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정치 가출 시대, 웃음기 사라진 대한민국

새 날 2016. 1. 20.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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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사람들 사이의 의견 차이나 이해 관계를 둘러싼 다툼을 해결하는 과정이 분명 맞다면, 작금의 대한민국 상황은 단언컨대 정치가 가출한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주변을 한 번 둘러보자. 정부의 일방적인 공약 파기와 남탓 신공으로 인해 파행으로 치닫던 누리과정 갈등은 결국 일부 지자체에서의 보육대란으로 현실화되고 있는 양상이다. 우리 정부와 일본 정부 간 합의된 위안부 협상은 정작 직접 피해 당사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지극히 일방적이었던 데다가 그나마 일본 정부에 유리한 결과를 빚어 많은 파열음을 낳고 있다.

 

이 과정에서 소녀상의 이전 논란 갈등까지 불거지며 북극 한파가 몰아치는 엄동설한에 이를 지키려는 일부 시민들은 아무런 대가도 없이 차가운 길바닥에서 힘겹게 밤을 지새며 버텨오고 있다. 정부와 집권여당이 17년만의 사회적 대타협이라며 그토록 떠들고 자화자찬하기 바빴던 노사정 대타협은 불과 4개월만에 노동계 측이 파기를 선언하는 바람에 중대 기로에 놓이게 됐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여당은 소통은 일절 없이 무조건 자신들의 방침을 따르라고만 하고 있고, 이마저 여의치 않자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스스로가 직접 만든 법안인 국회 선진화법의 폐기를 시도하는 희극마저 연출하고 있다.

 

ⓒ한국일보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이 국민의 대표 기관이자 대의정치의 중심 그리고 민의의 전당이랄 수 있는 국회를 향해 연일 대놓고 압박을 가하는 결코 웃을 수 없는 일마저 이곳 대한민국에선 어느새 자연스러운 현상이 돼버렸다. 대통령이라는 공인의 신분으로 특정 색깔을 띤 단체의 서명 운동에 직접 참여하는 등 국민 팔이를 이용한 일종의 퍼포먼스마저 흔히 벌어지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향해 제대로 태클을 거는 사람이나 세력 하나 우리에겐 없다. 흡사 역사책에서나 등장할 법한 군주정치 사회가 아닌가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할 정도다.

 

지난해 9월 타결된 노사정 대타협은 정부와 여당이 노동개혁이란 화려한 수식어까지 붙여가며 마치 대단한 성과인 양 떠벌린 바 있다. 하지만 실상은 당시에도 반쪽짜리 타협 내지 노동개악이란 비아냥을 피하기 어려울 만큼 불완전함 일색이었다. 노동계의 의견은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채 경영계의 일방적인 이득만 앞세운 탓이다. 노동계를 대표하여 노사정 협상 테이블에 앉았던 한국노총은 그동안 자신들의 이익에 따라 갈짓자 정치 행보를 거듭해 온 탓에 이러한 결과 또한 그의 연장선으로 받아들여져 왔던 터다.  



하지만 일반 해고 요건 완화 등을 담은 정부의 관련 지침이 발표되고, 대통령이 민생과 청년 팔이를 통해 노동개혁이라는 그럴 듯한 수사로 포장된 관련 법률의 국회 통과를 일방적으로 압박하고 나서자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한국노총마저 결국 자신들이 스스로 서명했던 타협안을 파기하고 말았다. 한국노총의 갈짓자 행보를 놓고 보건대, 향후 어떠한 정치적 행보를 걷게 될지 쉽게 예단하기란 어려운 노릇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향의 단체마저 정부에 등을 돌렸다는 건 그만큼 박근혜 정부의 일방통행식 정책이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우리 주변에서 최근 벌어진 굵직굵직한 사안들만 다시 한 번 펼쳐놓아 보자. 누리과정 예산 갈등, 한일 위안부 협상 타결, 노사정 대타협 파기, 국회 선진화법 폐기 시도 등 일련의 움직임은 모두 소통 부재 및 국민을 무시하고 오롯이 특정 계층의 이익만을 대변하기 위한 정부 여당의 정책 행보 탓이다. 극심한 사회적 갈등 양상을 보이는 사안에 대해 정부나 새누리당이 민주정치의 기본 원리인 대화와 타협을 통해 이를 해결하려고 노력한 적이 언제 단 한 차례라도 있었던가? 지금도 대통령은 민생과 청년을 입에 담은 채 팔고 있지만, 정작 기업과 재벌 등 소수를 위한 정책이 주를 이루고 있지 않은가?

 

갈등 조정이나 국민과의 소통은 일절 없이 일방적인 정책을 펼친 채 국민더러 무조건 따라오라며 특정 계층의 이익만 대변하고 있는 정부 밑에서 살아가는 국민들, 결코 행복할 수는 없는 노릇일 테다. 한 매체의 설문조사에서는 우리 국민 10명 중 4명이 다시 한국인으로 태어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청년층의 생각은 더욱 심각하다. 20대 청년 10명 중 7명은 한국을 떠나 다른 나라에서 살고 싶다니 이쯤되면 말 다한 셈 아닐까 싶다.

 

ⓒ한국일보

 

이러한 결과가 결코 과장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이를 뒷받침할 만한 근거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에서 근래 행복하다는 사람들을 만나볼 수가 없다. 주변 사람들의 얼굴에서는 웃음기를 도통 찾아볼 수가 없다. '헬조선'이라는 자조 섞인 표현은 이로부터 비롯됐다. 우리 국민들의 행복도는 20대를 정점으로 나이가 들수록 계속 하강곡선을 그린다.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행복도가 점차 올라가는 여타의 국가들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노인 자살률 1위는 거저 얻어진 결과물이 아닌 셈이다.

 

대통령은 국민과의 소통은 일절 않으며, 스스로가 규정한 국민(경제인과 기업)만을 위해 몸소 거리로 나가 서명에 동참하고, 되레 진짜 국민들에게도 자기처럼 이에 참여해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이런 거짓 행보들이 다름아닌 오늘날의 헬조선을 만든 주범이다. 갖은 수식어와 감언이설로 마치 진짜 청년층과 국민을 위하는 것처럼 교묘하게 포장하고 있지만, 미래 전망마저 불투명하게 하고 있는 작금의 국가 위기와 국민들의 삶을 도탄에 빠뜨리게 하며 행복 지수를 급전직하로 내모는 행태가 다름아닌 이러한 소통없는 일방통행식 정치 행보로부터 비롯되고 있는 셈이다. 정치가 실종된 우리 사회에 남은 건 온통 갈등 투성이에 주변인들의 웃음기 사라진 건조한 얼굴들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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