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청년들의 '생존기' 유행이 씁쓸한 이유

새 날 2016. 1. 29.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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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반도에 불어닥친 한파는 가뜩이나 먹고사니즘에 치인 우리 청년세대들의 삶을 더욱 고단하게 한다. 자칫 생존 자체마저 우려해야 할 정도로 위협적인 존재다. 청년세대들에겐 생존만이 전부가 아니라, 그와 더불어 사회적 관계 또한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하는 남모르는 어려움이 뒤따르는 탓에, 약간의 과장을 보태자면 영하 30도라는 혹한의 추위속에서 사지가 마구 찢긴 채 겨우 숨만 붙은 상태로 자연속에 방치되어 생존 이외에는 아무 것도 생각할 겨를이 없던 영화 '레버넌트'에서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상황보다 되레 못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끼 많고 재치 넘치는 청춘들에겐 자신들이 처한 어려움을 표현하는 일마저도 일종의 놀이이자 창의력 뽐내기 과정인가 보다. 역시 젊은이들답다. 최근 SNS 등을 통해 공유된 청춘들의 한파 극복기를 보노라면 그들만의 재능이 유감없이 발휘된 느낌이라 한편으로는 흥미로웠고, 다른 한편으로는 보다 고차원적이며 많은 사람들에게 이득이 될 만한 일에 젊음을 투자하고 무언가에 매진해야 할 청춘들이 왜 이렇듯 인간 욕구에 있어서도 가장 하위단계에 놓인 지극히 기본적인 욕구로 고민해야 하는가 라는 의문 때문에 몹시도 씁쓸했다. 

 

ⓒ한국일보

 

최근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몇가지 관련 사례를 들어보자. 스스로를 ‘흙수저’라고 소개한 한 자취생이 물을 끓여 보온과 가습을 해결하는 노하우를 공개했다. 냄비에 물을 가득 채운 뒤 버너를 아주 약하게 켜 두면 방이 조금씩 따뜻해지는데, 이때 부탄가스 1개에 800원 꼴이니 잠 자는 7시간 동안 부탄가스 반 개를 사용할 수 있고 결국 약 400원 가량의 비용이면 따뜻하게 하룻밤을 지낼 수 있게 된단다. 이외에도 추위를 이겨내기 위한 갖가지 아이디어들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겨울 난방비를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청춘들의 한파 극복기는 어느덧 재미를 넘어 눈물겨울 정도다.

 

그 중에서도 모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활동 중인 한 회원이 개발한 '생존 팁'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다. 이 팁은 영국의 유명 서바이벌 탐험가 '베어 그릴스'가 극한의 자연환경 속에서 악착 같이 살아남았던 것처럼 팍팍한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살아남는 나름의 독자적인 생존법을 담고 있다. 몇가지 예를 들자면, 추울 때 전기밥솥 껴안고 자기, 쌀이 없을 땐 쌀죽 끓여 먹으며 버티기, 로션 없을 때 식용유 바르기 등이다. 그 밖에 언론에 소개된 생존 가계부, 음식물쓰레기봉투 절약 노하우, 생존벙커로 활용 가능한 하숙집 등의 사례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삶이 얼마나 고단한 것인가를, 전부는 아니더라도 일정 부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최근 청년 실업률이 10.2%를 찍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수치조차도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는 것으로 읽힌다. 일자리를 구하려는 청년 숫자와 정규직 등 제대로 된 일자리의 숫자가 비대칭을 이루는 탓이다. 취업을 원하는 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대기업에 취업할 수 있는 청년은 고작 1%에 불과하다. 제아무리 고스펙으로 중무장한다 해도 전체 100명의 취업준비생 중 이를 뚫을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에 그친다는 의미이다. 그 밖에 전체 정규직 일자리까지 전부 합쳐 봐야 겨우 절반 가량의 청년들만 취업이 가능한 구조다. 그렇다면 나머지는 어디로 향해야 할까? 어쩔 수 없이 아르바이트와 같은 비정규직을 전전하게 된다. 때문에 실업률 10.2%엔 여전히 거품이 잔뜩 끼어있는 셈이다.

 

생존기 내지 생존 꿀팁과 같은 표현이 등장하고 있는 건 청년세대가 헬조선, 흙수저, 노오력 등의 자조를 넘어 어느덧 이젠 해도 안 된다는 자포자기적 심정까지 드러내고 있는 상황인 듯싶어 심히 우려스럽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들의 포기적 감성이 전혀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앞서도 언급했듯 어차피 청년 전체 중 제대로 된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숫자는 고정되어 있기에 나머지 대다수의 청년들은 여전히 미생으로 젊음을 소일해야 할 판국이다. 이런 마당에 강추위까지 들이닥치고 있으니 안위는 둘째치고 우선 영화 '레버넌트'처럼 생존 그 자체를 염려해야 할 극단의 처지로 내몰리고 있는 셈이다.

 

ⓒ헤럴드경제

 

국가로부터는 더 이상의 희망 따위가 보이지 않는다. 오죽하면 한 매체의 설문조사에서 우리 국민 10명 중 4명이 다시 한국인으로 태어나고 싶지 않다고 했겠는가. 청년층의 불신은 여타의 세대보다 더욱 뿌리 깊다. 그들의 생각은 자못 심각하기까지 하다. 20대 청년 10명 중 7명은 한국을 떠나 다른 나라에서 살고 싶다고 말한다. 때문에 이렇듯 어려운 환경을 물려준 기성세대를 욕하지 않는다면 외려 그게 이상할 정도다. 지금 우리 주위를 배회하고 있는 청년들의 자기비하적 묘사나 자포자기적 망령의 흔적 모두는 전 세대에게 짐이자 대한민국의 미래에 암울한 그림자를 드리우는 상황으로 받아들여야 함이 옳다.

 

가까운 미래에 대한민국의 운명을 좌우하게 될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의 근원을 찾아 올라가다 보면 결국 청년들의 취업절벽 상황과 맞닥뜨리게 된다. 그러나 정부나 정치권은 이러한 젊은이들의 처지마저 자신들의 이권과 결부시킨 채 현재의 사회 경제적 불평등 구조를 완화시키려는 노력보다는, 이른바 '청년 팔이'를 통해 특정 계층의 이득만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다. 청년세대에겐 이런 구조를 잉태케 한 기성세대가 밉지 않을 수 없다. 지금처럼 청년 계층이 자기비하 표현을 넘어 자포자기적 속내마저 드러내는 생존기 따위가 횡행하고 있는 건 결국 그들(정치권, 기성세대)로부터는 어떠한 희망조차도 찾을 수 없다는 의미로 다가오는 데다, 오로지 생존 그 자체를 염려해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욕구 충족 행위 외엔 모두가 사치로 받아들여지는 탓에 더없이 씁쓸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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