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과거사 덮고 가자는 어처구니없는 미국

새 날 2015. 3. 1.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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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7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카네기 국제평화연구소 세미나에서 기조 연설자로 나선 웬디 셔먼 미 국무부 정무차관이 했던 아래의 발언은 우리의 심기를 한없이 불편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하필 다른 때도 아닌, 96주년 삼일절 아침에 전해진 소식이라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민족감정은 여전히 악용될 수 있고, 정치지도자가 과거의 적을 비난함으로써 값싼 박수를 얻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이 같은 도발은 진전이 아니라 마비를 초래한다.  스스로 만든 역사의 덫에 갇히는 국가의 위험스런 이야기를 멀리서 살펴볼 필요가 없다"

 

가해국인 일본의 끔찍했던 과거사의 원죄에 대해선 정작 놔둔 채, 오히려 피해 당사국인 우리나라와 중국이 일본과의 과거사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고 있다며 이를 도발이라는 비유를 통해 싸잡아 비판하고 나선 것입니다. 


중국 견제라는 전략적 틀을 새로이 짜야 할 미국 입장에서는 한일 간의 과거사 갈등이 어떤 식으로든 서둘러 봉합되기만을 바라고 있을 겁니다.  때문에 최근까지도 우리를 비롯한 주변국이 납득할 만한 반성과 진정성 있는 사과를 일본 아베 정권에 종용해 오며, 과거사 논쟁에 관한 한 최대한 중립적인 자세를 견지해왔던 미국입니다.  물론 진짜 속내야 이와는 다를지언정 적어도 겉으로 드러나고 있는 차원에서 볼 때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웬디 셔먼의 입을 통해 드러난 미국의 공식 입장은 그동안의 태도와는 사뭇 다른 결과라 그 어느 때보다 우려스러운 상황입니다.  최근 중국 견제라는 동북아 전체의 전략적 구도를 염두에 둔 미국은 일본의 군사대국화 움직임을 뒤에서 부추기며 이를 방조해온 터라 웬디 셔먼의 언급은 단순한 과거사 차원에서 해당 문제를 바라보는 게 아닌, 다분히 계산된 발언으로 읽히는 상황입니다.  즉 과거사로 인해 한일 관계가 꼬일 대로 꼬인 시점에서 미국의 전략이 자칫 원하는 형태 대로 제대로 그려지지 않는 상황을 우려한 나머지 아예 작정하고 이를 봉합하려 나선 듯싶습니다. 

 

하지만 웬디 셔먼의 발언은 몇 가지 점에서 적절치 않거니와 매우 불쾌하기까지 합니다.  우선 해병이었던 자신의 아버지가 1942년 솔로몬군도 과달카날 전투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부상 당했다는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가, 식민 지배를 당하며 겪은 국가 전체의 고초 및 그러한 과거사를 덮는 일과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아울러 전쟁의 재앙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과거사 피해자들의 열망 속에서 유엔이라는 기구가 창설되어 과거사 갈등이 큰 틀에서 정리됐다며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양보를 강요하고 나선 상황은 더욱 당황스럽기만 합니다.

 

ⓒ연합뉴스

 

미국은 일본의 식민 지배와 직접적으로 관련없는 국가이기에 정작 당사국인 한국과 중국이 겪어온 고통을 절대로 헤아릴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정작 몹쓸 만행을 저지른 가해국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반성은커녕 여전히 과거사를 왜곡하는 등 우경화로 치닫고 있는 일본의 행태에 대해 이를 두둔하며 피해국가인 저희 더러 외려 잘못했다고 다그치고 있는 미국의 모습은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입니다. 

 

일본이라는 국가가 미국의 중국 견제를 위한 전략적 가치에 있어 우리보다 월등히 높다고 하여 일본의 군사대국화 움직임을 방조하는 행위는 오히려 동북아의 평화를 해치는 결과에 불과할 뿐입니다.  과거에 대한 반성이라곤 도통 모르는 그들일진대, 미국의 도움에 기댄 채 군국주의라는 망령의 부활을 꿈꾸며 주변 국가를 또 다시 군사적 위험 속으로 몰아넣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움직임이 우려스러울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혹여 일본이 과거사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사과를 해온다 해도 이를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상황이거늘, 미국의 바람 대로 우리가 일본과의 과거사를 덮고 억지 화해 무드를 만들어간다 한들 본질적인 변화 없이는 내재된 갈등이 휴화산처럼 잠자고 있다 언제고 간에 또 다시 밖으로 표출될 수밖에 없습니다.  어설픈 봉합은 가까운 훗날 더 큰 재앙으로 진화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양보라는 어휘도 사실 마뜩잖습니다.  이는 서로가 비슷한 조건에서 어느 한쪽이 상대방에게 미루어주는 미덕에 속합니다.  과거사를 둘러싼 동북아 갈등의 원류는 일본에게 있습니다.  일본의 만행은 일방적인 성격의 것입니다.  결국 일본의 결자해지만이 모든 문제의 해법인 것을 왜 미국은 그와 반대로 우리에게 양보하라며 종용하고 있는 것인지 보면 볼수록 화가 날 지경입니다.  일본이 진정성 있는 사과와 통절한 과거사의 반성을 내비치며 노력해온다면, 주변국들과의 갈등 및 아픔은 자연스레 치유될 수 있을 것입니다. 

 

미국이 언급한 것처럼 인위적인 단순한 과거사 덮기란 절대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과거를 뛰어넘기 위해선 오히려 이를 제대로 정리하는 일이 선결돼야 합니다.  즉 피해국가들의 일방적인 양보가 아닌, 역사왜곡과 독도침탈 그리고 우경화의 광폭 행보를 일삼고 있는 일본 스스로 그와 같은 망동을 멈춘 채 역사를 올바르게 직시하고 과거를 반성하며 주변국가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죄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절대로 잊어선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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