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아시안게임 중에 대북 전단 살포라니

새 날 2014. 9. 21.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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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억 아시아인의 축제, 인천 아시안게임이 19일 개막식을 갖고 16일간의 공식 일정에 돌입했습니다.  대회조직위는 이번 게임을 통해 모두 세 가지의 목표를 제시한 바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소통과 화합, 배려의 대회'로써 이념과 종교, 민족의 갈등을 녹이는 평화의 제전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지난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 이어 이 땅에서 12년만에 북한 선수단의 참가가 이뤄지며 그 어느 때보다 뜻깊은 행사로 기록될 이번 대회입니다만, 어렵사리 성사된 남북한의 화합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탈북자 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이 21일 경기도 파주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북한 체제를 비판하는 내용을 담은 전단 20만 장을 북한으로 날려 보낼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전단지에는 미화 1달러짜리 지폐 1000 장, 남한 찬양과 북한 체제 비난 내용이 실린 소책자 그리고 DVD 등이 담겨있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SBS

 

기껏 잔치에 초대해 놓고선 이게 도대체 무슨 해괴한 짓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이를 계획한 탈북자 단체보다 우리 정부의 어정쩡한 태도라 생각됩니다.  민간단체가 전단 살포를 강행하겠다고 밝힌 데 대해 정부는 전단 살포를 막을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민간이 자율적으로 판단하여 추진할 사안이라며 사실상 전단 살포를 용인하고 나섰습니다.  사안마다 그때 그때 해석과 적용을 달리하는 정부의 이중잣대는 이번에도 이해할 수 없는 측면이 더 많습니다.

 

북한 또한 그들 나름대로 뿔이 난 상황입니다.  대남선전용 웹사이트인 '우리민족끼리'는 20일 모든 사태의 책임은 전적으로 남한 정부가 지게 될 것이며, 전단 살포 행위를 전쟁 도발 행위로 간주하고 도발 원점과 지원 지휘 세력을 즉시에 초토화해버리겠다고 위협하고 나섰습니다.  더불어 청와대 앞으로 전단 살포 중단을 요구하는 전통문을 보내왔습니다.

 

이 시점에서의 대북 전단 살포 행위,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저는 참으로 무모하면서도 바보 같은 짓이라 생각됩니다.  비단 북한의 요구와 위협 때문만이 아닙니다.  정부는 대북 전단 살포를 막는 행위가 마치 북한의 위협에 굴복하는 것이라 판단한 때문인지, 그도 아니라면 실제로 북한 체제의 붕괴를 바라고 있기 때문인지, 어쭙잖은 자존심을 세우고 있습니다만, 이는 결과적으로 큰 착오이자 오산입니다.  북한의 위협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대북 전단을 지금 절대로 살포해선 안 될 이유가 있습니다.  

 

인천 아시안게임을 통해 진정 민족의 갈등을 녹이는 평화의 제전으로 승화시키길 꿈꾼다면 적어도 아시안게임 기간 중에 전단을 살포하는 행위만큼은 막아야 합니다.  민간의 자율이라며 정부가 이를 방임하는 건 정부 역시 민간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함과 동시에 같은 입장임을 천명하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며 입버릇처럼 말해오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이렇듯 작은 곳에서부터 서로 신뢰를 회복해야 정상 궤도를 밟을 수가 있습니다.  앞에선 온갖 미사여구를 넣어가며 사탕발림의 정책과 각종 선언을 남발하고 있지만, 정작 뒤에선 얼굴색 싹 바꿔가며 이율배반적인 행동으로 평화와 통일을 운운하고 또 찬양하고 있으니, 어찌 당황스럽지 않을 수 있을까 싶습니다. 

 

차가운 기운이 가득한 남북 간 관계에 있어 이번 인천 아시안게임은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일 수 있습니다.  정치외교적 채널이 지정체 상황이라면 스포츠나 민간 채널을 통해서라도 남북 간의 단절된 관계를 계속 이어가야 합니다.

 

주변에서 간혹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북한은 사전 예고도 없이 수시로 미사일을 발사하며 우리를 끊임없이 위협해 오는데, 심지어 교황이 방한 중일 때조차, 우린 단지 전단 살포에 불과한 일로 뭐가 그리도 호들갑인 거며 또한 뭐가 문제가 되느냐는..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북한보다 우위를 점하고 있는 건 비단 경제력뿐만이 아닙니다.  바로 자신들의 목적 달성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심지어 민간인에게까지 포탄을 마구 발사하는 지극히 비인도적이기까지 한 북한보다 적어도 훨씬 인도적이며 합리적인 우리들입니다.  

 

ⓒ세계일보

 

이런 상황에서 그들보다 조금 더 잘산다고 하여 천박스럽게 미국 지폐를 마구 뿌려대거나 체제 비난의 전단 살포와 같은 행위는 저들이 시험삼아 쏘아대는 미사일 발사의 그것과 진배없습니다.  더군다나 남북한을 포함한 45억 아시아인의 평화의 제전이랄 수 있는 아시안게임 도중의 그러한 짓은 참으로 치졸한 행위입니다.

 

만에 하나 전단 때문에 가뜩이나 호전적이며 돌발적인 데다 예측불허의 모습을 보이기까지 하고 있는 북한이 실제로 무모한 짓이라도 벌여온다면 남과 북 모두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민간이 알아서 할 일이라며 발뼘하고 외면했던 정부이지만, 이에 대한 최종 책임은 결국 정부가 져야 할 몫이기에 막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전단 살포 계획을 완전히 철회하는 게 가장 바람직스러운 조치이긴 하겠습니다만, 해당 단체가 굳이 전단 살포를 해야 할 필요성이 있고 또 이를 실행에 옮겨야만 한다면, 적어도 아시안게임 기간만큼은 피했으면 좋지 않겠는가 하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합리적인 판단이란,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요구되어집니다.

 

정부 역시 민간이 알아서 할 일이라며 손을 놓아버리는 것이 마냥 옳은 방법은 아닙니다.  적어도 북한 선수단이 참가한 아시안게임이 무사히 마무리될 때까지는 강제로라도 이를 막아야 합니다.  남북관계에 있어 화해 무드 조성의 단초가 될 수 있는 호기를 절대로 놓쳐선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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