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새로운 형태의 히어로 탄생 '닥터 스트레인지'

새 날 2016. 10. 26.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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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들로부터 질투를 살 만큼 탁월한 실력을 갖춘 신경외과 의사 스트레인지(베네딕트 컴버배치), 그의 현재와 미래는 그야말로 탄탄대로였다. 그의 손끝에서 이뤄지는 현란하면서도 정확한 시술은 의료계는 물론 세상 전체를 놀라게 할 정도로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성격이 다소 까칠하면서도 거만했던 건 그만큼 실력과 자신감 그리고 주변으로부터의 신뢰가 한 몫 단단히 했던 탓이다. 심지어 뇌사에 빠져 사경을 헤매는 환자조차도 그의 손길이 닿기만 하면 기적처럼 다시 살아나곤 했으니 세상은 그를 인정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의 일이다. 승용차에 올라탄 닥터 스트레인지는 여느 때처럼 속도감을 한껏 만끽하고 있었다. 도로 아래로는 아찔한 낭떠러지가 펼쳐진 구불구불한 코너길이었으나 뛰어난 차량의 성능 덕분에 스트레인지는 가속 페달을 밟는 일에 있어 주저함 따위를 느낄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운전 도중 환자 치료와 관련한 긴요한 전화가 오는 바람에 태블릿을 이용, 관련 정보를 확인하던 아주 짧은 찰나였다. 앞에서 오는 차량을 미처 피할 수 없었던 그는 해당 차량과 그대로 충돌, 튕겨나가며 낭떠러지 아래로 추락하고 만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대수술이었다. 목숨을 부지한 것만으로도 기적이라 불릴 정도로 치명적인 사고였다. 이로 인해 그의 양손은 신경이 손상되어 온전하게 사용할 수 없게 됐다. 의사라는 직업인에게는 사형 선고와 마찬가지였다. 실의에 빠진 스트레인지, 우연한 기회에 그의 손상된 신경을 되살려 예전처럼 양손을 자유롭게 사용케 하는 방법이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뒤, 간절한 바람을 안고 아시아 대륙에 위치한 네팔로 향하는데...


그가 찾아간 곳에는 에인션트 원(틸다 스윈튼)이라 불리는 일종의 초자연적 능력을 갖춘 스승과 다수의 문하생들이 있었다. 의술을 펼치는 과학자인 데다, 내로라할 만큼 출중한 실력을 뽐냈던 그였기에 정신력으로 자신의 손상된 손의 신경을 이을 수 있다는 스승의 말도 안 되는 논리가 그의 귀에 들어올 리 만무했다. 하지만 콧대 높은 스트레인지의 기가 완전히 꺾이는 데는 그다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코웃음을 치며 짐짓 비웃기까지 했던 스트레인지, 에인션트 원이 직접 선보인 초자연적인 현상을 경험하고서는 그대로 무릎을 꿇고 만다.



스트레인지는 의학과 철학 박사 학위를 동시에 취득할 만큼 두뇌가 명석하였으며, 특히 손기술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워낙 잘난 터라 독선적인 성격이 다소 문제이긴 했으나 에인션트 원의 수제자였던 케실리우스(매즈 미켈슨)가 그녀를 배신, 추종 세력을 이끌고 세상을 악의 기운으로 뒤덮기 위해 시시각각 위협해 오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이를 막을 인물로 제격이었던 닥터 스트레인지를 낙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순전히 자신의 손상된 신경을 되살려 다시금 명의로 거듭나려는 지극히 사사로운 욕심으로 이곳을 찾았던 스트레인지는 현실 세계와는 전혀 딴판인 또 다른 세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놓게 된 셈이다.



스승의 눈은 정확했다. 스트레인지의 학습 능력은 그 어느 누구보다 뛰어났다. 스승의 가르침과 자신만의 타고난 자질 및 노력이 더해지며 어느덧 초자연적 현상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마법사로 거듭나기 시작한 스트레인지였다. 하지만 케실리우스 일당의 공격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에인션트 원을 중심으로 한 선의 축과 세계를 파괴하려는 야심 가득한 케실리우스를 중심으로 한 악의 축의 맞대결은 이로써 본격적으로 불을 뿜기 시작한다. 



선과 악의 싸움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화려한 볼거리와 진귀한 필살기가 총동원되기 때문이다. 허공에 게이트를 열어 자유자재로 공간이동이 이뤄지기도 하고, 때로는 새로운 차원을 만들어 중력의 방향을 지속적으로 바꾸기도 하며, 시간을 원하는 만큼 과거로 되감거나 루프 속에 가두어놓는 신기술을 선보이기도 한다. 


신체와 영혼이 분리되는 유체이탈과 염력이 등장하고, 공중을 마음대로 떠다니는 공중부양 기술도 볼 수 있다. 다른 히어로물에서는 결코 볼 수 없었던 각종 필살기는 과학과 동양철학의 절묘한 콜라보가 만들어낸 독특한 것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유독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건 단언컨대 도심에 새로운 차원을 만든 뒤 그 안에서 이뤄지는 격투씬이 아닐까 싶다. 특히 3D나 4D에 최적화된 특별한 시각효과는 관객들을 설레게 할 만한 요소이다.



예기치 않은 불의의 사고로 손의 신경이 손상된 뒤 더 이상 의사 직분을 수행하지 못하게 되자 이를 극복하기 위해 시작된 스트레인지의 모험은 본의 아니게 그를 세계 평화의 수호자라는 형태의 또 다른 영웅으로 거듭나게 만든다. 그의 어깨에 자연스럽게 걸쳐진 빨강색의 망토는 다름아닌 새로운 영웅 탄생을 알리는 상징물이다. 


그러니까 현실세계를 대표하는 과학과 정신세계를 상징하는 동양철학이 결합된, 보다 강력하고 새로운 형태의 히어로가 탄생하게 된 셈이다. 스트레인지의 연인으로 등장한 팔머(레이첼 맥아담스)는 그의 목숨을 두 차례나 구해 준 생명의 은인이었으며, 에인션트 원의 수제자이자 마스터인 모르도(치에텔 에지오프)와 도서관 사서 웡(베네딕트 웡) 등 조연들의 감초 연기는 이번 작품을 더욱 생동감 있게 해 준다.


아마도 영화 중간 부분쯤이었던 것 같다. 어벤져스가 슬쩍 언급되는 걸로 봐선 향후 닥터 스트레인지가 어떤 식으로든 어벤져스의 멤버로 합류할 개연성을 높인다. 이제껏 볼 수 없었던 전혀 새로운 형태의 히어로가 탄생하는 과정과 화려하면서도 좀 더 특별했던 시각효과만으로도 이 영화는 볼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아울러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시종일관 선보이는 어설픈 웃음코드 또한 관람 포인트라 할 만하다. 향후 제작될 마블 작품 속에서의 스트레인지는 과연 어떠한 활약을 이어가게 될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감독  스콧 데릭슨


* 이미지 출처 : 다음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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