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신비롭고 매혹적인 이야기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새 날 2016. 9. 29.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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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다에서 살고 있는 제이크(아사 버터 필드)는 어릴적 할아버지로부터 좀처럼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들으며 자라왔다. 할아버지(테렌스 스템프)가 은밀하게 꺼내어 펼쳐 보이던 오래된 상자 안에는 이야기 속 독특한 인물들과 관련한 오래된 흑백 사진이 담겨 있었으며, 지도 등 온갖 진귀한 것들로 가득했다. 할아버지는 종종 이해하기 힘든 혼잣말을 중얼거리곤 했는데, 어른들은 이를 치매라 하며 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는 듯싶었다. 


그러던 어느날의 일이다. 제이크는 할아버지 집을 방문하기로 약속한다. 집에 도착하기 직전 전화 통화에서 할아버지는 다급한 목소리로 무언가 위협스러운 상황임을 알리고 있었으나 제이크 역시 다른 어른들의 말씀처럼 이를 치매 때문일 것이라 짐작하며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인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모종의 불길한 기운이 감도는 느낌을 완전히 감출 수는 없었다. 이윽고 할아버지 집에 도착한 제이크, 집안은 온통 아수라장이었고 할아버지는 그곳에 없었다. 


뜯겨져 나간 집 구조물 사이로 외부 침입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고, 이는 집 주변 숲으로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그는 정신없이 뒤를 밟다가 숲에 누워 있는 할아버지를 발견하게 된다. 두 눈은 무언가에 의해 훼손된 듯 휑한 모습이었으며, 숨은 곧 멎을 것처럼 무척 위급한 상황이었다. 할아버지는 제이크에게 좀체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남기고는 숨을 거둔다. 이후 할아버지와 관련한 사안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던 제이크는 단서가 될 만한 것들을 찾기 위해 웨일즈로 향하는데...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에 45주 동안이나 이름을 올렸던 랜섬 릭스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다소 음산하고 기괴한 분위기로 시작되는 영화는 제이크가 타임 루프라는 기묘한 시공간에 갇힌 채 이른바 이상한 집이라 불리는 공간에 살던 기이한 분위기의 아이들과 원장 미스 페레그린을 만나기 시작하면서부터 신비하고도 매혹적인 도전과 모험은 시작된다. 


꿈을 잃은 어른들에게 있어 동화는 한낱 꾸며진 이야기에 불과하듯, 제이크 할아버지의 이야기라고 하여 별반 다르지 않다. 할아버지가 경험했던 사실들을 제이크가 부모님께 아무리 잘 설명해 보았자 어른들은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의 조각 난 기억들이 이리저리 굴러다니다가 뜬금없이 하나 둘 튀어나온 것쯤으로 받아들여지기 일쑤였다. 덕분에 제이크 역시 할아버지를 둘도 없는 친구처럼 여기고는 있으나 또래는 물론 주변 사람들과 어른들의 영향을 받은 탓에 긴가민가 하던 찰나다. 그러다가 할아버지가 늘 입버릇처럼 말하던 캐릭터들이 실제로 제이크의 눈 앞에 떡하니 나타나게 되니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반가움이 앞선다. 이게 도대체 꿈일까 생시일까.



미스 페레그린(에바 그린)은 시간을 조종하였으며, 멋진 새로 변신 가능한, 신비한 능력을 지닌 여성이었다. 제이크와 묘한 감정에 빠진 소녀 엠마(엘라 퍼넬)는 체중이 공기보다 가벼워 늘 납으로 된 신발을 신고 있어야 했으며, 공기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 밖에 손이 닿을 때마다 불을 만들어내는 소녀, 몸 속에서 벌을 키우는 소년, 놀라울 정도의 괴력을 지니고 있거나 뒷머리에는 흡사 괴물 같은 형상의 입이 달린 소녀, 투명인간 소년, 식물을 급속도로 성장시키는 기묘한 능력을 지닌 소녀, 흰색의 쌍둥이 형제, 무생물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소년 등 독특하고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이 제이크의 시선을, 아니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루프라는 기이한 세계에 발을 들여 놓은 제이크는 엠마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다. 두 사람은 과거 제이크의 할아버지가 그랬듯이 마치 인력이 작용하는 양 아주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게 된다. 


영화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배경이자 개념 두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시간을 일정한 기간 동안 가둬 놓은 채 무한 반복하게 되는 '루프'다. 미스 페레그린은 자신의 시간 조정 능력을 십분 발휘, 1943년 9월 3일 독일 나치의 공습으로 자신들의 삶의 터전인 유치원이 쑥대밭이 되려는 순간, 정확히 24시간을 되돌려 날짜를 9월 2일로 옮겨 놓는다. 이후로는 9월 3일 폭탄이 투하되는 똑같은 시각이 될 때면 다시금 하루를 되돌리는 방식으로 무한 반복된다. 그러니까 가장 안전할 것이라 여겨지는 날짜를 임의로 택한 뒤 루프로 설정, 해당 날짜를 반복적으로 살아가게 되는 방식이다. 이렇듯 루프 내에서 살다 보니 우리의 일상처럼 시간이 지나면 늙고 죽음에 이르게 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페레그린과 아이들은 이러한 방식으로 삶을 유지해 오고 있었다. 



