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웃음으로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영화 '형'

새 날 2016. 11. 25.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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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죄로 구속되어 형무소에서 복역 중이던 고두식(조정석)은 유도 시합 중 시신경이 손상되어 시력을 완전히 잃은 이복동생 고두영(도경수)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가석방된다. 이를 성사시키기 위해 그는 법관과 교도관 앞에서 가짜 눈물쇼를 선보인다. 이 눈물 나는 연기(?) 덕분에 그에겐 1년이라는 달콤한 자유시간이 허락된다. 물론 두식에게 있어 동생 일 따위는 애초 안중에도 없었으며, 순전히 형무소에서 빠져나올 요량으로 벌인 일종의 꼼수였다. 사기 기질 하나는 정말 제대로 타고난 그다. 


두식의 진짜 관심은 정작 다른 곳에 있었다. 출소하자마자 동생 명의의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돈을 빌린 뒤 값비싼 외제차부터 뽑은 그였다. 이쯤되면 두식의 진짜 속내가 어떤 종류의 것인지 대충 알 것도 같다. 과거 전력이 모든 걸 말해 주기 때문이다. 두식은 일찌감치 부모와의 관계가 틀어지는 바람에 청소년기에 집을 뛰쳐나갔다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고, 그 사이 부모 두 분은 세상을 등지고 만다. 이후 큰 짐을 오롯이 감내해야 했던 건 동생 두영의 몫이었다. 



하지만 설상가상이다. 정신 차릴 겨를도 없이 또 다른 난관이 두영을 덮쳐 온다. 시력을 잃고 만 것이다. 이 즈음 생사조차 모른 채 소식이 닿지 않던 이복형이 느닷없이 들이닥쳤으니,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던 건 지극히 당연한 노릇이다. 두 형제는 형과 아우의 관계가 아닌 흡사 원수지간처럼 늘 으르렁거렸으며 사사건건 충돌해야 했다. 두영은 한때 잘 나가던 국가대표 유도 선수였으나, 불의의 사고로 시각 장애인이 되는 바람에 자신을 세상 밖으로 드러내는 일을 극도로 꺼려하며 거의 히키코모리적 삶을 살아가던 와중이다. 



두영을 전담하던 코치(박신혜)가 그의 재기를 돕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써보지만, 나홀로 담을 높이 쌓아둔 덕분인지 굳게 닫힌 두영의 마음은 좀처럼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자신을 바라보는 세상 사람들의 시선이 두렵고 지나치게 싫었던 나머지 의도적으로 이를 피하려는 기색이 역력한 그다. 주변인들이 두영에게 가까이 하면 할수록 외려 더욱 멀어지기를 수도 없이 반복한다. 그가 입은 상처는 예상보다 훨씬 깊어 쉽게 아물 것 같지가 않다. 



흡사 평행선을 끝없이 달릴 듯 두식과 두영 사이를 팽팽히 감돌던 긴장감은 함께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조금씩 누그러지기 시작한다. 두 사람 사이의 간극이 점차 좁혀지기 시작한 것이다. 굳어져 있던 마음이 눈녹듯 녹기 시작한 건 우연한 기회에 서로의 진심이 통하고 나서부터다. 여기에 공통 관심사와 함께 어릴적 쌓아 온 추억이 중첩되자 둘 사이에서 끊임 없이 유발돼 오던 갈등과 악감정들이 일제히 사라지고, 어느덧 형제라면 응당 있을 법한 우애가 싹트면서 서로 없어선 안 될 관계로까지 급진전하게 된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으나 두 사람 사이엔 제법 많은 일들이 벌어진다. 사람 사는 세상이 늘 그러하듯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있는 법이다. 형의 가석방으로 형제의 우애가 되살아나고, 현실 세계와 담을 쌓아 오던 동생은 장애인 국가대표라는 새로운 목표에 도전하게 되면서 조금씩 세상과의 접촉면을 넓히며 소통을 꾀하게 된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즈음, 그러니까 먹먹해진 감정을 추스리는 동안 스크린 위로 흘러나오던 곡은 요즘 대세로 떠오르고 있는 '걱정말아요 그대'였다. 물론 원곡은 아니었고, 조정석 도경수 두 사람이 듀엣으로 부른 새로운 버전이다. 이 노래는 영화 관람 뒤 남은 잔잔한 여운에 왠지 파스텔톤의 색감을 덧입히며 깊이를 더해 주는 듯한 느낌이다.



가히 조정석의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의 개성이 강하게 묻어나오는 작품이다. 밉살스럽지만 정작 밉지 않은 고두식 캐릭터는 오롯이 조정석 그의 것이었다. 능글맞은 코믹 연기는 자연스러우면서도 거침이 없다. 시각장애인 역할을 잘 소화해낸 동생 역의 도경수 역시 이번 작품을 통해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두 사람이 듀엣으로 창조해낸 웃음은 심심하고 소소하지만 무언가 찰진 구석이 있다. 가령 리우 올림픽 참가를 앞두고 뜬금없이 선보인 삼바춤 따위가 그러하다. 이 영화가 지닌 매력 포인트 아닐까 싶다.



시력을 잃어 세상과 담을 쌓은 채 살아가던 동생에게 문득 들이닥친 사기 전과범이자 그의 이복형인 고두식, 두 사람 모두는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기엔 여러모로 부족함과 허점투성이다. 비단 이들뿐이겠는가. 실은 우리 모두가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다. 하지만 형제 사이라면 응당 형성돼 있을 법한 끈끈한 우애는 어느덧 이러한 난관을 잘 극복하게 해 주고 서로가 서로를 성장시키는 훌륭한 자양분이 되어 준다. 두영이 브라질 리우 올림픽경기장에서 목청껏 내지르던 "형"이라는 짧지만 굵은 외마디 속에서 아주 미세한 떨림과 울림을 감지할 수 있었던 건 바로 이 때문이다. 


계절적으로, 아울러 최근 주변 여건이 우리를 여러모로 힘들고 지치게 한다. 이런 상황에서 해당 영화가 선사하는 깨알 같은 웃음과 잔잔한 감동은 충분치는 않더라도 우리에게 소소한 위로를 건네온다. 다만, 스토리가 밋밋하고 지나치게 평면적이었던 건 다소 아쉬운 대목이다. 



감독  권수경


* 이미지 출처 :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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