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산책로는 우리가 사는 세상의 축소판이다

새 날 2016. 9. 1.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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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부터 헬스장 대신 운동 장소로 택한 천변의 산책로는 세상을 그대로 옮겨놓은 축소판이라 할 만하다. 협소하고 제한된 장소가 아닌, 탁 트인 공간인 데다가 만인들에게 개방된 곳이다 보니, 그야말로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을 접하게 한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연령대는 갓난아기부터 연로하신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그 스펙트럼이 무척 광활하다. 그 뿐만이 아니다. 장애인, 비장애인, 그리고 장애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걷는 일이 조금은 불편하거나 서툴러 보이는 사람, 어딘가 다친듯 병원 환자복을 입은 채 재활훈련을 나온 사람 등 겉으로 드러날 수 있는 웬만한 외양의 사람들은 모두 한꺼번에 이곳으로 쏟아져 나온 느낌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이곳을 찾을까? 물론 나처럼 오로지 운동을 목적으로 하는 분들도 더러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다양하게 갖춰진 각종 시설이나 환경을 고려해 볼 때, 아울러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면면을 놓고 볼 때, 그 수만큼이나 다양한 방문 목적이 존재할 것 같다. 우선 가볍게 산책을 나온 사람들을 쉽게 떠올림직하다. 실제로 가족 단위로 산책을 즐기는 분들이 제법 된다. 연인 사이로 보이는 청춘도 이곳에서는 흔한 모습이다. 주변에 설치된 운동기구를 활용하기 위한 사람들도 볼 수 있다. 산책로 옆으로는 자전거도로가 마련되어 있으니 당연히 자전거를 타려는 사람들도 이곳을 거쳐 갈 것이다. 


ⓒ아시아경제


출퇴근의 중간 경로로 이곳을 활용하는 분들도 있을 수 있다. 산책로 곳곳에는 물건을 팔거나 특정 회사의 제품을 홍보하기 위해 나온 사람들의 모습도 보인다. 불편한 몸으로 걷기 연습을 하는 사람이나 어르신들의 모습 역시 드물지 않다. 허리나 다리가 특정 방향으로 휘어 걷는 일조차 힘겨워 보이는 분들의 모습도 자주 보게 된다. 어렴풋이나마 그들이 겪어왔을 삶의 궤적이 그려진다. 그들에게는 건강할 때 건강을 돌보지 못한 각기 나름의 피치 못한 사연이 있을 법하다. 근래엔 애견을 산책시키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눈에 띌 만큼 급격하게 늘어나는 추세다. 


내가 이곳을 세상의 축소판이라고 말한 이유는 그만큼 산책로로 모여든 사람들이 천태만상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흔히 벌어지는 눈살을 찌푸리게 할 만한 일들 역시 간혹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흔히 만날 수 있는 현상은 다름아닌 무질서다. 좌측 우측으로 나뉜 보행구간을 잘 지키지 않아 불편을 초래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조깅을 하는 건 좋으나, 왜 자전거도로 위를 달려야 하는 건지, 그 바람에 자전거 이용자들이 곤욕을 치르게 되는 일이 흔하다. 늘어난 애견 인구 수만큼이나 매너를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도 서로가 서로를 불편하게 만든다. 목줄을 채우지 않은 채 애견을 산책시키는 사람들이 여전하다. 


기술의 발달은 인간의 생활을 편리하게 만들고 있음에도 이를 활용하는 이들의 오남용 때문에 되레 많은 사람들에게 불편을 초래하기도 한다. 휴대용 스피커의 성능이 나날이 발전하다 보니 소형 기기임에도 불구하고 음량은 상당히 풍부해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를 자전거에 장착한 채 쿵쾅거리며 달리는 이들을 간혹 만날 수 있었으나, 근래엔 너도 나도 이를 애용하는 추세다. 다양한 연령층이 해당 기술의 혜택을 누리고 있음은, 음악의 장르가 무척 다양해졌다는 사실을 통해 확인 가능하다. 



트로트, 가요, 팝, 클래식까지, 원치 않는 상황에서 우리는 아주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반강제로 듣게 된다. 혹시 이러한 결과가 소음 공해 유발이라는 사실을 알기는 한 걸까? 근래엔 산책로 요소요소에 설치된 운동기구에서 운동을 하거나 벤치에 앉은 채로 음악을 커다랗게 틀어놓은 이들도 보인다. 더 나아가 산책로를 걸으면서 음악소리로 시선을 집중시키는 사람 또한 나날이 늘고 있다. 음악을 듣고 싶은 경우 이어폰을 이용하거나 정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자신만 살짝 들리도록 작은 음량을 유지하면 모두가 불편하지 않을 텐데, 불특정다수로 하여금 불편을 겪게 하고 있는 셈이다. 스마트폰만 바라보며 걷는 스몸비족은 이곳에도 널렸다.


일반도로 위에서는 불법개조한 눈부신 전조등 때문에 수많은 자동차 운전자와 인도를 걷는 사람들이 피해를 입고 있듯, 이곳 자전거도로 역시 상황은 엇비슷하다. 밤에 산책로를 걷다 보면 순간 눈이 멀 정도로 환한 전조등을 켜놓은 채 달리는 자전거들을 흔히 만나게 된다. 전조등 없는 자전거도 스텔스라 불리며 위험하게 다가오지만, 반대로 너무 밝은 전조등 역시 위협적이지 않을 수 없다. 자전거를 타는 본인에게는 이러한 장치가 주변을 환히 밝히는 구세주로 다가올 법하다. 그러나 당사자를 제외한 주변의 모든 이들에게는 되레 치명적이다. 만약 자동차도로 위라면 자칫 대형사고를 유발, 상대방의 목숨까지 앗을 수 있다. 


ⓒ아시아경제


배려심 부족한 소수의 사람들로 인해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불편을 겪어야 하듯, 이곳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남이야 불편하든 말든 이는 관심 밖의 사안이고 오로지 자신만 편하면 그만이라는 얄팍한 이기심이 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는 셈이다. 때로는 목숨까지 위협할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이렇듯 간혹 일탈 행위를 벌이거나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이기적인 사람들의 밉살스러운 행위 때문에 많은 이들이 눈살을 찌푸리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타인을 배려하며 묵묵히 자신의 일에 몰두하고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노상 지지고 볶으며 시끌벅적하면서도 여전히 잘 돌아가고 있는 것처럼, 이곳 역시 특별히 통제를 가하거나 눈에 띄는 제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잡음 없이 잘 굴러가고 있는 이유이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건강을 챙기기 위해 열심히 걷고, 젊은이들은 천변의 산책길을 노닐며 친구들과 재잘거리거나 때로는 연인과의 애정을 돈독히 쌓곤 한다. 천변에 앉아 그동안 갈고 닦아온 악기 연주 실력을 뽐내며 하루의 피로를 풀거나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다. 가족 단위로 산책을 나온 이들은 모처럼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가족애를 만끽한다. 아울러 먹고사니즘에 치여 잃어버린 청춘, 그리고 변해버린 육체, 놓친 건강이지만, 그에 굴함 없이 오늘도 산책로를 걷는 사람들이 있다. 나 또한 걷고 달린다. 아직은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나와 열심히 걷고 뛰며 재잘거리는 것 역시 모두가 비슷한 이유 때문이 아닐는지.. 


산책로는 흡사 우리가 사는 세상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축소판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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