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기발한 상상 환상적인 비주얼 '거울나라의 앨리스'

새 날 2016. 9. 10.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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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물려주신 선박 '원더호'를 타고 전 세계를 누비던 앨리스(미아 와시코브스카)가 수년 만에 고국인 영국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녀를 둘러싼 현실은 온전히 그녀의 편이 아니었다. 그녀의 엄마는 앨리스가 부재 중인 사이 보유하고 있던 회사 지분을 모두 잃고 집마저 저당잡힌 상황, 이를 돌려받기 위해선 한때 앨리스와 결혼까지 약속했었으나 영 밥맛 없는 에디슨에게 원더호를 떠넘겨야 할 판국이다. 엄마는 꿈만으로는 살 수 없다며 앨리스를 설득해 보지만, 앨리스는 엄마와 같은 삶은 살기 싫다며 완강히 버틴다. 그 때다. 파란색 나비 형상을 한 '압솔렘'이 앨리스 앞에 등장하고, 앨리스는 자신의 의지라기보다 무언가에 홀린 듯 자연스레 압솔렘을 따라 거울속 세계로 뛰어드는데.. 


그녀가 뛰어든 세상은 수년 전에 다녀왔던 바로 그 '이상한 나라'였다. 하얀 여왕(앤 해서웨이)이며, 쌍둥이 형제, 채셔 고양이, 말하는 토끼 등 낯익은 친구들이 그녀의 귀환을 반겼다. 하지만 모자 장수(조니 뎁)가 가족 문제 때문에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음을 전해 듣게 된 앨리스는 그를 찾아가 상태를 직접 확인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과거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녀는 하얀 여왕의 안내에 따라 본격적인 시간여행에 나서게 되는데...



앨리스가 돌아왔다. 무려 6년만이다. 그래서 더욱 반갑다. 당시 출연했던 배우들을 다시 만나는 것만으로도 사실 가슴 설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우리의 안구를 호강시켜 주었던 형형색색의 환상적인 비주얼을 다시 볼 수 있게 되다니 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이번 작품은 루이스 캐럴이 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속편 동화 '거울나라의 앨리스'가 원작이다. 하지만 앨리스가 등장하는 것 외에 전작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는 내용적으로 전혀 연관이 없듯이, 이번 작품 역시 원작을 모티브로 내용 일부분을 차용하고는 있으나 전체적으로는 그다지 관련이 없다는 점이 특징이다. 



세상의 편견은 앨리스의 삶을 옭아매는 족쇄 역할을 톡톡히하고 있었으며, 주변은 온통 갑갑한 일들뿐이다. 시간 역시 그녀의 편이 아니다. 그녀에게는 둘도 없는 삶의 멘토이자 영웅이었던 아버지를 앗아간 존재가 다름아닌 시간이었기에 이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질 수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압솔렘의 등장은 앨리스를 현실로부터 잠시 벗어나게 하여 판타지로 안내하는, 구세주와 같은 존재로 다가온다. 현실에 치인 그녀가 과거 한때 잃었던 꿈을 되찾게 해 준, 이상한 나라로 다시 뛰어들지 않을 이유가 없다.  


모자 장수의 주변 친구들은 붉은 여왕(헬레나 본햄 카터)의 계략에 의해 벌어진 '섬뜩끔찍한 날'에 그의 가족들이 모두 죽었음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으나, 심지어 앨리스조차도,, 모자 장수만큼은 자신의 가족이 분명히 어딘가에 살아있을 것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 모자 장수의 이상 증상은 다름아닌 그의 주변 친구들과 그와 전혀 다른, 어딘가 어긋난 신념체계에서 비롯된 일종의 마음의 병 탓이다. 믿음이 배제된 우정은 모자 장수에게 있어 진정한 우정이 아니었다.



