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상처로 고통을 겪고 있을 이들에게 '집으로 가는 먼 길'

새 날 2016. 5. 14. 13:04
반응형

세상을 살다 보면 누구나 아픔과 시련을 겪기 마련이다. 이에는 경중이 있을지언정 그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단언컨대 단 한 명도 없다. 그 중에서도 뜻하지 않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의 아픔과 상처는 더욱 깊고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소설속 레크리에이션 센터 내 슬픔 치유 모임도 다름아닌 그러한 사람들을 위해 마련된 일종의 치유의 장이다. 이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은 저마다 아픈 상처 하나씩을 안고 있으며, 현재 경험 중인 자신의 고통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그중에서도 '리타'가 겪는 고통은 유독 크게 다가온다. 하나밖에 없는 금쪽 같은 20대의 어여쁜 딸이 남자친구에 의해 살해 당하고, 그로 인해 깊은 내상을 입은 채 매일 매일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마니'는 연인을 급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잃은 데다가 함께 살아오며 정든 그의 아들마저 전처에게 빼앗긴 채 삶의 의욕을 완전히 상실한 30대의 여성으로 그려져있다. 마니가 살고 있는 주택의 주인인 '라번'은 남편이 죽은 뒤 세상 밖으로 단 한 발자욱도 나서지 않은 채 오로지 집안에만 갇혀 은둔자적 삶을 살아가는 70대의 여성이다. 같은 주택에 살고 있는 마니조차 그녀를 단 한 차례도 못봤을 정도이니 라번의 삶이 어떠했는지 대충 짐작 가능하다.

 

이들의 공통점은 무얼까? 위스콘신이라는 지역에 거처를 두고 있다는 점과 각자 아픈 상처를 지닌 채 힘겹게 세상을 살고 있다는 점 말고 또 있을까? 같은 지역에 살고 있으므로 물리적으로는 서로가 이웃일 수는 있겠으나 실은 화학적으로는 연관성을 전혀 찾을 수 없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재지'라 불리는 20대의 재치 넘치는 아리따운 여성에 의해 슬픔 치유 모임에서 만난 리타와 마니 그리고 마니의 집주인 라번까지 이들은 한데 엮이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재지는 외모도 출중했지만, 그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기분을 상승시켜주는 묘한 능력을 지닌 여성이다. 그녀의 밝은 표정만으로도 주변 사람들이 우울하던 감정을 쉽게 떨쳐내곤 한다. 공통분모라고는 전혀 없을 것 같고, 성격마저도 완전히 다른 이들은 오로지 마니가 보고 싶어하고 또한 만나고 싶어하는 죽은 연인의 아들 트로이를 만나기 위해 라스베가스를 향해 자동차 여행을 떠나기로 작정한다. 모두 재지가 만들어낸 산물이다. 이 작품은 이들이 자동차 여행을 통해 벌어지는 여러 에피소드를 겪으며 더욱 성장하고 삶에 새롭게 눈을 뜨게 된다는 픽션이다. 

 

 

재지라는 여성은 일종의 수호천사다. 생기발랄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그녀는 자신이 지닌 에너지를 주변 사람들에게 전달해주는 뛰어난 능력자다. 곁에 있으면 왠지 즐겁고 행복해지는 덕분에 늘 함께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되는 이가 아마도 재지 같은 류의 사람이 아닐까 싶다. 일면식도 없는 데다가 전혀 다른 성향의 사람들을 자동차 한 대에 모두 태워 수 일이 넘게 걸리는 긴 자동차 여행길에 오를 수 있게 한 놀라운 추진력은 오로지 활력 넘치는 재지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결과였다. 

 

그들이 여행길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사건들은 그야말로 놀라움의 연속이다. 때로는 목숨을 잃을 뻔한 위태로운 상황도 겪는다. 하지만 갖은 어려움을 스스로 이겨내거나 혹은 다른 이들의 도움을 통해 극복하며 결국 자동차 여행이라는 긴 여정을 모두 마친 일행은 그동안 여러 이유로 의기소침했던 삶의 태도가 눈에 띄게 변모하는, 매우 긍정적인 변화를 맛보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커다란 고통이다. 하지만 비단 이 책에서 언급된 상처와 아픔만이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는 저마다 크고 작은 상처를 안고 세상을 살아가는 입장에 처해있다. 여러 상처로 인해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거나 자신만의 세상에 갇힌 채 세상과 담을 쌓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저자는 과감히 자동차 여행을 떠나볼 것을 권한다.

 

물론 반드시 자동차 여행이라는 형식만을 애써 고집한다는 의미는 아닐 테다. 저자는 의식적으로라도 새로운 환경에 자신을 내던져보라며, 이를 자동차 여행이라는 비유를 통해 에둘러 표현한다. 비슷한 처지에 놓여있거나 혹은 반드시 그렇지는 않더라도, 무언가 삶의 방향을 잃은 채 의기소침해있는 이들, 그리고 도저히 헤어나오기 힘들 만큼 아픈 상처 및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이들 모두에게, 이러한 과정을 통해 상처를 치유하고 삶의 전환점을 마련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준다.

 

나 자신을 비롯한 우리 모두는 여러모로 많이 부족한 사람들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거나 고개를 끄덕이다 보면 자연스레 아픔이 치유되고, 누구든 큰 용기와 힘을 얻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이 소설을 통해 새삼 깨닫게 된다. 

 

저자 : 캐런 매퀘스천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