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아이들에게 벌금 걷는 학교, 가치관 붕괴 우려된다

새 날 2016. 1. 16.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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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는 소통과 존중이 있는 학교 문화 조성을 국정 과제로 선정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2009년 3월부터 일선 학교에 상벌점제를 도입했다. 이는 체벌 없는 학생 생활지도에 대한 일종의 대안적 성격이다. 하지만 운영 과정에서 보여온 불공정성과 실효성 논란으로 인해 그동안 무수한 문제점들이 노정돼 왔다. 아이들의 심리적 피로도를 증가시켜 스트레스의 원인으로 작용하게 된다거나, 아이들을 일종의 상점과 벌점의 노예화로 전락시킨다는 교육 현장의 볼멘소리는 분명 또 다른 부작용이라 할 만하다.

 

물론 아이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유도하고 지도하기 위해선 일정 수준의 보상과 처벌은 필요악이다. 하지만 상벌점제도가 생각만큼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탓에 교사들은 저마다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입장이다. 그 사이 변형된 형태의 또 다른 처벌 수단마저 등장했다. 일선 중고등학교에서 학급 규칙으로 '벌금제' 운영이 늘고 있다는 소식이 언론발로 전해진 것이다. 이는 지각, 학습태도 불량 등 교칙이나 자체적으로 정한 학급 규칙을 어길 때마다 일종의 벌금이란 명목으로 돈을 걷는 방식이다. 이렇게 걷힌 벌금은 학급비라는 공적인 형태로 지출되거나 학기말 급우들과 피자 등을 구입하여 나눠 먹는 데에 쓰인단다.

 

ⓒ뉴스1

 

벌금으로 모인 돈, 어차피 사적인 용도가 아닌 공금으로 쓰이는 데다 우리 사회 여건상 흔히 생각해 볼 수 있는 발상 중 하나이기에 그다지 논란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학급을 운영하는 주체는 담임교사일 테고, 교칙 등을 벗어나지 않는 범주에서 교사 자신만의 방식 내지 경험 따위를 접목시켜 얼마든 융통성 있는 학급 관리가 가능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달리 생각해 보면, 이러한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는 건 그만큼 교사 입장에서 볼 때 학급 운영과 아이들에 대한 열정이 많다는 방증일 수도 있다. 그렇지 않은 교사라면 애초 이러한 고민조차 하지 않을 수도 있는 탓이다.

 

아울러 교육계의 공식 보상과 처벌 방식인 상벌점제만으로는 아이들을 관리하고 학급을 유지하는 일이 녹록지 않기 때문에 꺼내든 고육지책일 수도 있다. 교사와 학생들 간 약조한 학급 규칙을 어긴 아이에게 벌금을 내게 함으로써 자신의 잘못을 깨닫도록 하고, 차후 비슷한 잘못이나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하는 교육적 효과도 노려봄직하다. 



그러나 교육자로서 꺼내든 처방 치고는 지극히 비교육적이라는 데에 문제의 소지가 엿보인다. 이는 돈이면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는, 심지어 돈을 위해서라면 범죄 행위마저 가능한, 우리 아이들에게 물질만능 사상을 부지불식간 심어줄 수 있는 사안이다. 그렇잖아도 상점과 벌점에 목 매어오며 거의 노예화되다시피 한 아이들이건만, 여기에 한 술 더 떠 돈으로 아이들의 의식마저 조종한다는 건 결코 바람직스러운 행태라 볼 수가 없다. 더 큰 문제는 아이들이 결코 돈을 버는 주체가 아니라는 데에 있다. 부모에게 손을 벌려야 할 입장인데, 그나마 돈에 관한 한 누구에게나 똑같은 환경이라면 다행이다. 그러나 가정 형편이 어려워 벌금조차 마련하기 힘든 아이에겐 또 다른 소외와 차별적 요소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이런 방식을 적용하기 전 우리 아이들에게 당장 어떤 영향이 미치게 될지와, 더 나아가 가까운 미래에 우리 사회에 어떠한 문제점이 발생하게 될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은 교사는 교육자로서의 자질이 부족하다고밖에 말할 도리가 없다. 물론 체벌이 허용되지 않고, 별다른 보상 및 처벌 제도 없이 오로지 상벌점제에 의존해야 하는 교육 현장의 어려움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벌금 제도의 운영은 지극히 편의주의적인 발상이며, 또한 그만큼 아이들과 우리 사회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사안이다. 

 

우리 아이들이 배금주의에 얼마나 물들어 있는가는 얼마전 행해진 설문조사를 통해 드러난다. 흥사단 투명사회운동본부 윤리연구센터가 지난해 전국 초중고등학생 1만1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2015년 청소년 정직지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고교생의 56%가 '10억이 생긴다면 죄를 짓고 1년 정도 감옥에 가도 괜찮다'고 답했다. 청소년들의 절반이 넘는 숫자가 돈이면 죄를 짓는 행위까지 마다하지 않겠노라는 의미이다. 이렇게 답한 비율은 학제가 높아질수록 두드러진다. 초등학생은 17%, 중학생은 39%에 이른다. 

 

ⓒ연합뉴스

 

끔찍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지난 2012년에 조사했을 때엔 고등학생의 44%가 같은 응답을 한 바 있다. 불과 3년 사이 무려 12%포인트나 상승하며 청소년들의 윤리의식이 심각하게 훼손되어 가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청소년들이 이렇듯 가치관의 혼란을 겪게 된 데엔 여러 이유가 있다. 신자유주의적 사회구조와 사회 전반의 무관심, 실종된 가정교육 그리고 학교의 형식적인 인성교육 등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청소년들의 가치관 붕괴 현상, 즉 돈이면 무엇이든 가능하다거나 행복의 최우선 조건이라는 생각과 그로 인한 도덕불감증의 만연은 가뜩이나 어두운 우리 사회의 미래 전망을 더욱 암울하게 만든다. 학교와 교육자들마저 이러한 현상에 대해 팔을 걷어붙인 채 가속화시켜선 안 될 노릇이다. 물질이 숭배의 대상이 될 때 정신적인 가치 따위가 설 자리를 잃게 된다는 건 만고불변의 진리이다. 적어도 올바른 인성을 책임져야 할 학교에서마저 우리 아이들의 가치관을 훼손시키는 일에 앞장서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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