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축구 한일전, 성숙한 응원문화가 아쉽다

새 날 2014. 9. 30.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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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지난해 7월 잠실종합운동장에서 개최됐던 2013 동아시안컵 한일전 축구시합을 기억한다.  특별히 경기 내용이 눈길을 끌었거나 명승부였기 때문이 아니다. 

 

응원전에서 보여준 붉은악마의 비매너 행위 때문이다.  그로부터 대략 1년여의 시간 흐름이 있었다.  지난 28일의 일이다.  인천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8강전이 열렸는데, 우리 대표팀은 숙적 일본과 또 다시 맞붙었다. 

 

ⓒ시사위크

 

한일전, 특히 축구 경기에서만큼은 늘 경기력 이상의 그 무언가가 요구돼왔으며 그 덕분이었는지 아니면 운이 좋아 그랬는지는 몰라도 우린 승리를 거두는 경우가 더 많았다.  이번 경기 역시 1대0의 짜릿한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  그러나 응원전에서만큼은 달랐다.   

 

또 다시 관중석에선 안중근 의사의 대형 초상화가 등장했다.  지난해의 교훈도, 아니 그보다 앞서 있었던 2012년 런던올림픽 당시의 박종우 선수 독도 세레머니의 교훈도 모두 모두 망각속으로 잊혀졌는가 보다.  당장 NHK를 비롯한 일본 언론들이 이와 관련해 "축구장 응원에서의 정치적 주장을 금하는 국제축구연맹(FIFA) 규정에 위반될 수 있다"며 지적하고 나섰고, 일본 선수단 역시 재발방지 요구 의견서를 대회 조직위원회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와 판박이다.  물론 우리 응원단의 그릇된 행태를 꼬집는 것은 비단 일본의 반응 때문만이 아니다.  일본의 행동이나 반응과는 별개로 우리 스스로가 진정한 스포츠 정신을 발휘하지 못한 현실이 너무도 아쉽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지난해엔 일본 응원단 측이 먼저 욱일승천기를 꺼내들었노란 핑계거리라도 존재했다.  하지만 이번 시합에선 우리의 행동에 대해 이를 합리화시킬 이유마저 찾기가 여의치 않다.  오히려 아시안게임이라는 커다란 국제 행사에서 벌어진 일이라 더욱 난감하기만 하다.  더군다나 우린 개최국의 입장 아닌가.

 

ⓒ문화일보

 

잘 알려져있다시피 FIFA는 경기장에서의 인종차별적 행동이나 정치적인 행위를 엄격하게 금지한다.  이는 선수 개인뿐 아니라 관중과 경기 관계자 모두에게 적용되는 규칙이다.  때문에 정치적으로 인식되는 슬로건을 내보일 경우 형식에 구애 없이 행위 자체를 제재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일본의 항의 때문이 아니듯 비단 FIFA의 엄격한 규정과 그에 따르는 제재가 두려워서가 아니다.  과거의 교훈은 잊은 채 여전히 스포츠 정신을 망각한 듯 성숙하지 못한 응원전을 펼친 우리 응원문화의 후진적인 행태가 안타깝다.  아무리 안중근 의사의 초상화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한들 이를 받아들이는 상대에 따라 그 의미는 천양지차로 다가올 수 있는 문제이거늘 굳이 민감할 수 있는 걸개를 걸어 응원전을 펼쳤어야 할 특별한 이유가 우리에겐 딱히 없다.

 

그라운드에 나선 선수들의 기운을 돋우는 방식은 다양한 형태일 수 있다.  하지만 서로가 지켜야 할 금도라는 건 엄연히 존재한다.  작금의 응원 방식은 우리 선수들의 승리 고취를 위해서라기보다 상대방 선수단과 응원단을 자극하기 위한 행위에 가깝다.  우리에겐 큰 의미가 없는 일이라며 애써 축소하려 들지만, 상대방의 감정을 헤집는 일은 비겁한 행위이다. 

 

ⓒ일간스포츠

 

일본은 늘상 자신들 시합 때면 욱일승천기를 펼쳐 흔들곤 하는 상황에서 고작 안중근 의사 초상화를 내거는 일이 뭐가 그리 대수냐는 일부의 반응을 엿볼 수 있다.  한 마디로 니들은 하는데, 우린들 못 하겠냐는 류의 위험한 발상이다.  혹여 일본이 눈살 찌푸리는 행동을 해온다 한들 그와 관계없이 우린 의연했어야 함이 옳다.  적어도 스포츠 세계에선 그게 승자다운 면모다. 

 

지난해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고 쓰인 대형 현수막을 관중석에 내걸었던 우리 응원단이다.  하지만 스포츠 정신을 망각한 채 같은 실수를 거듭하여 반복하는 모양새를 보아 하니 정작 우리가 과거를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어 노파심마저 드는 상황이다. 

 

결과적으로 이번 아시안게임 축구 8강전, 표면상 경기는 이겼으되 이겼다고 하기엔 찜찜한 구석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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