵하라'고 경고의 목소리를 한껏 높이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탄핵소추안이 발의된 지난 3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6차 주말 촛불집회에는 급기야 역대 최대 규모의 촛불이 광장을 환히 밝혔다.


ⓒ연합뉴스


사태가 이쯤 되고 보니 불안감을 토로해 오는 이들 또한 갈수록 늘고 있다. 물론 충분히 예견됐던 상황이다. '촛불은 촛불일 뿐 바람 불면 다 꺼진다'고 하던 모 의원의 발언은 하도 어이가 없고 기가 막히는 까닭에 사실 언급할 가치를 전혀 느낄 수가 없다. 촛불집회는 종북, 반미 세력이 총동원된 결과물이라는 주장을 하는 이들 역시 어김없이 등장했다. 예상을 결코 빗나가지 않는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일당을 받고 조직적으로 동원된 것이라는 주장도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들의 촛불 폄훼의 표현 양식 속에선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촛불 민심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읽힌다. 모종의 촛불 트라우마가 있는 듯싶다. 그러니까 이들의 표현이 독해지면 독해질수록 그에 비례해 두려움도 함께 무럭무럭 자라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수백만에 이르는 전국 각지의 촛불은 저들이 어떤 속내를 비치든 아울러 어떠한 반응을 보이든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단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더불어 주말에 쉬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촛불을 든 채, 아니 횃불을 든 채, 광장에 설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 놓은 저들이 원망스러울 뿐이다. 


한편 베스트셀러이자 나 또한 한때 흥미롭게 읽었던 소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의 작가 이문열 씨가 촛불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다. 그는 2일 조선일보에 ‘보수여 죽어라. 죽기 전에 새롭게 태어나 힘들여 자라길’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실었는데, 이를 통해 그는 '100만이 나왔다고, 4500만 중에 3%가 한 군데 모여 있다고, 추운 겨울밤에 밤새 몰려다녔다고 바로 탄핵이나 하야가 국민의 뜻이라고 대치할 수 있는가'라며 촛불 민심을 폄훼하고 나섰다.



외신들마저 극찬하고 있는 침착하고 성숙한 시민의식이 드러난 촛불을 향해 '민의는 절대로 아니다' 라며 일갈하는 그의 행동으로부터는 '용감'이라는 단어보다는 왠지 '무모함'이나 '무지'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그의 이상한 사고체계에 따르자면 여론조사기관이 발표한 박근혜에 대한 지지율 4%의 결과나 80%대에 이르는 탄핵 찬성 여론 또한 기껏 해야 수천 명의 의사를 물은 것에 불과할 테니, 절대로 민의가 반영된 결과라고 말할 수 없을 테다. 그는 심지어 '그 정연한 질서와 일사분란한 통제 상태에서 북한의 아리랑 축전에서와 같은 거대한 집단 체조의 분위기까지 느껴지는 사람이 있었다'고 말한 것으로 보아 촛불을 향한 진짜 속내가 어떤 종류의 것인가를 가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이문열 씨의 칼럼 제목을 보니, 자신뿐 아니라 현재의 집권 세력을 이른바 '보수'로 자처하는 듯한 눈치임이 역력하다. 짐작컨대 오늘날 그의 비합리적 신념체계는 다름아닌 그러한 근간으로부터 비롯된 게 틀림없다. 그렇다면 이분이 생각하는 보수란 과연 어떠한 성격의 세력인지 다시 한 번 상기해 볼 필요가 있겠다. 자, 이참에 복습해 보자. 


박근혜가 형편 없는 무능력자란 사실을 진작에 알았으면서도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앉히고, 현재의 국정 농단 사실을 알면서도 숨기려 들거나 오히려 이를 지키려 하였으며, 권력에 줄을 댄 채 다투어가면서 서로가 환관임을 자처해 온 이들이 바로 작금의 한국 사회를 쥐락펴락하는 보수의 실체다. 


ⓒ스포츠경향


그동안 무수한 부정부패와 비리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모르는 척 혹은 아닌 척 위기를 물타기로 덮어버리거나 그저 모르쇠로 일관해 왔으며, 작금의 상황에 이르도록 오로지 정권의 유지를 위해 권력의 단맛에 취한 채 검찰 등을 동원, 자신들의 범죄를 축소 은폐, 심지어 조작질까지 서슴지않아 왔다. 이들의 뿌리는 이승만 친일 정권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들이 내세우는 가장 자신있는 필살기는 다름아닌 프레임 덧씌우기다. 자신들이 불리해질 때마다 상대 진영을 향해 빨갱이, 좌파, 종북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국민을 겁박하고, 기업으로부터는 공공연하게 불법자금을 조성, 차떼기 등의 부정부패 행위를 통해 법 위에 군림하며 국민을 철저히 우롱해 왔다. 


이들에게도 아주 가끔 위기가 찾아오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정작 본질은 놔둔 채 당명만 슬쩍 바꿔 교언영색을 한 뒤 국민을 기만하고 속여왔다. 일각에서는 이들더러 비선 실세 공범이라고 일컫지만, 실은 공범이 아닌 명백한 주범이다. 대통령의 탄핵과 함께 이 땅에서 마땅히 사라져야 할 존재가 바로 그들인 셈이다. 이러한 세력을 보수라 칭한다면, 이 땅의 보수는 그의 칼럼 제목 그대로 죽는 게 옳다. 그들이 지키고 보존하고자 하는 가치가 정녕 앞서 언급한 그러한 종류의 것들이라면 영원히 사라져야 마땅한 존재가 바로 그들이다. 


추락하는 보수엔 날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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