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맞닿아 있는 허구와 실재 '내부자들: 디 오리지널'

새 날 2016. 11. 9.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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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력 대선 후보 장필우(이경영)와 한국 경제를 이끌고 있는 재벌기업 회장(김홍파), 그들은 비자금을 매개로 상호 공존을 꾀하는 은밀한 관계이다. 아울러 뒤에서 이의 판을 짜고 기획하는 인물은 놀랍게도 한국 사회의 여론을 쥐락펴락할 정도로 영향력이 상당한 모 메이저 신문사의 대표 논설주간 이강희(백윤식)다. 정치권과 재계, 언론 그리고 그들의 뒤를 봐주는 조직 폭력배까지, 모두가 한 통속이 되니 세상 그 어떠한 일도 자신들의 입맛대로 되지 않는 게 없을 정도이다. 


이강희의 배후에서 활동하며 장필우와 재벌기업 사이의 비자금 거래 전모가 담긴 파일을 움켜쥐었던 조폭 두목 안상구(이병헌)는, 저들 사이에서 오랜 공생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었지만 결국 비자금 파일 때문에 이용만 당한 채 차갑게 버려지고 만다. 안상구는 완전히 바닥으로 내처진 상황에서 자신을 이렇게 만든 이들을 향한 복수의 칼날을 갈기 시작하는데..



한편 경찰대 출신이 아닌 이유로 괄시를 당하다가 결국 경찰 옷을 벗고 사법고시를 통해 검사가 된 다소 특이한 경력의 우장훈(조승우), 검찰 조직은 경찰의 그것과 다를까 싶었으나 뒷 배경 없고 이른바 족보마저 없던 그에겐 모든 열정을 조직에 바쳐 온 데다가 출중한 능력까지 겸비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승진에서 고배를 마시는 등 경찰 조직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그런 그에게 우연찮게 찾아 온 유력 대선 주자 장필우의 비자금 수사는 결코 놓칠 수 없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관련성이라곤 털끝만큼도 없을 것 같던 열혈검사 우장훈과 정치 깡패 안상구의 접점은 바로 이 지점에 있었다. 우장훈은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유력 대선후보의 비자금 수사를 통해 성공의 발판을 마련하는 계기로 삼을 속셈이었을 테고, 안상구는 배신 당한 아픔을 처절하게 복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여겼을 법하니 말이다. 


그러나...



현재의 한국 사회는 영화속 허구보다 몇 배는 더 끔찍하다. 나라 전체를 참담함 속으로 몰아넣고 있는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 사태는 엄연히 현재진행형이다. 세상 돌아가는 현실이 어째 영화에서의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은 느낌이다. 이강희가 몸 담고 있는 신문사 '조국일보'는 일찌감치 사회적 공기로서의 책무를 저버린 채 철저하게 자신들의 이득만을 위해 운영해 왔다. 그 중심에는 이강희라는 논설주간이 존재한다. 그들은 자신들을 먹여 살리고 있는 광고주, 즉 재벌에 빌붙은 채 오로지 그들의 입맛에 맞는 정치인을 차기 권력의 정점에 앉히기 위해 모든 역량을 쏟아붓는다. 이들에 의해 여론은 왜곡되고 점찍어 놓은 정치인은 애초의 시나리오대로 유력 대선 주자로 등극하게 된다.



이강희의 펜대 위로, 혹은 그 뒤로 어른거리는 권력욕엔 저들의 목적 달성을 위해서라면 그 어떠한 잔혹한 일마저도 서슴지 않는 속성이 있다. 이강희의 손 위에 쥐어진 펜이 춤을 추면, 그가 의도한 형상 그대로 밑그림이 그려지고, 이를 기반으로 세상은 돌아간다. 그의 손놀림은 흡사 간사한 뱀의 혀놀림과 진배없다. 돈과 권력 그리고 그의 펜이 결합되니 세상은 온통 그들의 입맛대로 그려지기 일쑤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18대 대선 후보로 나섰던 2012년의 상황을 언급해 보자. 지금은 종편 방송사까지 운영할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모 신문사가 자신들의 방송을 통해 '형광등 100개를 켜 놓은 듯한 아우라'라며 박근혜 후보를 극찬하고 한껏 치켜세웠던 기억이 있다. 이의 영향 때문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정확한 통계가 없어 알 수 없으나 어쨌든 박근혜 후보는 대한민국의 18대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물론 이후에도 해당 신문사는 자신들의 지향점과 비슷한 지점을 바라보던 박 대통령의 충실한 우군 역할을 자처해 왔다.


