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이화동 벽화마을 훼손이 안타까운 이유

새 날 2016. 4. 30. 12:40
반응형

도심속 오아시스와 같은 역할을 톡톡히 하며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한 곳으로 모았던 서울 이화동 벽화마을의 벽화 일부가 훼손되는 불상사가 빚어졌다는 소식이다. 지난 1월, 비록 추운 겨울 기온임에도 불구하고 이곳을 방문할 당시만 해도 국내외 관광객들로 넘쳐났던 기억이 내겐 남아 있다. 그러나 최근 방문객의 발길이 뚝 끊겼다는 전언이다. 이곳을 지탱하던 주체는 다름아닌 벽화이거늘, 이것이 사라졌다 하니, 그것도 주민들에 의해 직접 훼손됐다 하니, 이는 지극히 필연적인 귀결 아닐까 싶다.

 

이화동 벽화마을은 원래 평범한 산동네에 불과했다. 물론 그러한 지형적인 특징 때문인지 그 자체로 고즈넉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어 마치 도심속 별천지 같은 느낌을 받게 하기에 충분하다. 실제로 이곳은 상당히 고지대에 위치해 있다. 이화동 벽화마을은 문화체육관광부가 2006년 추진한 공공미술 시범사업으로 진행한 '낙산 프로젝트'에 의해 탄생했다. 평범한 산동네였던 이 마을은 예술가들이 그린 벽화 16점에 의해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고, 지상파 TV 예능 프로그램 등에 잇따라 소개되면서 관광지로 본격 자리매김하게 됐다. 평일에도 중국 등 해외 관광객들로 늘 북적이던 곳이다.

 

ⓒ중앙일보

 

이번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원래 이화동 지역은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는 재개발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현재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는 한양도성의 일부가 이 마을에 인접해 있어 애초의 계획은 무산되고 말았단다. 그 대신 서울시는 도시재생사업을 주민들에게 제안하였고, 그의 일환으로 상업지역으로 지정된 곳을 제외하고 이번에 훼손된 계단 벽화가 위치한 주거지역을 중심으로 정비한다는 계획이 알려지면서 일부 주민들이 이에 반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즉, 상업지역에서는 카페나 술집 등 유흥시설의 입주가 허용되나 일반 주거지역에서는 기존 주택을 카페나 여타의 영업장소로 변경할 수 없어 해당 지역 주민들의 경제적인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연유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도시재생사업을 반대하던 주민 일부가 계단 벽화의 일부를 직접 훼손하고 나선 것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화마을 140여 가구 중 반대 가구는 20가구 정도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해당 사업을 총괄하는 서울시 담당자에 따르면, 현재 이화동 전체가 주거지역에 해당하며, 재생사업을 주민에게 제안하고 협의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확정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한다.

 

 

물론 사업 제안과 관련하여 여전히 논의 중인 사안인 데다 아직 확정된 게 없기도 하거니와 혹여 일부 주민들이 받아들이고 있는 것처럼 자신들에게만 불리하게 결정된 사안이라 해도 그로 인한 불만을 공공프로젝트에 의해 진행돼 마련된 벽화에 쏟아부은 건 절대로 용서 받을 수 없는 행위로 받아들여진다. 그들의 주장이 제아무리 설득력을 지닌다고 해도 이번 행위는 일종의 공공 자산으로 볼 수 있는 벽화를 훼손한 형태라 엄연히 범법행위인 까닭이다. 목적이 옳다고 해도 그에 이르는 모든 수단을 정당화할 수는 없는 노릇일 테니 말이다.

 

ⓒ중앙일보

 

하지만 이들이 왜 이처럼 극단적인 행위를 할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해선 한번쯤 고민해 볼 여지가 다분하다. 재생사업 반대 주민 단체의 회장에 따르면 주말마다 관광객 떠드는 소리에 쉴 수도 없고 담벼락은 별의별 낙서로 가득하여 그동안 온갖 불편을 참아왔는데, 이제와서 차별까지 받으라니 화가 난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주민들의 불편은 충분히 짐작되고도 남는다. 비단 이곳이 아니더라도 여타의 비슷한 관광지의 사례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최근 부산의 명물 감천마을로 몰려드는 관광객들 때문에 주민들이 고통을 호소하다가 결국 유료화 방안 카드를 꺼내들며 논란으로 불거진 바 있다. 물론 이의 이면에는 성숙하지 못한 관광객의 시민의식이 한 몫 단단히 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화동 벽화마을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시에서는 주민들과 협의하는 과정이고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고 말하고 있으나, 혹시 협의 과정에서 반대하는 주민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거나 의도적으로 배제시킨 건 아니었는지, 아울러 주거지를 관광화하는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이라면 주민의 입장에서는 이제껏 온갖 불편을 감내해온 터라 불만이 발생하게 되는 건 지극히 당연한 노릇일 텐데, 이 또한 무시했던 건 아닌지 되돌아 봐야 하지 않을까? 

 

지난 1월 방문했을 당시의 계단 벽화

 

현재는 지워진 모습 ⓒ중앙일보

 

이화 벽화마을 조성은 애초 소외지역 생활문화환경 개선 취지로 추진되어 왔으나 실제로는 그와 달리 그저 장식적인 공공미술에만 머무르며 주민들을 그로부터 소외시키고, 외려 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온갖 고통에 대해 오롯이 인내만을 요구했던 건 아닐까? 이번에 발생한 일부 주민의 반발은 혹시 그에 따른 반작용 아니었을까?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하면서 주민들이 감내해야 하는 불편함의 반대급부로 마을 전체가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익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방안 따위에 대해서는 애초 간과했던 게 아니었을까?

 

결국 관광지화로 인한 주민 불편 감내와 그의 대가로 볼 수 있는 경제적 과실이 올바른 방향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사이, 많은 사람들이 누릴 수 있었던 귀한 관광 자원을 불과 며칠밤 새에 사라지게 하고 마는 뜨악한 결과를 빚고 말았다. 앞으로 비슷한 사업을 추진하고 주관해야 할 이들에게 던지는 경고 치고는 그 대가가 너무 큰 느낌이라 끔찍하지 않을 수 없다. 그보다 더욱 안타까운 건 지난 1월 다녀오며 사진으로 남겼던 흔적을 앞으로는 영원히 볼 수 없게 됐다는 사실이 아닐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