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부의 불평등이 수명의 불평등을 야기하는 세상

새 날 2016. 4. 15.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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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는 분명 축복이다. 과거 천하를 틀어쥔 채 흔들며 호령하던 황제들 역시 자신의 수명만은 어쩔 수가 없어 조금이라도 더 살아보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했던 역사적 기록을 보면 이는 인간의 의지와 노력만으로는 어찌해볼 수 없는 영역이기에 더욱 그렇게 다가온다. 그러나 근래엔 단순히 오래 사는 문제보다 건강하게 사는 게 더 큰 화두다. 나 역시 하기 싫은 운동을 되도록이면 빼먹지 않고 꾸준히 하려는 이유 역시 바로 이 지점에 있다. 때문에 단순히 길게 사는 것보다 같은 삶을 살더라도 건강하게 유지하는 삶을 더욱 높은 가치로 받아들이게 되는 건 인지상정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하늘이 점지해준 운명으로 받아들여지며 흔히 천수라 불리던 수명조차도 자본주의가 폭주하고 있는 근래 들어선 빈부의 격차에 의해 좌우된다는 속설이 더욱 힘을 얻고 있는 추세다. 물론 나로선 그다지 믿고 싶지 않지만 말이다. 근래 부자일수록 더 오래 산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발표되고 있다. 가끔 똑같이 암에 걸려도 잘 살수록 생존 기간이 더욱 길어진다는 뉴스를 접하며 이의 경우 비싼 의료비의 감당 여부가 생사를 가르는 요소이기에 뭐 그럴 수도 있겠거니 여겨왔던 경향이 있었으나 이제는 그러한 차원을 넘어선다.

 

서울 서초구 상위 20%의 소득계층이 강원도 화천군의 하위 소득 20% 소득계층보다 무려 15.2년을 더 산다는 실제 통계 결과를 보니 씁쓸하기도 하거니와 흔히 말하듯 못사는 게 죄가 되는 세상으로 변모해가는 듯싶어 영 개운치가 않다. 게다가 선거날 아침 댓바람부터 이상한 논리를 들고 나온 한 사람 때문에 기분까지 영 별로가 돼버렸다. 소위 부자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 그런지 타인에게도 너그러워 표정이 밝고 전체적으로 조용한데 반해, 그렇지 못한 동네에서는 별 것도 아닌 일로 이웃끼리 서로 얼굴을 붉히거나 핏대를 세우곤 하여 동네가 늘 시끄럽단다.

 

간혹 일반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이 경제력 등의 수준 차이를 이유로 들며, 임대 아파트 주민들과의 접촉을 피하려 하거나 심지어 아이들마저 서로가 서로를 편가르게 하여 헐뜯고 있다는 끔찍한 소식을 언론을 통해 접하곤 하는데, 다름아닌 앞서의 논리가 이러한 행동의 근거이자 기제로 작용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에 섬찟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물론 이는 지나친 일반화의 오류다. 부자라고 하여 반드시 마음이 너그럽다고 볼 수 없으며, 그렇다고 빈자라고 하여 또한 그 반대의 경우라고 볼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재벌 오너의 갑질이 새삼 화두가 되고 있는 건 오히려 우리 사회에서는 가진 자들일수록 더욱 강퍅한 마음 씀씀이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결과에 다름아니다. 때문에 부자와 빈자를 이렇듯 허술한 논리로 편가르기 하고 나선 건 무언가 다른 의도가 숨어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게 한다.

 

 

하지만 이웃과 가깝게 지내고 이웃을 더 많이 신뢰할수록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된다는 미국 미주리대학교 연구팀의 연구 결과를 보게 되면, 결국 이웃과의 관계가 좋을수록 오래 살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되는데,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높이거나 신뢰를 쌓기 위해선 일정 수준의 경제적인 여력이 필수불가결한 터라 앞서의 논리를 무조건 그르다며 외면하기엔 이 또한 지나치게 비현실적으로 다가오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누구나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에 해당하는 먹고 사는 문제가 온전히 해결되지 않을 만큼 궁핍한 처지에 놓이게 되면, 스스로를 돌아보는 일도 여의치 않거니와 주변을 살피기엔 더욱 여력이 없어지는 까닭에 이웃과의 관계를 좋게 형성한다는 건 언감생심일지 모른다. 경제적인 어려움은 이처럼 외부와의 단절을 부르기 십상이다. 이웃과의 관계가 나쁠수록 주변과 사회를 향한 적대감이나 불신 등이 상대적으로 커지리라는 건 결코 억측이 아니다. 실제로 앞서 언급한 미국 연구팀에 따르면 이웃 간 경제적인 소득 격차가 커질수록 불신이 높아지고 건강 상태도 전반적으로 악화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한다.

 

부자일수록 오래산다는 말이나 부의 불평등이 수명의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사실은 여러 통계조사와 연구결과를 통해 자주 인용되고 있기에 이젠 제법 낯설지가 않다. 다만, 우리 사회의 경우 상위 10%가 전체 자산의 66%를 차지하고 있고, 하위 50%의 자산이 고작 전체 자산의 2%에 불과할 만큼 부의 불평등이 심각한 지경으로 치닫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결국 건강 및 수명 불평등으로 이어지게 될 테고, 하늘이 점지해준다는 인간의 수명마저도 어느덧 부의 수준에 따라 줄을 서게 된다는 의미로 다가온다.

 

이 대목에서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하는 건, 미국 워싱턴주립대학 연구팀이 가정환경을 장기간 추적한 7-15세 어린이에 대해 뇌 사진을 비교 분석한 결과, 가난한 집 아이들은 부잣집 아이들보다 해마 및 소뇌 편도체의 신경회로 연결상태가 약하다는 내용의 믿기 어려운, 아니 결코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연구 결과 따위들 때문이다. 부의 차이가 인간의 건강과 수명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만으로도 버겁거늘, 이젠 더 나아가 뇌의 구조까지 변화시킨다고 하니 이쯤되면 그야말로 자본 폭주 시대라 칭할 만하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비단 우리만의 문제가 아닐는지도 모른다. 미국의학협회저널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최상위 1%에 속하는 미국인들은 최하위 1%의 미국인들보다 적어도 10년 이상 장수한다고 한다. 이쯤되면 부의 불평등이 건강, 더 나아가 수명의 불평등을 초래하고 있는 현상은 신자유주의가 그러했듯, 어느덧 글로벌 스탠다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느낌이다. 다만, 금수저 흙수저 논쟁이 한창 불을 뿜고 있는 작금의 우리 사회에서 이젠 개인의 역량만으로는 이를 도저히 타개해 나갈 수는 없는 노릇일 테고, 결국 국가가 나서야 할 상황이나, 정치권이며 정부 할 것 없이 되레 계층 간의 갈등을 더욱 부추기며 이를 공고히 하는 느낌이라 우려스럽지 않을 수 없다. 여타의 영역과 마찬가지로 사람의 수명도 온전히 개인의 역량에 의존하기에는 이미 한계에 다다른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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