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남자라면 역시 핑크'.. 편견에 대하여

새 날 2016. 1. 30.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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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라면 역시 핑크', 인터넷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다 보면 흔히 볼 수 있는 표현 중 하나다. 이런 표현이 유행하고 있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우린 어릴적부터 오랜 관습과 사회적 분위기에 의해 성별에 따른 차별을 의식하지 못하고 부지불식간 강요당해 왔다. 남자라면 남자다워야 한다는, 혹은 여자라면 여성스러워야 한다는 사회적 관념에 의해 억지로 끼워 맞춰진 채 우리의 몸과 마음은 오로지 단방향을 향해 온 것이다. 마트에서 장난감을 고를 때조차도 남아용과 여아용 완구 코너가 엄연히 구분되어 있으나 우린 이를 당연시 여기며 무엇이 문제인지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남아는 무조건 푸른 색감의 자동차나 로봇 등을 가지고 놀아야 하고, 여아는 온통 핑크 빛깔의 바비인형세트나 소꿉놀이 장난감을 갖고 놀아야만 한다. 여기엔 '왜?' 라는 의문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이의 틀을 벗어날 경우 따가운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을 정도로 우리 사회는 경직돼 있다. 우린 그동안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내지 않은 채 그저 당연시해 왔다. 불행하게도 '남자라면 핑크'라는 우스갯소리를 통해 사회적 통념에 가끔 돌팔매질을 해보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던 행위의 전부다.

 

ⓒ뉴시스

 

최근 이러한 편견을 깨는 시도가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해외에서의 사례다. 미국의 대형 유통업체들이 완구류에 남아용, 여아용 등 성에 기반한 표시를 잇따라 없애기로 했단다. 이는 성에 대한 고정관념 내지 편견을 심어줄 우려가 있노라는 사회 일각의 지적에 따른 결과물이다. 아마존은 어린이용 완구의 성별 분류를 아예 폐지하는 강수를 둬왔다. 디즈니 스토어 역시 핼러윈 데이 세일 당시 남녀용으로의 별도 구분 없이 오로지 '어린이용'으로만 표시했다고 한다. 미국 2위의 유통업체 '타깃'은 완구매장에서 성별표시를 없애겠다고 발표했다. 여아용은 핑크, 남아용은 청색 따위의 고정관념이 반영된 표시를 바꾸기로 한 것이다.

 

유통회사뿐 아니라 장난감 제조회사도 사회적 편견을 깨는 행위에 일조하고 나섰다. 세계적인 완구회사 덴마크의 '레고'가 회사 창립 이후 처음으로 장애인 피규어를 선보였다는 보도가 잇따른 것이다. 이번에 선보인 해당 블록 세트는 ‘펀 인 더 파크’(Fun in the Park)라 불리는 제품이다. 이 세트에는 자전거 타는 사람과 핫도그 판매상, 그리고 여러 가족의 미니 피규어가 포함돼 있다. 무척 반가운 현상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동안 우리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들은 죄다 멋지거나 예쁜 외모 일색이었던 것 같다. 사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잘난 사람, 못난 사람, 비장애인, 장애인 할 것 없이 모두가 사회 일원으로 함께 생활해 오고 있는 데도 말이다. 장애인은 그저 몸이 불편할 뿐 우리와 같이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일원임에도 비장애인의 시각에서 볼 때 늘 사회적 동정의 대상이 되기 일쑤이고, 왠지 그들이 곁에 있으면 도와주어야 할 것만 같은 불편한 존재라는 편견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게 보다 솔직한 속내일 테다.  



이러한 편견은 비단 장애인을 향한 시각뿐 아니라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남아있다. 가장 비근한 사례로는 피부색을 들 수 있다. 2000년 이전, 그러니까 20세기에 태어난 사람들은 '살구색' 하면 무슨 색인지 잘 모른다. 오히려 '살색' 하면 그 색감의 이미지가 더욱 확연하게 받아들여지곤 한다. 물론 나 또한 마찬가지다. 초등학교 때 가장 금방 닳았던 크레파스의 색상 중 하나는 다름아닌 '살색'이었다. 해당 색상은 과거, 그러니까 적어도 20세기까지만 해도 사람의 피부색을 뜻하는 ‘살색’으로 통용돼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권 침해 논란으로 인해 지난 2001년 해당 색상은 ‘연주황’으로 결정됐다가 지나치게 어려운 한자어라는 문제가 지적되며 2005년 ‘살구색’으로 최종 변경, 사용돼 오고 있다. 사람마다 머리카락의 색상이 다르듯, 아니 생김새가 각기 다르듯, 피부색 또한 모두 다르다. 같다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일 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정 색상을 '살색'이라 지칭함은 국가와 사회집단으로부터 불평등한 대우를 받지않아야 할 권리인, 기본권 중 가장 기본이랄 수 있는 평등권을 위배하는 결과물에 다름아니다.

 

앞서 언급한 아이들의 완구는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을 심어주며 알게 모르게 우리 모두가 여성성과 남성성에 대한 강박 관념에 사로잡힌 채 살아오도록 해 온 경향이 크다. 그만큼 완구로 인한 영향력이 크다는 방증이다. 마찬가지로 사회의 동일한 일원으로써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이 섞여 있을 수 있으며, 그들과 우리는 겉모양만 다를 뿐 같은 사람임에도 이 같은 사실을 잊고 살아가며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선을 긋기 일쑤다. 마찬가지로 장애인이건 비장애인이건 모두가 같은 사회의 일원임에도 세상은 온통 비장애인 위주로 돌아가는 데다 장애인 하면 무슨 특별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편견으로 머릿속이 가득 들어차있다.

 

ⓒSBS

 

물론 레고는 여전히 성별에 따른 차별화된 장난감을 판매하며 이익 극대화에 열심인 회사로 알려져있다. 일례로 여러 해 동안 여아의 행동패턴을 인류학적으로 조사해 상품 개발에 반영한 결과 '레고 프렌즈' 세트가 탄생하게 됐으며, 이에는 핑크색 등의 블록이 사용되어 여아들의 감성을 자극하고 있단다. 레고는 성차별을 강요한다는 미국 사회 일각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동물병원 시리즈마저 해당 세트에 추가하며 2012년 이후 매년 20%의 매출 신장이라는 결실을 이뤄 일약 세계 최대의 완구회사로 등극하는 기염을 토한다. 결국 성차별 전략을 강화하여 매출 극대화에 성공한 셈이다.

 

사회 일각에서는 남아 여아의 구별이 없는 장난감 판매가 소비자의 선택에 큰 불편과 혼란을 초래하는 일이라며 완구회사 및 유통회사가 시도하고 있는 작금의 행위들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난 아이들의 감성을 자극하며 관념에 영향을 끼치는 완구의 최근 변화 움직임은 상당히 고무적인 현상이라 생각한다. 어릴적부터 손에 익숙한 장난감을 통해 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심거나 성차별이라는 편견을 고착화할 수 있는 환경과 장애인에 대한 삐뚤어진 시각을 완화함으로써 사회에 만연한 편견의 벽을 허무는 데 일조할 것이라 짐작되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완구회사의 움직임과 미국 장난감 유통회사의 변화는 우리 사회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칠 것이라 판단된다. 긍정적인 방향으로의 영향 말이다. 우리가 그동안 쌓아온 편견은 이렇듯 생활 속에서 부지불식간 스며들어왔듯 이를 허무는 일 또한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이 뒤따르다 보면 '남자라면 역시 핑크'라는 따위의 다소 억지스런 표현도 자연스레 꽁무니를 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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