또 하나는 '임브린'이라 불리는 돌연변이, 그러니까 별종에 대한 개념이다. 미스 페레그린을 비롯하여 유치원에 모여 살고 있는 아이들 모두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유전적으로 특이한 능력을 하나씩 지니고 있었다. 이들은 이러한 특성 때문에 우리처럼 일반 사람들과는 어울려 살 수가 없어 특별한 시공간 루프에서 은둔자적 삶을 살아간다. 


영화는 이러한 배경과 개념 위에 거대한 악을 형상화하였고, 제이크 및 미스 페레그린을 비롯한 착한 임브린과 그들과의 숙명적인 싸움을 그려 나가고 있다. 보통사람들 기준에서는 임브린도 별종이지만, 그 안에는 또 다른 별종이 존재한다. 임브린 중 사악한 욕심을 품은 일부가 실수로 괴물 할로게스트로 진화하게 됐고, 이들은 평범하게 살고 있는 임브린들을 해치며 자신들의 욕심을 채워 나간다. 심지어 보통 사람들의 세상까지 넘보며 사람과 동물을 마구 해치곤 한다. 그들의 리더(사무엘 L 잭슨)는 할로게스트들이 인간의 형상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도우며, 더욱 사악해져가는 욕망에 기댄 채 어느덧 영생마저 꿈꾸고 있었다. 


나치군이 비행기를 이용하여 폭탄을 투하하는 순간, 시간을 되돌리지 않으면 페레그린과 아이들의 삶의 터전인 유치원은 폭사하고 만다. 페레그린은 그 일촉즉발의 찰나에 시간을 되돌려 아이들에게 가장 안전한 시공간을 보장해 준다. 루프를 파괴하며 유치원의 아이들을 호시탐탐 노리던 할로게스트는 유치원 건물 위로 폭탄을 투하시켜 모든 걸 잿더미화하려 했던 나치와 동급의 악마다.



이 거대한 악과 착한 임브린들이 펼치는 흥미진진한 싸움은 손에 땀을 쥐게 하며, 결정적인 순간마다 아이들이 선보이던 필살기는 왠지 개구져 보인다. 하지만 모두가 정신 나갔다고 하거나 지나치게 환상에 몰두한 현상 때문이라며 폄하하기 바빴던 할아버지의 경험담과 제이크의 이야기가 거짓이 아닌 눈앞에서 현실로 펼쳐지는 순간, 그 어떠한 상황보다 통쾌하면서도 짜릿하게 다가오지 않을 수 없다. 



침몰한 뒤 역사적 기록으로 남아 수십년 동안을 바닷속에 고이 잠들어 있던 초대형 유람선, 이는 엠마 만의 은밀한 개인 공간으로 변모되거나 특별한 능력을 지닌 아이들에 의해 생명력을 부여 받아 그들의 모험과 도전에 힘을 싣는다. 특히 엠마가 제이크를 데리고 바닷속으로 들어가 공기를 불어넣어 물을 빼낸 뒤 유람선 내에 휴식 공간을 만들던 장면은 너무나 매혹적이었다.


상상력의 산물인 각종 캐릭터를 지켜보는 일 만으로도 사실 눈은 매우 즐겁다.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펼쳐지는 할로게스트와 착한 임브린들의 짜릿한 대결 역시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유전적으로 특별한 능력을 타고난 이들은 보통사람들과는 결코 어울려 살 수 없는 일종의 별종이다. 주류가 되지 못한 채 루프에서 살아가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미스 페레그린은 괴력을 지닌 사악하기 짝이없는 악당을 앞에 두고서도 이들 임브린과 아이들만큼은 끝까지 보호하려 했다. 아이들을 반드시 지켜 달라는 그녀의 간곡한 외마디로부터는, 보통사람이 아닌 탓에 은둔자적 삶을 살아가야 하는 이들과 어린이 등 약자를 향한 감독의 따스한 시선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희망도 엿보인다. 나약하기 이를 데 없던 아이들은 제이크를 필두로 할로게스트와 맞서 싸우며 점차 성장해 나갈 것이고, 그들 스스로 용기를 북돋우며 어떤 환경과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갈 수 있는 자신감을 터득하게 될 테니 말이다.  



감독  팀 버튼


* 이미지 출처 : 다음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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