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미용실 자본 진출 허용, 골목상권 우려스럽다

새 날 2016. 1. 27.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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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 10도를 넘나드는 북극 한파가 연일 기승을 부리고 있다. 가뜩이나 침체의 늪에 빠진 채 좀처럼 회복 기미를 보이지 못하고 있는 우리 경제이거늘, 그 중에서도 최근 불경기 및 한파라는 최악의 콜라보레이션에 의해 가장 직접적인 직격탄을 맞게 된 곳은 아마도 동네 골목상권이 아닐까 싶다. 동네 어귀에 놓인 전통시장을 비롯, 영세 음식점이나 술집 그리고 이미용 업종 등은 최근 불어닥친 한파와 끝모를 불경기로 인해 매출 하락이 이어지며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 정부는 충청북도에 설치되는 화장품산업 규제 프리존이라는 규제자유지역에 입주하는 법인의 경우(이는 대기업을 포함한 모든 기업을 망라한다) 이용업과 미용업에 진출할 수 있도록 이를 허용할 방침임을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관련 특별법을 4월 총선이 끝난 뒤 20대 국회 개원 시기에 맞춰 제출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이미용업의 경우 자격증을 가진 개인만이 사업을 영위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예외적인 결정의 배경엔 중국 특수를 노린 화장품 기업들의 요구가 한 몫 단단히 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JTBC 방송화면 캡쳐

 

미용업은 대표적인 서민 업종으로 분류된다. 동네에 위치한 작은 미용실의 경우 대부분 여성 업주 혼자 운영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구체적인 통계로는 전체 미용업의 80% 가량이 사회적 약자인 여성이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사람을 두고 싶어도 도저히 수지 타산이 맞지 않아 나홀로 경영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정부는 이와 관련하여 대기업이나 중소기업 모두 화장품산업 규제 프리존에서의 미용업 영위가 가능하지만, 규제 프리존 밖에서는 할 수 없어 전국 곳곳의 영세 미용실이 타격을 받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사실 이미용업에 대한 시장 진입 철폐 움직임은 정부에 의해 수차례 시도된 바 있다. 2009년 공정거래위원회는 시장 경쟁을 활성화한다는 차원에서 법인도 미용실을 열 수 있도록 하고, 업소 개설 수 제한을 폐지하는 등 미용업에 대한 진입 규제를 대폭 완화해 대기업 등 자본이 진출할 수 있도록 문호 개방을 추진한 적이 있다. 물론 당시 미용인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히는 등 논란으로 불거지자 결국 이를 일단 보류한 바 있다. 이는 언젠가 적절한 시기가 도래하면 해당 카드를 다시금 꺼내들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동안 영세 자영업자 위주로 근근이 영위되어 온 업종에 있어 자본 진입을 호시탐탐 노리던 상황이기에 비록 이번 결정이 규제 프리존이라는 특정 지역에 국한된 정책이긴 하나 이미용업에 대한 자본 진출의 허용 그 자체가 갖는 의미는 상당한 파장을 불러올 전망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부당한 공동행위나 불공정거래행위를 규제하여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촉진시키는 역할이 주 임무이긴 하나, 사업자의 시장지배적 지위의 남용과 과도한 경제력의 집중을 방지하여 국민경제의 균형있는 발전을 도모하는 역할 또한 핵심 임무이기도 하다. 하지만 후자에 대한 노력은 털끝만큼도 기울이지 않는 눈치이다.

 

공정위는 자본력을 갖춘 기업이 이미용업에 진출하게 될 경우 소비자들이 더 싸고, 질 높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논리를 내세운다. 이는 마치 영리병원이 들어서게 될 경우 국민들이 보다 질 좋은 의료 서비스를 받게 될 것이라는 주장과 매한가지다. 이로 인해 파생되는 끔찍한 이면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닌 듯싶다. 자본력을 갖춘 대기업의 진출은 작은 미용실에 의지한 채 삶을 영위해 가던 서민들의 삶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결과에 다름아니다. 이는 곧 우리 이웃들의 삶이 황폐화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영리병원의 등장이 국민건강보험 체계의 근간을 뿌리째 흔들며 결과적으로 국민 건강권 문제와 직결되는 매우 중차대한 사안으로 작용하게 되듯 말이다.  

 

JTBC 방송화면 캡쳐

 

정부는 지난달 18일 국내에서 처음으로 제주도에 영리병원 설립 사업 계획을 승인한 바 있다. 이의 파장은 자못 심각하다. 이번 이미용업에 대한 자본 진출 허용의 경우처럼 경제자유구역인 제주헬스케어타운이라는 특정 지역에 한해 이의 설립을 허용했지만, 사실상 장벽이 허물어진 만큼 앞으로 전국 8개 경제자유구역에서 제주도와 유사한 형태의 영리병원 설립 신청이 잇따를 것은 불을 보듯 뻔한 노릇인 데다, 사실상 첫발을 내딛기가 어려웠던 만큼 일단 이의 설립을 성사시켰다는 건 국내에 영리병원이 머지 않아 등장할 것이라는 신호탄으로 읽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 또한 제주도를 필두로 국내 의료시장 붕괴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미용업의 자본 진출 역시 이와 비슷한 전철을 밟는 느낌이다. 그동안 공정위를 필두로 한 정부가 자본의 이미용 시장 진입 장벽을 허물기 위해 끊임없이 이를 시도해 왔으나 번번이 반대에 부딪히게 되자 결국 이를 보류한 끝에 일종의 우회적인 방식으로 이를 허용한 셈이다. 영리병원도 그렇거니와 일단 시작이 어려울 뿐, 비단 특정 지역에 국한된 규제 철폐라는 형태의 모양새를 띠고 있으나 이는 조만간 이미용업 시장에 대한 전반적인 문호 개방의 전초로 읽히는 상황이다. 서민들의 삶, 그리고 더 나아가 국민 전체의 삶은 대기업과 자본의 그늘에 가리워진 채 더욱 고단해질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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