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원전 재가동 결정마저 날치기로 하나

새 날 2015. 2. 28.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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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안전위원회(이하 '원안위')가 설계수명이 만료돼 3년째 가동이 중단됐던 경북 경주 월성 1호기에 대해 2022년까지 수명을 연장키로 결정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원전 운영 당국이 후속조치 마련에 나서고 있는 상황입니다만, 주민과 환경단체의 반발이 만만치 않아 혼란은 피해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사실 주민과 환경단체의 반발은 예견됐던 상황이긴 합니다만, 결코 수명 연장 결정이라는 결과물 때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이러한 엄중한 사안을 결정함에 있어 절차 과정에서 드러났듯 원안위의 어정쩡한 태도와 막무가내식 처리 방식 탓이 더욱 크게 다가오는 느낌입니다. 


원안위는 지난 1월과 2월 12일 두 차례에 이어 26일 월성 1호기의 재가동 여부에 대한 심사에 착수하여 날짜를 넘기는 장시간의 회의 끝에 위원들의 표결을 통해 재가동을 허가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석연치기 않습니다.  날짜를 넘기면서까지 이어지던 지루한 회의였음을 감안하더라도 일부 위원의 표결 요청에 의해 위원장이 결정한 거수 표결 방식은 여러모로 문제점이 다분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우선 원안위를 움직이고 있는 위원들의 면면을 살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원안위에 소속된 9명 중 7명은 재가동을 찬성하고 있는 정부와 여당 측 추천 위원이었고, 나머지 2명은 재가동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는 야당 측 추천 위원이었던 걸로 전해집니다.  

 

거수 표결 당시 이에 불만을 품은 야당 추천 위원들은 표결 방식에 반대하며 회의장을 빠져나갔고, 결국 원전 재가동 결정은 나머지 찬성 성향 위원들에 의해 이뤄진 결과물이었던 셈입니다.  그동안의 논의에 따른 성과물에 대해선 그 어떠한 반영조차 없이 이를 뒤로 한 채, 특정 성향 위원들만의 날치기식 거수로 통과된 것입니다.     

 

ⓒ아시아경제

 

월성 1호기의 안전성은 여전히 논란거리임에 틀림없습니다.  지역주민이 선정한 민간 검증단이 월성 1호기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 검증을 통해 계속 운전 시 안전성 보장이 어려울 수 있다며 안전 개선사항 32건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만, 원안위는 이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한 채 서둘러 재가동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이토록 중차대한 문제를 마치 국회에서 흔히 봐왔던 날치기식 거수 방식으로 서둘러 마무리한 결과는 재가동의 명분에 커다란 흠집으로 남을 공산이 큽니다. 

 

이러한 방식의 결정은 그동안 제아무리 합리적인 논의 절차 과정을 거쳐왔다손 쳐도 이에 대한 타당성마저 한꺼번에 명분을 잃게 만들며, 원안위의 신뢰를 땅에 떨어뜨리게 하는 결과물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역 주민들과 시민사회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한다면, 가뜩이나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원전이거늘, 향후 원전 당국이 계획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도 제대로 된 동력을 얻기가 힘들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 우리를 더욱 우려스럽게 하는 건 앞으로 수명이 다 된 원전의 운명을 차례로 결정해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된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잦은 고장에 시달리고 있는 고리 1호기를 포함해 향후 10년 안에 연장 여부를 결정해야 할 국내 원전은 모두 6기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그렇다면 이후에도 월성 1호기의 재가동 결정 과정처럼 원안위 위원들의 형식적인 거수로 이런 중차대한 문제를 결정할 가능성이 점쳐지기에 우려스럽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물론 여름철 내지 겨울철마다 반복적으로 겪는 전력대란의 가능성 때문에 노심초사하고 있을 정부 입장에서는 가급적 기존 원전을 계속 가동하고 싶은 유혹을 이겨내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당장 원전 가동 없이는 이를 대체할 만한 에너지 자원이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에너지 체계에 대한 개편을 나름 구상하고 있는 듯싶습니다만,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전에 대한 의존도를 획기적으로 줄이고 있는 독일이나 일본에는 크게 못 미치고 있는 실정입니다.  오히려 원전을 줄이는 게 아닌, 이를 늘려잡고 있는 터라 우려스럽기만 합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23기의 원전을 가동 중인데, 제6차 전력수급 기본계획(2013-2027년)에 따라 5기의 원전을 추가 건설 중이며, 2024년까지 6기의 원전을 더 건설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에게 있어 원전 건설보다 더욱 시급하게 다가오는 문제는 이번 월성 1호기 재가동 결정 과정을 통해 부각되었듯, 원전시설의 폐쇄와 관련한 사항일 것입니다.  정부가 안전성이 제대로 확보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월성 1호기의 수명을 연장하겠다고 나선 건 아직 원자로 폐기와 해체에 필요한 법적 준비 내지 기술적 노하우가 우리에게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는 셈이며, 설사 원전을 가동하지 않고 전격 폐쇄하겠노라 선언한다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사후 처리가 곤란하다는 이유가 한 몫 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때문에 앞으로 원전 재가동 여부 결정이 줄줄이 예견되는 상황에서 이에 제대로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우리 정부는 원전 폐쇄와 관련한 제도와 기술을 축적해 놓아야 하는 난제를 안고 있습니다.  

 

정부 정책에 있어 그 무엇보다 우선 순위에 두어야 하는 덕목은 다름아닌 국민의 생명과 안전 아닐까 싶습니다.  안전성이 제대로 검증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날치기로 이의 재가동을 결정하겠다는 건 결국 정부의 가장 큰 책무를 스스로 내팽개치는 결과물로 읽힙니다. 

 

정부의 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만, 아무리 급하다고 하여 바늘허리에 실을 매어 쓸 수는 없는 느릇입니다.  조금 시간이 걸리는 한이 있더라도 지역 주민은 물론 모든 국민을 안심시킬 수 있는 확고한 안전성을 담보한 뒤, 누구나 수긍 가능한 적법한 절차를 거쳐 원전의 수명 연장 여부를 결정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중장기적으로는 원전 자체에 대한 에너지의 의존성을 크게 줄여나가야 하는 게 가장 중요한 명제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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