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해외여행 등산복 자제 당부, 배려인가 오지랖인가

새 날 2016. 4. 21.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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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복 등 아웃도어 의상을 생활 주변에서 흔히 접하게 된 건 제법 오래 전의 일이다. 국토의 70%가 산악지대이며, 도심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그곳에 쉽게 닿을 수 있는 우리만의 지형적 특성은 온 국민을 산악인으로 둔갑시키기에 충분하다. 실제로 주말은 물론이거니와 평일에도 등산복 차림에 배낭을 훌쩍 매고 산으로 향하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보게 된다. 산을 쉽게 접할 수 있는 건 그렇지 못한 국가 입장에서 볼 때 커다란 축복으로 다가올 만하다. 마치 눈 구경을 할 수 없는 국가에서는 스키 타는 일이, 바다가 없는 국가에서는 해수욕하는 일이 동경의 대상이 되듯 말이다. 

 

그래서 그런 걸까? 산악 지형에 둘러싸인 천혜의 자연환경이 우리의 의생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물론 물리적 토대가 주변 환경을 그에 걸맞게 변화시키는 건 지극히 당연한 노릇일 테지만 말이다. 비단 등산이 아니더라도 일상 속에서 등산복장과 유사한 아웃도어 의상을 입고 생활하는 사람들을 우린 흔히 보게 된다. 아웃도어 의상은 통기성이 좋고 땀을 잘 배출시키며 편안함까지 누릴 수 있는 특수한 재질로 만들어진 까닭에 편의성과 합리성을 추구하는 요즘 사람들에게 있어 일상복으로써 그야말로 인기 만점이다.

 

거리를 지나다니다 보면, 남녀 불문 형형색색의 등산복 차림은 이제 흔하디 흔한 패션 중 하나다. 뿐만 아니다. 여행길에서조차 등산복은 빠질 수 없는 아이템으로 변모하곤 한다. 물론 이를 전혀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일반적으로 훌륭한 볼거리들은 제법 먼길을 걷거나 때로는 가파른 산길을 올라야 접할 수 있기에 편한 복장의 대명사격인 등산복은 여행 복장의 더없이 좋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셈이다. 결국 등산복은 등산은 물론, 여행을 하거나 일상생활 속에서도 다기능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매력 만점의 훌륭한 의상이라 할 만하다. 어느덧 우리 사회에서는 패션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느낌마저 든다.

 

 

그렇다면 해외여행이라고 하여 다를까?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여행 또한 가능하다는 표현은 만고불변의 진리이다. 그만큼 여행길은 등산을 하듯 제법 고되고 힘든 여정의 연속이다. 이러한 생리를 잘 아는 관광객들은 편하고 활동하기에 더없이 좋아 일상에서도 인기가 높은 등산복을 여행 복장으로 쉽게 떠올리기 마련이다. 해외로 떠나는 단체 관광객들의 다수가 등산복을 입고 있다는 얘기는 이로부터 기인한다.

 

하지만 한국인들의 등산복 사랑이 조금은 극성스러웠던 걸까? 해외 여행지에서의 등산복 차림이 현지인들에게는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행위라는 지적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고풍스러운 풍광을 자랑하는 유럽에서는 주변의 모습과 전혀 매치되지 않는 알록달록한 한국 관광객들의 등산복장이 특히 문제가 되고 있단다. 현란한 원색 위주의 등산복장을 입은 단체 관광객들을 향한 현지인들과 여타 국가 관광객의 시선이 곱지 않을 정도이니 현지 분위기가 어떠한지 어림 짐작되는 상황이다. 물론 이러한 지적은 이미 수년 전부터 제기돼왔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 걸 보니 우리 관광객들의 복장은 여전히 등산복 위주이고, 그러다 보니 현지인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게 되는 모양이다.

 

급기야 여행사가 이에 대해 당부하는 사태까지 불거졌다. 한 패키지 유럽여행을 다녀온 관광객에 따르면 해당 여행지의 가이드로부터 사전 안내 문자가 날아왔는데, 거기엔 '유럽은 등산을 하는 곳이 아니라 아름다운 도시를 여행하는 곳입니다. 등산복은 꼭 피해주세요'라는 등산복 자제 내용이 담겨있더란다. 온라인에서는 이와 관련하여 다양한 반응들이 쏟아지고 있는 양상이다. 크게 두 부류다.

 

ⓒ아시아경제

 

개인이 무슨 옷을 입건 그에 대해 간여하는 건 지나친 오지랖이 아니냐는 의견과 우리나라에서라면 몰라도 전혀 이질적인 문화의 해외이니 기왕이면 당부에 따르는 게 좋지 않겠냐는 등의 의견으로 양분된다. 물론 여행이라는 상품은 개인의 자유 의지에 의한 사안일 테고, 복장 또한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에 해당하기에, 특별히 예의를 갖춰야 하는 자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래라 저래라 개인들의 의상에까지 직접 간섭하며 당부에 나선 건 누가 보아도 지나친 오지랖으로 다가올 법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현지 문화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해당 가이드가 아이들도 아닌, 다 큰 성인들에게까지 오죽하면 여행 복장을 언급하고 나섰을까 하는 데에까지 생각이 미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인들의 여행 복장이 여타 국가의 관광객들보다 유독 눈에 띈다는 대목은 사실 그다지 문제가 될 법하지는 않다. 눈에 좀 띄면 어떤가. 소매치기의 표적이 된다고? 이는 부차적인 문제다. 다만, 해외 현지인들의 시각으로 볼 때, 한국인들의 등산복장은 때와 장소에 걸맞지 않은 지극히 생뚱맞은 의상으로 다가오는 까닭에, 즉 우리와는 달리 등산복은 등산할 때만 입는 복장이라는 사회적 통념이 지배적인 까닭에, 관광지의 미관을 해치는 곤혹스러운 상황으로 받아들여질 터, 우리만 편하면 그만이라는 지극히 이기적이며 편협한 생각보다 현지인들과 또 다른 관광객 모두를 배려한다는 차원에서 이에 대해 한 번쯤 고민해 보는 건 어떨까 싶다.

 

이 글의 서두에서도 언급했듯 등산복장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제법 어울릴 법한 만능 의상임이 분명하다. 물론 우리나라만의 특별한 환경 하에서의 얘기이다. 지형 등 자연환경이 전혀 다른 해외에서는 그렇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공산이 훨씬 크다. 가이드가 보낸 당부의 문자는 관광객들을 강제하고 반드시 따르라며 강권할 요량이라기보다, 우리의 편협한 시각을 돌아보게 하여 서로가 서로를 배려토록 하게 하는 매우 조심스러운 몸짓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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