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꿈은 꾸고 있을 때만 달콤한 법 '카페 소사이어티'

새 날 2016. 9. 16.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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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에서 가장 잘나가는 에이전시를 운영하는 필(스티브 카렐), 비단 그의 화려한 이력과 지위가 아니더라도 자신감 충만한 그의 목소리나 행동을 보고 있자면 누구나 짐작하듯 그는 실제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사람이다. 그런 그에게 어느날 누나의 막내아들인 조카 바비(제시 아이젠버그)가 찾아온다. 할리우드에서 한 자리를 꿰차고 앉은 필의 후광을 통해 그 역시 이곳에서의 성공을 꿈꿔보기 위해서다. 


매우 가까운 친인척 사이임에도 의외로 어렵사리 마련된 두 사람의 첫 대면, 조카의 방문에 그다지 탐탁지않아 하던 눈치임이 분명했던 필이었으나, 바비의 적극적이면서도 긍정적인 태도를 보며 이내 마음을 바꿔 그를 돕기로 한다. 필의 비서인 보니(크리스틴 스튜어트)라 불리는 여성을 소개해 주며, 조카의 할리우드 생활이 어렵지 않도록 도움을 준 것도 바로 그러한 연유 탓이다. 



보니와 바비 두 사람은 필의 배려로 할리우드 일대를 함께 여행하게 된다. 사실 바비는 보니의 아름다운 외모에 처음부터 끌렸다. 이를 숨기지 않고 보니에게 보다 적극적으로 접근해 가던 바비다. 보니 역시 그에게 마음의 문을 열며 점차 서로의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날 겉으로는 매우 화려해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온통 허위와 가식 투성이인 할리우드에 점차 신물이 나던 바비, 보니에게 자신의 고향인 뉴욕으로 함께 가자며 제안하는데...



필과 바비는 혈연관계로 보자면 삼촌과 조카 사이였고, 일과 관련해서는 사용자와 일개 말단 직원 사이였다. 뿐만 아니다. 어처구니없게도 두 사람은 보니를 사이에 둔, 일종의 연적 관계이기도 했다. 보니에게 있어 필은 아버지뻘이다. 더구나 아내와 25년 간이나 아무런 문제 없이 잘 살아온 필이었다. 하지만 바비가 그랬듯이 필 또한 그녀에게 한눈에 반해 온통 마음을 빼앗긴 상황이다. 보니 역시 활력에 넘치고 할리우드에서 확고한 자리를 잡고 있는 필에게 빠져들었다. 흔히 생각하듯 돈을 바란 접근은 아니었다.


하지만 바비는 순수함이라는 그만의 매력과 끊임없는 정열 그리고 젊음이라는 가능성을 지닌 청년으로서 보니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을 택해야 하는 갈림길에서 그녀가 자신도 모르겠노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던 건 결코 과장이 아니며, 거짓된 행동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러니까 어쩌면 필이 지닌 매력은 화려함이라는 할리우드가 지니고 있을 법한 종류의 것이었고, 바비가 지닌 매력은 세련됨과 젊음, 열정 따위를 연상시키는 뉴욕을 상징할 만한 그러한 것이었다. 서로 만만치 않은 상대임이 분명하다. 보니는 할리우드와 뉴욕, 둘 중 과연 어디를 택하게 될까?



세 사람 사이에서 펼쳐지는 아슬아슬한 로맨스 사이로 문득 엿보이는 바비의 집안은 그야말로 흥미롭다. 때문에 바비와 바니 그리고 필 세 사람 간에 얽힌 로맨스가 이 작품의 핵심 축이라고 한다면, 소소한 바비의 집안 이야기는 또 다른 이야기의 축이라고 볼 수 있다. 바비의 부모는 서로 독설을 퍼붓는 등 늘 티격태격거리면서도 흡사 평행선을 유지하고 있는 것 마냥 멀어지거나 가까워짐 없이 우리네 인생이 그러하듯 그럭저럭 살아간다.


바비의 큰형은 이른바 갱스터의 핵심 인물로서 그의 문제해결 방법은 언제나 폭력행위나 살인과 같은 끔찍한 방식이다. 물론 이 작품 속에서는 사람이 죽어나가는 장면조차도, 아울러 그 이후의 처리 장면조차도 매우 시니컬하다. 하지만 누나의 남편인 매형은 바비의 형이나 누나와는 사뭇 다른 사람이었다. 인문학적인 지식과 소양이 가득한 그는 매사를 그와 비슷한 시각으로 바라보며, 행동 또한 그에 걸맞았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이상과 현실 사이의 실질적인 간극을 다름아닌 이들 가족의 조합을 통해 보여주는 듯싶다. 아울러 죽음을 쿨하게 묘사했던 건, 진짜로 그렇다기보다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애써 떨쳐내려 했던 역설적인 장치 아니었을까 싶다. 



잔잔하면서도 작품 전반으로는 위트가 넘친다. 손을 대면 언제라도 쉽게 잡힐 것처럼 지척에 있으나 우린 늘 선택이라는 갈림길 사이에서 이를 어이없게 혹은 어쩔 수 없이 놓쳐버리곤 한다. 뒤를 돌아보며 당시 반대편의 선택을 했을 경우 현재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를 그려보지만, 이상 혹은 꿈과 현실 사이의 어쩔 수 없는 간극을 재차 확인할 뿐이다. 다소 씁쓸한 내용을 담고 있으나 전반적인 작품 분위기는 배경으로 흘러나오는 경쾌한 재즈 음악과 화려하고 밝은 색감의 영상처럼 시종일관 관객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속사포 같은 배우들의 대사는 우디 앨런표 영화임을 입증한다.



바비의 열정은 할리우드를 벗어나 뉴욕에 안착하면서 더욱 빛을 발한다. 그의 형 덕분에 얻은 일자리였지만, 그만의 특유한 성실함과 친화력은 이른바 상류층들의 사교 모임인 카페 소사이어티를 크게 키우는 촉매 역할을 톡톡히 한다. 


바비의 베로니카와 또 다른 베로니카(블레이크 라이블리)와의 만남 그리고 이들과 이루어지거나 그렇지 못한 사랑, 이 얼마나 얄궂은 운명인가. 이미 경험한 일에 대해선 흥미가 반감되기 일쑤이고 반대로 경험하지 못한 일에 대해선 막연한 동경과 환상을 갖게 되는 것처럼, 인생이든 연애든 결혼이든 우리가 무언가를 결정하고 선택해야 하는 갈림길에서 이미 선택한 길이 아닌 그 반대편의 길에 대해 우린 늘 막연한 동경 따위를 갖곤 한다. 



그러나 현재와 반대의 길을 택한다고 하여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행복한 삶이 될 것이라는 보장은 단언컨대 없다. 꿈은 꾸고 있을 때만 달콤할 뿐, 꿈과 이상은 현실과는 달리 늘 이렇듯 우리에게 환상을 심어 주곤 하지만, 어떤 선택을 하든 후회는 뒤따르기 마련이다. 때문에 어쩌면 영화속 보니처럼 시류에 맞춰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변모해 가는 방식이 삶을 대하는 가장 현명한 자세 아닐까 싶다. 물론 이러한 그녀조차도 꿈 속에서 자주 허우적거린다는 건 여전한 함정이지만 말이다.


이 영화는 누구나 하나쯤 간직하고 있을 법한 아련한 로맨스를 통해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 깊은 여운이 남는 작품이다. 이 계절에 너무도 잘 어울림직하다.



감독  우디 앨런


* 이미지 출처 : 다음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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