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동전 없는 사회'가 가져올 미래 변화

새 날 2016. 1. 13.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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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전 없는 사회'의 밑그림이 그려졌다. 한국은행이 12일 동전 사용을 최대한 줄여, 아예 동전이 필요치 않은 사회를 만들겠노라며 '지급결제 비전 2020'을 발표했다. 한국은행은 관련 연구를 거쳐 이르면 2020년까지 ‘동전 없는 사회’의 도입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란다. 때마침 사회 전반에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고 있는 핀테크 열풍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라, 동전마저 사라지게 될 경우 지폐며 더 나아가 수표까지, 이제는 실물 화폐의 모습을 일상 속에서 찾아보기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얼마전 팀 쿡 애플 CEO가 한 대학 강연에서 현금의 종말을 예고한 적이 있는데, 이의 실현 가능성이 우리 눈앞에 성큼 다가온 느낌이다.

 

물론 동전이 없어진다고 하여 잔액 지불에 대한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거스름돈은 현금 대신 가상계좌나 이와 연계된 선불카드 등에 입금되는 방식을 취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계획이 등장하게 된 걸까? 동전 없는 사회를 들고 나온 배경엔 동전 제조와 유지 비용 문제가 크게 작용한다. 동전 제조비용으로만 쓰이는 돈이 500억원이 넘고 사회 전체가 지불하는 비용은 최소한 수천억원에 달할 것이라는 한은 관계자의 설명이 이를 대변한다. 이를테면 10원짜리 동전의 제조비용은 그의 두 배인 20원에 이른다. 결과적으로 동전이 사라지게 된다면, 사회 전체의 불필요한 비용을 절감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연합뉴스

 

선진국의 성공적인 사례도 이러한 계획에 일정 부분 도움이 된 듯싶다. 해외 선진국 역시 화폐 발행을 갈수록 줄여가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현금 사용을 줄이는 대신 카드 결제 장려가 대세로 자리잡고 있다. 실제로 덴마크의 경우 일부 소매업종에 대해 현금 결제를 거부할 수 있는 법안을 발의 중에 있으며, 스웨덴은 대중교통요금의 현금결제를 제한하고 70%에 해당하는 시중은행이 전자적 결제수단만으로 업무를 진행하고 있단다. 한은은 우선 영국, 스웨덴 등이 운영 중인 현금 없는 사회 모델을 연구해 우리나라의 도입 가능성을 검토키로 했단다.

 

실제로 동전이 사라지게 된다면 이는 현금 종말 시대를 성큼 앞당기는 획기적인 사건이 아닐까 싶다. 동전을 비롯한 화폐는 앞으로 박물관 등지에서나 볼 수 있게 될 테고, 화폐의 가치는 오롯이 디지털화된 숫자가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될 테니 말이다. 그동안 아날로그를 대체한 디지털이 가져온 생활속 변화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일례로 이미지나 음악 등은 실물 없이도 무한 복제와 재생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화폐는 모든 사람의 삶과 늘 함께해야 하는 존재이기에 앞선 것들의 변화와는 그 무게감이 사뭇 다르다. 

 

 

그렇다면 동전 없는 미래 사회가 우리에게 가져올 변화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우선 아이들에게 경제 관념을 조금이나마 일깨워 왔던 빨간 돼지 저금통이 사라진다는 아쉬움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돼지 저금통이 사라지게 될 경우 아마도 사회 곳곳에서 행해지고 있는 사랑의 동전 모으기 행사 따위도 점차 자취를 감출 개연성이 높으며(물론 다른 형태로의 변화가 점쳐진다), 연말연시마다 도심속 대중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던 구세군 냄비에서는 고사리손에 의해 놓여지던 동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될 테다.

 

청계천 등 전국의 여행지에는 저마다 동전을 던지며 행운을 비는 명소가 있는데, 이젠 이러한 동전 던지는 모습마저 볼 수 없게 될 전망이며, 이를 통해 모아진 동전이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되는 훈훈한 모습도 볼 수 없을 것 같다. 이는 연인 사이를 가깝게 만들어오던 매개 중 하나가 사라지게 되는 셈이니, 청춘 남녀들에게도 무척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참고로 지난해 서울 청계천에 모인 행운의 동전은 모두 5500만원으로 집계됐으며, 이는 '서울시민'의 이름으로 서울장학재단에 전달되어 시내 재학 중인 저소득층 고등학생 학비지원에 사용될 예정이다.

 

당장 생활 속에서의 변화도 점쳐진다. 마트에서 카트를 이용할 경우 100원짜리 동전 하나를 넣어 왔는데, 동전이 사라지게 되면 이 또한 다른 형태로 변화할 수밖에 없다. 급히 동전이 필요하여 지폐와 맞교환하던 모습도 종적을 감출 전망이다. 그렇다면 동전 수집가의 입장에서는 어떨까? 얼마전 소주의 공병 가격을 인상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소주병의 품귀 현상이 빚어진 적이 있다. 동전 또한 마찬가지 아닐까? 희귀한 동전일 수록 그 가치가 크게 뛰어오를 테고, 이를 노린 사람들이 미리 동전을 사재기(?)하는 진귀한 풍경도 예상된다. 동전 수집가라는 직업인의 인기도 덩달아 치솟는 기현상이 발생하지는 않을는지..

 

ⓒ서울신문

 

우린 간혹 동전과 관련한 황당한 뉴스를 접해 오곤 했다. 가령 아르바이트생의 급여를 10원짜리 동전을 모아 지급한더던가, 식당에서 음식을 잔뜩 주문한 뒤 음식값을 모두 동전으로만 지불하는, 조금은 뒷맛 개운치 못한 이야기들 말이다. 물론 이는 갑과 을, 혹은 주인과 손님 간의 개인적 감정이나 쌓인 분노 따위를 앙갚음하기 위한 도구로써의 쓰임새였을 테다. 양측의 속사정을 알 방도가 없는 우리로선 어쨌거나 이런 소식을 들을 때면 씁쓸함을 느껴오곤 했는데, 앞으로는 이런 황당한 일이 신문 지면의 일부분을 장식할 일은 절대로 없을 것 같다. 긍정적인 측면이다.

 

우려스러운 점도 있다. 기업들이 동전 실종을 핑계로 아예 짜투리 없이 지폐 단위에 맞춘 제품만을 내놓으며, 자연스레 제품 인상으로 이어져 물가 인상 효과를 낳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대목이다. 어쨌거나 디지털이 대세로 자리잡은 세상에서 점차 편의성을 추구해야 하는 게 분명 맞다면, 기술과 금융이 결합된 '핀테크'가 가까운 미래의 지불 수단으로 자리잡게 되리라는 건 불을 보듯 뻔한 노릇이다. 디지털은행이 등장할 정도이니 사실 실물 화폐의 퇴조 현상이 결코 먼 미래의 일만은 아니다. 어쨌거나 생활속 대변혁을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디지털의 편의성 뒤에 혹시 놓치고 있는 건 없는지 꼼꼼히 따져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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