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영화 '오빠생각' 강매, 무엇이 문제인가

새 날 2016. 1. 25.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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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리우드의 대작들을 제치고 현재 예매율 1위를 달리며 승승장구하고 있는 작품은 다름아닌 우리 영화 '오빠생각'이다. 이 영화는 한국전쟁 당시 실존했던 어린이 합창단을 모티브로 하여 제작된 작품으로, 임시완, 고아성, 이희준 등 쟁쟁한 성인연기자들과 아역배우들이 출연, 가슴 뭉클한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24일 현재 누적관객 50만명을 돌파하였으며, 앞서 개봉한 헐리우드 대작 '레버넌트'에 맞서 1,2위의 자리 다툼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이 영화가 최근 관의 강매 의혹이라는 구설에 휘말렸다.

 

금융위원회가 각 금융사들에 오빠생각 예매권을 대량으로 사들일 것을 주문했단다. 이에 따라 주요 금융사들이 이를 수천장씩 대량 매입한 정황이 드러났다. 쉽게 말해 금융위가 산하 금융기관들에 예매권을 강매했다는 지적이다. 이런 식으로 판매된 예매권이 4만장에 이른다고 하니, 이는 현재 '오빠생각'이 예매율 20.61%로 전체 개봉 영화 1위를 유지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금융위가 영화 흥행에 도움을 주겠다며 직접 거들고 나선 상황이긴 하나 결과적으로 볼 때 이러한 행위가 되레 영화의 흥행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이번 논란의 배경엔 '오빠생각'의 주연 배역을 맡은 배우 임시완이 존재한다. 그가 핀테크 지원센터 홍보대사로 위촉된 사실이 한 몫 단단히 하고 있는 셈이다. 임시완은 지난해 8월 핀테크 지원센터 홍보대사로 임명된 바 있으며, 금융위는 이번 논란에 대해 그의 출연작인 '오빠생각'의 흥행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자연스런 공감대가 형성된 덕분에 예매권을 구입하게 된 것이라는 해명을 내놓았다. 실제로 금융위가 이번 영화의 흥행을 기대하고 있노라는 징후는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지난 18일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금융 관련 기업 협회장들과 일부 시중은행장 등과 함께 서울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개최된 '오빠생각' VIP 시사회에 참석한 바 있다. 

 

핀테크 사업을 적극 육성하거나 지원하고 있는 금융위의 입장에서 볼 때 임시완에 대한 지지 표명과 그가 출연한 영화의 흥행을 바라는 행위 그 자체에 대해선 딱히 논란거리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자신들이 벌이고 있는 사업에 대한 홍보 차원에서 이뤄지는 지원에 대해 누가 뭐라 할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와 같은 변명은 무려 4만장에 이르는 영화 예매권을 금융위 스스로가 구입하여 이를 감독 관할인 금융기관들에 골고루 나누어 주었을 경우에나 해당될 법한 얘기이다. 아울러 이로 인해 나타날 개연성이 농후한 한국 영화 시장의 왜곡 현상에 대해 철저히 이를 배제한다는 전제 하에서의 얘기이기도 하다.  

 

 

금융위는 금융산업의 선진화와 금융시장의 안정을 꾀하고, 건전한 신용질서 및 공정한 금융거래관행을 확립하기 위하여 설립된 행정기관이자 국내 금융정책을 총괄하는 금융분야 최고의 의사결정 기구이다. 한 마디로 시중 금융기관 앞에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는 기관이다. 때문에 금융기관의 입장에서 금융위는 자신들을 감독 관리하는 상급기관으로, 일종의 갑과 을의 관계를 형성한다. 금융위의 재채기만으로도 금융기관의 입장에서는 좌불안석일 수밖에 없는 관계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금융위는 각 증권 보험 은행 등 업종별 금융기관에 '오빠생각’의 예매권을 적게는 3000장에서 많게는 1만 7000장 정도씩 구매해 달라고 협조 요청을 보냈던 것으로 드러났다. 금융위가 임시완을 돕는 차원에서 '오빠생각' 예매권을 구입하자며 산하 금융기관에 가볍게 한 마디 툭 던진 성격의 것이라면, 을의 입장에 놓인 금융기관으로선 금융위의 그 단순한 한 마디가 결코 가벼이 받아들일 수 없는 성향의 것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즉, 이번 논란이 문제가 되고 있는 건 다름아닌 이렇듯 갑질에 의한 일종의 강매 형태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갑질도 갑질이지만 이로 인한 영화 시장의 왜곡현상 또한 무시할 수가 없다. 예매권 4만장이면 현재까지의 누적 관람객 50만명의 10% 가까이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숫자다. 이를 제외할 경우 현재 예매율 2위인 레버넌트에 1위 자리를 넘겨주어야 할 판이다. 영화의 흥행도 좋지만 이러한 방식과 같이 왜곡된 방향으로 시장을 이끌 경우 한국 영화 시장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과연 어떨까?

 

 

금융위의 주요 역할 중 하나가 다름아닌 공정한 금융거래관행을 확립하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을에 대한 갑질 행세를 일삼거나, 그를 통해 영화시장에 불공정하고 왜곡된 영향력을 불어넣어서야 어디 되겠는가? 가뜩이나 영화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일부 재벌 계열사들 때문에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마당에 이렇듯 비정상적인 마케팅 방식으로 특정 영화의 흥행을 좌지우지하게 된다면 우리 영화 시장의 판도를 흔들게 되는 결과가 되는 게 아닐까?

 

무궁무진한 상상력과 창의력만으로도 천문학적인 부가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무척이나 매력적인 영화 산업에 있어 우리나라가 유독 약세인 이유를 곱씹어 봐야 할 대목이다. 영화라는 문화상품이 객관적이며 올곧게 평가를 받기 위해선 비정상적인 마케팅이나 왜곡된 판도가 아닌, 제대로 된 경로를 통해 대중들의 선택을 받도록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상황은 늘 그렇지가 못하다. 예매권 강매 등의 논란은 늘상 있어왔던 사안이기도 하다. 우리의 영화 산업이 우물안 개구리에서 벗어나 세계적인 수준으로 성장해 가기 위해선 논란이 된 방식과 같은 갑질에 의한 관의 개입으로 시장 판도를 흐리게 하는 일 따위는 없어야 한다. 잘 만들어진 작품이 되레 이러한 논란으로 인해 제대로 된 시장 평가를 받지 못할 것 같아 안타깝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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