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시간의 유한성, 그로 인해 더욱 가치 있는 삶 '열두살 샘'

새 날 2016. 11. 22.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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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로비 케이)은 백혈병을 앓고 있는 12살 소년이다. 물론 백혈병에 걸렸다고 하여 모두가 바로 생명을 잃는 건 아니다. 백혈병 환자의 다수는 완치된 후 재발 없이 건강하게 살아간다. 하지만 그들 중 일부는 그렇지 못하다. 샘은 후자에 속하니 지독히도 운이 없는 편이다. 결국 병원 측도 치료 중단을 선언해 온다. 덕분에 샘은 끔찍했던 병원을 벗어나 간절히 원하던 가정에서의 일상 생활이 가능해졌다. 비록 시한부의 삶이긴 하지만 말이다.


샘에겐 소아병동에서 만나 함께 투병해 온 펠릭스(알렉스 에텔)라 불리는 절친이 있다. 둘은 시한부 삶이라는 동병상련의 아픔을 함께 나누는 사이이다. 샘은 죽게 되면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는 사실을 어느날 문득 깨닫는다. 자신과 관련한 기록 하나쯤은 왠지 세상에 남겨 놓아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생긴 것도 바로 이 즈음이다. 샘은 글과 영상으로 일기를 작성하기 시작한다. 아울러 펠릭스와 함께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들, 그러니까 버킷리스트를 작성하여 이를 실행에 옮기는데...



이 영화의 원작은 세계아동문학상을 수상, 13개국에 번역 출간된 셀리 니콜슨의 베스트셀러 소설 'WAYS TO LIVE FOREVER'이다. 우리나라에는 '아빠, 울지 마세요'란 제목으로 출간된 바 있다. 샘과 펠릭스에게 있어 삶과 죽음이란 흡사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이란 존재를 올바로 인지하기란 여전히 쉽지 않은 노릇이다. 입으로는 타인의 죽음뿐 아니라 자신들의 죽음마저 매우 가볍게 취급하면서 희화화하곤 하지만, 속내는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은 듯싶다. 정작 죽음을 지척에서 바라보거나 맞이해야 하는 상황에선 두려움에 떨며 어쩔 줄 몰라해하기 때문이다. 



죽음 이후의 모습은 어떨지, 또한 죽을 때의 고통은 어떠한 종류의 것인지, 자신이 죽은 이후에도 세상은 잘 돌아갈 것인지 등 시한부 삶의 아이들에겐 모든 것이 호기심투성이다. 샘이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것들에는 성인용 공포영화 보기나 술 마시고 담배 피우기, 그리고 여자친구와 진한 키스하기 등과 같이 보통 사람들과는 달리 어른이 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 특수한 상황에 놓인 그들만의 아픈 현실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샘보다 과감하고 엉뚱한 구석이 있으며, 아주 조금은 성숙해 보이는 펠릭스 덕분에 샘은 자신의 소원을 하나 둘 이뤄나간다. 샘의 상상은 간혹 판타지로 승화되어 관객들의 눈앞에서 화려한 색감의 애니메이션으로 발현되곤 한다.



아이들의 세세한 부분까지 일거수일투족을 챙기는 건 대부분 엄마의 몫이다. 적어도 이 영화 속에서는 그렇다. 샘이 갑자기 코피를 줄줄 흘리거나 먹던 음식을 토하면 가장 먼저 달려오는 건 늘 엄마(에밀리아 포스)였다. 아빠(벤 채플린)는 멀찍이서 바라보다 가끔 한 마디씩 툭 던지거나, 의사의 처방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게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이다. 


그러던 어느날이다. 아빠에게도 작은 변화가 찾아온다. 우연히 샘의 일기장과 영상일기를 보게 된 뒤부터다. 사실 샘과 아빠와의 사이엔 눈에 보이지 않는, 좀 더 가까워지기 어려운 미묘한 간극이 존재했으나, 이후 그 거리가 한층 줄어든 느낌이다.



샘의 유일한 친구이자 든든한 삶의 버팀목이던 펠릭스가 급작스레 혼수상태에 빠져들게 되고, 샘마저 평정심을 잃고 만다. 펠릭스와 함께 우스갯소리로 중얼거리던 죽음의 그림자가 막상 그의 근처에서 어른거리자, 이를 현실로 받아들이기가 두려웠던 셈이다. 임상실험 중이던 약품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할 즈음 샘은 어쩔 수 없이 그마저도 중단한다. 한층 가까워진 죽음, 샘의 아빠는 아이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음을 직감한다. 그런 아빠에게 샘은 '아빠, 울지마' 라며 의연하게 말한다. 



불치병에 걸려 시한부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그린 영화는 제법 많다. 전형적인 신파극이 있는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은 작품도 더러 있다. 이 영화는 이후에 개봉한 '안녕 헤이즐'과 여러모로 닮아 있다. 시한부 삶을 선고 받은 소년과 소녀의 짧지만 비교적 의연했던 생애를 그리고 있는 탓이다. 케일리(엘라 퍼넬)는 샘이 소원을 이룰 수 있도록 곁에서 남모르게 도와 준 앳된 소녀다. 구체적으로 언급하자면 '여자친구와 진한 키스하기' 미션을 극적으로 성사시켜준 인물이다. 어딘가 낯 익다 했는데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에서 엠마 역을 맡았던 배우이다. 



죽음이란 당사자에겐 모든 것을 잃는 결과물이자 다른 이들에겐 영원한 이별을 뜻하는 매우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하지만 어쩌면 이는 운명인 데다 어느 누구든 반드시 한 번은 맞닥뜨려야 할 필연이기에 마냥 슬픈 현실로만 받아들일 수도 없다. 큰 틀에서 보자면 사람이 됐든 아니면 여타의 생물이 됐든 한 개체의 죽음이란 생태계 순환의 일환이다. 영화 속에서 샘의 할머니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의 죽음을 나비의 생애에 빗대어 보자면, 이는 애벌레가 변태를 하는 과정과 흡사하다고. 반드시 변태를 거쳐야 멋진 나비로 거듭날 수 있는 것처럼 죽음이란 곧 새 생명의 잉태를 의미하는 바이고, 아울러 생태계는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비로소 순환을 거듭한다. 


죽음이라는 물리적 한계, 즉 시간의 유한성은 원하든 원치 않든 까닭 모를 인간의 불안감과 가까이 맞닿아 있다. 하지만 때로는 이로 인해 우리의 삶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오기도 한다. 역설적이게도 우린 간혹 이러한 류의 작품을 통해 보다 가치 있는 삶을 꿈꾸곤 하니 말이다.



감독  구스타보 론


* 이미지 출처 :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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