이랬던 그들이 근래 돌변했다. 정확히 비선 실세 국정농단 사태 즈음부터다. 이번 사태가 지금처럼 큰 사안으로 비화된 건 따지고 보면 해당 신문사의 역할이 지대했다. 어쨌든 비선 실세 사태가 불거지면서 180도로 변모한 해당 신문사의 행태를 보니 영화속 '조국일보'가 오버랩되지 않을 수 없다. 자신들이 지향하는 지점과 다르거나 이득이 없다고 판단되면 인정사정 없이 물어뜯다가 가차없이 내차 버리는 행태는 영락없는 '조국일보'와 '이강희' 그들이었다. 



정치권과 재계 사이에서 이뤄지던 모종의 금전적 뒷거래는 그동안 우리 사회를 짓눌러 온 오랜 병폐 중 하나이다. '차떼기'로 비자금이 조성될 정도였으니 사실 부패와 비리는 우리 내부 깊숙이 파고든 뿌리 깊은 고질병이라 할 만하다. 지금은 조금 나아졌을까? 그런데 이 영화가 끝나갈 즈음 스크린 위로 흐르던 '작품 내용은 허구이며, 실재라 해도 이는 모두 우연'이라는 자막이 씁쓸하게 다가왔던 건 왜일까? 대통령이 재벌 총수들을 직접 만나 지시한 것으로 알려진 스포츠 재단이나 청년희망펀드 모금 정황처럼 이를 행하도록 한 진짜 주체가 누구였든지 간에 부패한 권력이 여전히 우리 주위를 맴돌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이 작품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왜 우리 영화는 여타의 장르보다 권력과 재벌의 불법 행위가 판을 치고 조폭이 등장해야 제법 볼 만해지는가 하는 점 말이다. 그동안 워낙 비슷한 류의 작품들이 많이 만들어졌기에 그런 것인지 아니면 우리 사회가 실제로 영화 이상으로 부패한 까닭에 연기자들의 연기가 아주 자연스러웠던 것인지 난 당췌 종잡을 수가 없다. 



스토리는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할 만큼 그다지 새롭지는 않다. 앞서도 언급했듯 이런 류의 영화를 그동안 많이 봐온 학습효과 덕분이다. 다만, 배우들의 연기력은 흠잡을 데 없이 훌륭했다. 특히 안상구 역을 담당했던 이병헌의 경우, 과거 그가 출연한 영화를 볼 기회가 많지 않았던 터라 이번 작품을 통해 그를 새롭게 바라보는 계기가 됐다. 


영화 오프닝에서 안상구는 비자금 폭로 기자회견 직전 한 기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영화 '차이나타운'의 일부 장면을 언급한다. 뿐만 아니다. 그는 기회가 닿을 때마다 자신이 현재 처한 상황과 그에 따라 펼쳐 보이게 될 복수극을 지속적으로 영화에 비유한다. 작품 속에서의 현실이 영화와 결코 다르지 않음을 은연 중 내비치는 장치이다. 그런데 영화를 관람하던 난 안상구가 그랬듯, 작금의 한국 사회 현실을 이 작품에 투영시켜 보며 허구와 현실 사이에 응당 있어야 할 간극이 거의 존재하지 않음을 깨닫고선 소름이 돋지 않을 수 없었다. 



감독  우민호


* 이미지 출처 :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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