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따뜻한 감성, 잔잔한 여운 '새 구두를 사야해'

새 날 2016. 11. 5.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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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메(키리타니 미레이)는 연인 칸고(아야노 고)와의 실타래처럼 얽힌 연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느날 프랑스 파리로 향한다. 그녀에게 있어 일종의 부적 같은 존재인 친오빠 야가미 센(무카이 오사무)은 덩달아 스즈메의 여행길에 동행하게 된다. 하지만 스즈메는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오빠를 아무런 연고도 없는 그곳 한복판에 무작정 떨궈 버린 채 홀로 자신의 연인을 만나러 간다. 


센은 졸지에 파리 도심에 남겨진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때마침 그가 머물던 현장을 지나던 일본 여성 아오이(나카야마 미호)가 센이 실수로 바닥에 떨군 여권을 밟으며 미끄러져 넘어지고 마는데..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불행히도 이 충격으로 인해 그녀가 신고 있던 하이힐의 한쪽 뒷굽은 완전히 망가지고, 그녀에게 밟힌 센의 여권은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찢겨져 무언가 시급히 조치가 필요한 찰나다. 



센은 아오이의 안위가 걱정되어 길 위에 쓰러진 그녀를 일으켜 세운 뒤 망가진 구두를 강력본드로 고쳐준다. 아오이는 센에게 대사관의 주소를 알려주며 빠른 시간 내에 여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한다. 그는 그녀가 알려준 대로 여권 문제를 먼저 해결한 뒤 아오이에게 고맙다는 메시지를 남기는데... 


구두에 밟혀 찢긴 여권과 하이힐의 망가짐은 우연히 벌어진 해프닝이다. 나홀로 내처진 센이 여권을 실수로 바닥에 떨어뜨렸고, 때마침 그곳을 지나던 아오이가 수많은 경우의 수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 모두를 피해 하필이면 그가 떨어뜨린 여권을 밟고 지나가면서 불거진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일이 결코 우연이 아닌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현재의 에피소드 장소가 프랑스 한복판인 파리인 데다가 일면식조차 없던 일본인들 사이에서 벌어진 해프닝인 탓이다. 



일본으로부터 1만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어 비행기로는 족히 12시간이 걸려야 갈 수 있고, 선박으로는 11일이나 소요되는 머나먼 땅 프랑스 파리에서의 묘한 인연은 이렇듯 전혀 예기치 않은 지점에서 시작된다. 서로가 서로에게 베푼 호의와 친절은 자연스러운 만남을 낳게 되고, 황홀하기 그지없는 파리 도심의 야경과 함께했던 오붓한 시간은 점차 두 사람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촉매제 역할을 톡톡히한다. 



아오이의 언어와 행동 하나하나로부터는 센이 언급한 것처럼 왠지 반 박자씩 어긋난 느낌을 받게 한다. 여기서의 어긋남이란 나이와는 결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귀여움 따위의 이미지를 일컫는다. 프랑스 파리의 전매특허일 법한 도심의 세련됨, 우아함, 자유분방함은 물론, 그녀만의 선한 이미지가 함께 덧대어지다 보니 스크린과 관객 사이엔 묘한 인력, 즉 끌림 현상이 발생한다. 심지어 술에 취해 주정을 부리는 모습조차 사랑스럽게 다가온다.  



두 사람의 감정은 서로를 향해 아주 조심스럽게 다가간다. 삶을 살다 보면 누구나 그러하듯 비록 경중이 있을지언정 아픔과 상처 따위를 피해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오이와 센이라고 하여 다를까. 세련된 파리의 여인 아오이에겐 감당하기 어려운 과거의 상처가 존재하듯 센 역시 이상과 현실의 커다란 간극 앞에서 여전히 고민 중인 상황이다. 


사람에 의해 생긴 상처는 사람에 의해 치유돼야 한다. 서로 좋은 감정을 간직하고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 자신들이 과거 겪었거나 혹은 현재 진행형인 상처를 조심스럽게 꺼내어 이를 서로 보듬는다는 건, 이들의 감정이 1차원적인 수준을 넘어 어느덧 높은 단계에까지 이르고 있음을 입증한다. 



진정한 사랑이란 서로의 상처와 결함까지 온전하게 받아들이며, 이를 함께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이뤄지는 법이다. 아오이와 센이 서로를 알아가며 사랑을 키워 나가는 과정이 이번 작품의 한 축을 이룬다면, 열정적인 사랑에 이끌려 일본으로부터 1만 킬로미터나 떨어진 파리까지 날아와 두 사람 사이의 참사랑을 확인하려 했던 스즈메 그리고 예술가인 그의 연인 칸고의 이야기는 또 다른 축을 이룬다. 


아주 예쁜 작품이다. 여성 감독 특유의 감성적인 측면도 좋지만, 프랑스 파리에서의 올 로케이션 덕분에 작품 전반을 관통하고 있는 파리 도심만의 독특한 개성과 색채의 느낌은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게다가 아오이로 분한 나카야마 미호의 연기는 뭇남성들을 심쿵케 하기에 충분하다. 소소하면서도 잔잔한 여운이 남는 영화다.



감독  기타가와 에리코


* 이미지 출처 :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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