하지만 앨리스의 생각은 모자 장수와는 사뭇 달랐다. 앨리스가 본격적인 시간여행에 나설 수 있었던 건 그가 그녀를 믿든 믿지 않든 모자 장수를 진정한 친구로 여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오롯이 모자 장수의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해 벌인 과거 시점으로의 모험은 그야말로 눈물겹기 짝이없다. 상영 시간의 대부분이 이에 할애돼 있다. 하지만 특정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 어떤 사건에 개입하여 이를 원천적으로 되돌리려는 시간여행 방식은 흔하다 못해 식상하다. 아울러 '크로노스피어'라 불리는 일종의 타임머신류도 전혀 새로울 게 없다. 다소 아쉬운 대목이다.



이른바 대갈마왕이라 불리는 붉은 여왕은 전편에서 아웃랜드로 쫓겨난 신세였으나 악한 기운의 카리스마와 독설은 여전했다. 다만, 몸짓이며 손짓 하나하나까지 우아하기 짝이없던, 붉은 여왕의 친동생인 하얀 여왕과의 사이에서 벌어졌던 어릴적 충격적인 한 사건은 극적인 반전 요소로 다가올 법하다. 붉은 여왕으로 분장한 헬레나 본햄 카터의 연기력은 그야말로 대단했다. 비록 독설이었음에도 우리 몸 어딘가 막혀 있던 체증을 한꺼번에 뻥 뚫는, 일종의 사이다적인 요소였다. 



등장 캐릭터들의 언어유희는 원작에서도 그랬듯 이 영화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특징 중 하나다. 그들이 내뱉는 언어 하나하나는 독특한 작품 분위기와 찰떡궁합을 이룬다. 시간을 의인화한 대목도 이채롭다. 이 세상을 실질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절대시간을 사람의 형상으로 재탄생시켰다. 시간 캐릭터는 사챠 바론 코헨이 맡아 열연을 펼친다. 시간 캐릭터와 관련하여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그가 앨리스를 열심히 쫓아다닐 즈음이다. 모자 장수와 그 친구들이 티타임을 갖고 있을 때 '시간'이 현장으로 추락하게 되는데, 이들이 그를 향해 대놓고 조롱하다가 결국 '시간'에 의해 티타임 시간에 갇히고 마는 장면은 두고두고 웃음을 유발한다.  


독특한 캐릭터만으로도 눈은 호사스럽다. 그런데 화려한 색상이며 의상 그리고 패션 등의 특별한 조합은 우리에게 더 많은 볼거리를 제공해 준다. 안구가 호강한다는 표현은 바로 이럴 때 써먹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건 바로 조니 뎁의 분장 아니었나 싶다. 그가 슬픔에 겨워 의기소침할 때, 그리고 다시 희망을 부여잡을 때, 분노가 치솟아 오를 때 등 그의 심경에 따라 그때그때 시시각각 변모하며 분위기에 걸맞게 반응하는 눈 주위 분장의 형태 및 색상은 그야말로 환상이었다. 제작진들이 얼마나 정성을 기울였을지 짐작케 하고도 남는다. 



이 영화는 판타지 장르라면 으레 지니고 있어야 할 덕목들을 두루두루 갖췄다. '시간' 캐릭터가 거느리는 보잘 것 없던 또 다른 다양한 캐릭터들, 이들은 각기 '초'를 의미하고 있다가도, 흡사 트랜스포머와 같은 합체를 통해 하나의 로봇 형태를 갖춰 '분'을 의미하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고, 거듭 합체하여 보다 거대한 로봇 형태로 변모하게 되면 이른바 '시'가 됐다. 여기에 시간여행을 매개로 하는, 시공간을 자유자재로, 아울러 극적으로 이동하는 판타지적인 요소들이 더해지고, 무엇보다 상상력에 의해 탄생했을 법한 이상한 나라의 형형색색 기발한 형태의 생물들과 주변의 온갖 볼거리를 통해 관람 내내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앨리스가 갑갑한 현실에서 탈출, 거울속 '이상한 나라'에 방문하여 모험을 즐기며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 수 있었듯, 우리 역시 영화 감상이라는 간접경험을 통해 잠시나마 현실로부터의 일탈을 꿈꾸며 모두가 즐겁고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이상한 나라'식 언어유희를 잠시 빌려 보자면, 그러니까 바로 이런 류의 표현이다.


모두 '즐복'해지기를...  



감독  제임스 보빈


* 이미지 출처 : 다음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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