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세월호.. 우리 사회에 무엇을 남겼나

새 날 2014. 10. 1.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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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가 세월호특별법을 결국 타결시켰다.  참사 167일만의 일이다.  정치권과 언론에선 '극적인 타결'이란 수사를 사용해가며 호들갑이지만, 그러한 표현과는 결코 어울릴 법하지 않은 결과라 내겐 영 마뜩잖다. 

 

ⓒ연합뉴스

 

여야가 서로 최종 합의 시한을 사전에 그어놓은 채 진정성 깃든 제대로 된 협상을 통해서라기보다 시간 끌기 전략 끝에 형식적으로 얻어낸 산물로 비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신호는 여러 곳에서 읽힌다.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비대위원장이 지난 9월 28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세월호특별법을 9월 내로 매듭짓자며 제안해온 바 있다.  물론 이에 대한 화답은 시큰둥했지만, 무언가 물밑 움직임은 활발했던 듯싶다.

 

결국 그들만의 리그였다.  이 과정에서 국민은 철저히 배제됐다.  정치권이 얼마나 당리당략에 매몰된 채 국민을 우롱하고 있는가는 앞서 문희상 비대위원장의 기자회견, 그리고 박 대통령의 9월 30일 국무회의 주재에서 나왔던 발언의 맥락과 그 이후의 흐름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청와대

 

박 대통령은 이날 이렇게 말했다. 

 

"정치도 국회도 모두 국민을 위해 있는 것이고, 정치인 모두가 국민을 위해 모든 것을 걸겠다는 약속을 한 것을 국민들은 잊지 않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약속과 맹세는 어디로 가고 모든 문제를 정략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우리 정치인들이 뼛속 깊이 새겨들어야 할 내용 중 정수만을 뽑아 말한 듯싶다.  지극히 옳은 표현이다.  물론 그 정치인에 대통령 자신 또한 포함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함정이지만 말이다.  아울러 이런 말도 했다. 

 

"새정부가 들어서고 거의 2년 동안 정치권이 장외정치와 반목정치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또한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백번 옳은 말이다.  물론 이러한 결과를 만든 주체가 누구냐를 따지고 들자면 대통령 본인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 함정이긴 하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여기에선 대통령의 발언 내용을 언급하려 함이 아니다.  이는 나 말고도 수많은 이들이 끄집어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 데다, 더 이상 대통령을 물고 늘어졌다간 자칫 모독 행위로 철컹철컹 신세가 될지도 모르거니와 아울러 이 제약된 공간을 그분의 내용으로 채우기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연합뉴스

 

그렇다면 뭐가 문제란 말인가.  다름 아니라 대통령의 야당을 질타하는 발언이 있자마자 그날 바로 세월호특별법이 타결됐다는 사실에 난 주목한다.  어떻게 본다면 문희상 비대위원장의 신호가 있은 뒤 곧 이어 대통령이 이에 화답하는 형식을 갖추고 있다.  일종의 정치쇼가 아니면 무어란 말인가.

 

즉, 대통령이고, 여당 야당이고를 떠나 우리 정치인들은 국민들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이 오로지 정파적 이익과 당리당략에만 몰두하고 있노라는 걸 직접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청와대는 세월호특별법 타결 보도가 나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환영의 뜻을 표해 왔다.  예상에서 한 치의 어긋남도 없다.

 

세월호 참사 국면에서 정치인은 서로 이익을 나눠 가지며 자신들의 목적 달성엔 크게 성공하는 모양새지만, 이를 지켜보던 국민들과 유족들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이러한 말도 안 되는 정치쇼를 보기 위해 무려 167일 간이란 시간을 숨죽인 채 기다려야 했던가.

 

ⓒ인터넷 커뮤니티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사회의 반목은 더욱 심해졌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에 대한 담론이 어느날 갑자기 이념 갈등으로 치닫더니, 또 다시 우리 사회는 그에 의해 둘로 갈라져야만 했다.  물론 이러한 갈등을 교묘히 부추겨온 세력 역시 권력집단과 정치권이다.  이래저래 정치인들만 괘씸할 뿐이다.

 

하루아침에 자식 등을 잃은 유족은 생업을 포기한 채 본의 아니게 투사(?)가 되어야 했다.  정치권의 외면으로 그들은 길바닥에 나앉아 목숨을 건 단식과 농성을 이어갔다.  슬픔을 채 가누지도 못한 상황에서 그들의 육신은 만신창이가 됐고, 또한 멍든 가슴은 갈갈이 찢겨야만 했다.  심지어 범법자가 된 이들도 있다.  핏줄을 잃은 데다 철창 신세까지 져야 하다니 그야 말로 기구한 운명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을 범법자로 내몰게 만든 건 당췌 무엇일까. 

 

자식을 잃거나 가족을 잃은 마음은 한결 같을 텐데, 이러한 유족들마저 서로 갈등을 빚더니 이해관계에 따라 이내 양분되고 말았다.  마치 우리 사회가 세월호로 인해 둘로 갈라지듯 단원고 희생자 유족 측과 일반인 희생자 유족 측이 서로 이해를 달리하며 갈라서는 아픔마저 겪어야 했다.  지금도 세월호특별법 타결을 놓고 두 유족 측은 서로 상반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다.

 

ⓒ한겨레신문

 

세월호는 자칭 극우세력의 준동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어버이연합과 엄마부대와 같은 단체의 단식 폄훼 시위는 차라리 양반이었다.  '일베'의 온라인을 넘어선 최초 광장 진입과 뒤이은 폭식투쟁에 때맞춰 '서북청년단' 등의 광기 어린 집단이 출현하며 가뜩이나 어지럽던 사회에 혼란을 더욱 가중시키는 양상이다. 

 

세월호가 빚어낸 유형 무형의 형상들로 인해 이 세상은 온통 어수선한 느낌이다.  온전한 정신을 유지한 채 숨쉬기가 버거울 정도다.

 

세월호 참사는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을 만큼의 고통과 슬픔을 우리 사회에 안겼다.  일반인의 입장에서 유족들의 마음을 헤아린다는 게 사실 주제 넘는 행위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아픔을 어떤 식으로든 함께하며 덜어주고 싶은 마음 굴뚝 같다. 

 

앞으로 유족을 포함한 모든 이들의 아픔을 씻어나가는 작업과 동시에 비슷한 참사의 재발 방지를 위해 힘을 쏟아야 할 테지만, 난 세월호 참사 자체보다 오히려 참사 이후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작금의 상황들이 더욱 가슴 아프게 와닿는다. 

 

우린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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