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박원순 시장의 인권헌장 외면이 아쉬운 이유

새 날 2014. 12. 6.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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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울시민 인권헌장 제정을 둘러싸고, 이를 추진했던 시민위원들과 박원순 서울시장과의 첨예한 대립 양상을 볼 수 있었는데요.  그 이유와 과정은 앞서 작성한 포스팅에 언급되어 있어 다음의 링크로 대신합니다.  (박원순 시장님, 솔직히 실망스럽습니다  포스팅 참조) 

 

돌이켜 보면 박 시장의 태도가 전혀 수긍이 가지 않는 건 아닙니다만, 어쨌거나 평소 박 시장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던 연유로 인해 다소 혼란스러웠던 건 엄연한 사실입니다. 

 

인권헌장 제정에 직접 참여했던 시민위원들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번 사태에 대한 박 시장의 입장 표명을 기다려왔습니다만, 정작 당사자는 입을 굳게 다문 채였으며, 외려 다른 쪽에서 그의 입장을 전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다름아닌 이번 인권헌장 폐기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개신교 쪽 매체로부터였습니다. 



기독신문에 따르면 지난 2일 박 시장이 한국장로교총연합회 임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사회갈등이 커지면 안 하는 것만 못하다.  여러 가지 논란과 갈등을 야기해 죄송하다.  인권헌장은 표결로 처리할 사안이 결코 아니며, 기도가 사람의 마음을 바꾸듯이 인권헌장도 합의가 중요하다.  성 전환자에 대한 보편적인 차별은 금지되어야 한다.  하지만 동성애는 확실히 지지하지 않는다.  동성애를 지지한다는 보도는 와전되었다."라는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후인 것 같습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가 5일 동성애 및 동성결혼 합법화를 위한 법안 추진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며, 서울시가 동성애를 용인하는 내용으로 인해 논란이 되었던 '서울시민인권헌장'을 채택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한 박원순 서울시장의 결단을 적극 지지한다고 언급한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해당 단체는 이후 "동성애 반대 1,000만인 전 국민 서명운동" 전개에 나서겠노라 공식 선언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인권헌장 폐기를 위해 공청회장에 난입하는 등 극단적인 반대 운동을 펼쳐왔던 세력에게 박 시장의 인권헌장 폐기가 결정적인 전리품이 되어 그들의 선전전에 활용되기 시작하는 모양새입니다.  박 시장이 왜 이런 결정을 하였는지는 앞선 포스팅에서도 언급했듯 대충 정황이 읽힙니다만, 그 대가는 혹독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막말로 이제껏 봐 온 그들의 성향상 이들 세력이 향후 대선에서 박 시장에게 표를 몰아 줄 리는 절대 만무합니다.  결론적으로 볼 때 명분도 잃고 실익도 없는 결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머니투데이

 

5일 때마침 동성애와 관련한 에피소드 하나가 화제였습니다.  학생의 실명을 요구해 논란이 일었던 '동성애 설문지'에 대해 한 여학생의 재치있는 답변 때문이었는데요.  머니투데이 기사에 따르면 이 이미지의 원 게시자는 중학교 수학 교사인데, 2년 전 학교에 동성애 커플이 있다는 소문을 들은 교장이 해당 설문지를 돌리라 지시하여 이뤄진 결과물이라고 합니다. 

 

이는 2011년 학생인권조례 성소수자 공동행동 측에서 발행한 성적 소수자 학교 내 차별 사례 모음집에 실렸던 설문지로써, 설문지 자체만으로 이미 네티즌들 사이에서 한 차례 회자됐던 사안입니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가 낳은 희극 포스팅 참조)

 

그럼 이 학생의 답변을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동성애는 학교가 전혀 관여할 수 없는 그 학생의 개인적 성향이다.  이를 처벌한다는 명목 하에 이뤄지는 이 설문지조차 터무니없다.  내성적인 아이가 남들보다 대인관계를 맺는 데 시간이 오래 소요되고, 깔끔한 사람이 남들보다 청소빈도가 높은 것처럼 그저 본인의 특정한 성향인 것이다.  학교의 건전한 생활풍토를 마련하기 이전에 학생들의 배움터인 이곳의 정신적 수준 향상에 힘쓰는 게 어떨런지.  학교는 분명 진보되기를 희망해 운동장에 새 잔디를 마련하고, 교실에 최첨단 칠판을 설치했다.  또 백일장에선 차별이 야기하는 문제들을 지적하고, 양성 '평등'을 주장하는 내용을 주된 제목으로 분류해 놓는다.  그러나 지금 당장 쓰레기통에 처박아도 될 것 같은 이 설문지는 매우 구시대적 발상이며 심하게 차별적이다.  정말 이렇게 모순일 수가 없다.

 

정말 논리적이며 예리하지 않은가요?  우리 어른들을 부끄럽게 만들 정도로 똑부러집니다.  이번엔 이와 대척점의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있는, 앞에서 언급했던 한기총의 5일 성명서 전문 중 일부를 살펴보겠습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최근 각종 언론 매체를 통해 독버섯처럼 번지고 있는 '동성애'에 대한 우호적인 입장들과 '인권을 보호한다'는 미명하에 진행되고 있는 '동성애 및 동성결혼 합법화를 위한 법안추진'에 대해 아래와 같이 반대한다.

 

1. 동성애는 성경이 가르치는 창조의 질서 및 생물학적이며 사회적인 통념에 어긋난다.

2. 동성애는 단순한 "경향"의 문제가 아니며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대로 분명하게 "죄"이다.

3. 동성애를 통한 "동성결혼"은 생물학적인 질서를 파괴하며 인간사회의 전통적인 가치와 질서를 뒤흔드는 행위이다.

 

개개인마다 다른 성 정체성 내지 성적 지향성인 동성애를 '독버섯'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심지어 성경의 가르침으로부터 어긋나기에 이를 '죄'로 지목하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간과하고 있는 부분이 엿보입니다.  대한민국 사회 구성원 모두가 성경 교리를 따르지는 않습니다.  아울러 사람마다 서로 다른 종교를 믿고 있거나 그도 아니면 종교와는 아예 담을 쌓고 있는 이들이 존재하듯 성 정체성 또한 개개인마다 모두 다를 수 있습니다. 

 

이는 위에서 설문에 답한 학생이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내성적이냐 외향적이냐에 따라 대인관계가 달라질 수 있으며, 또한 오른손잡이냐 왼손잡이냐에 따라 생활에 다소 불편함은 있을지언정 이에 대해 우린 가치판단을 요구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성 정체성 내지 성적 지향성 또한 마찬가지의 개념일 것입니다.

 

저 개인적으로 볼 땐 설문지를 작성한 학생이, 수많은 교인들의 대표성을 띄고 있는 특정 종교단체보다 훨씬 합리적이며 사려깊은 것이라 판단됩니다.  자신들이 혐오한다는 이유만으로, 아울러 성경 교리에 어긋난다는 이유만으로 인류의 보편 타당한 권리마저 앗아갈 수는 없습니다.  그 대상이 누가 되었든 간에 종교적인 또는 다른 이유로 인해 천부인권마저 침해받게 된다면, 우리 모두가 언제든 또 다른 권리에 대해 침해받을 수 있다는 점을 절대로 간과해선 안 될 것입니다.  박원순 시장의 이번 결정 물론 존중합니다만, 때문에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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