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광주비엔날레 작가들은 왜 뿔이 난 걸까?

새 날 2014. 8. 12.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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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수로 20년이자 횟수로는 벌써 열번 째를 맞이하는 2014 광주비엔날레가 파행으로 치닫고 있다.  어찌된 일일까?  이는 광주비엔날레재단 측이 홍성담 작가의 작품 '세월오월'에 대한 수정과 뒤이어 전시 유보 결정을 내리자 동료 작가들이 이러한 사태에 대해 항의 차원으로 자신들의 작품을 철거하면서 비롯됐다.

 

앞서 특별전 책임큐레이터인 윤범모 가천대 교수가 지난 10일 전시 파행에 따른 도덕적 책임을 간과할 수 없다며 사퇴한 바 있다.  그는 "'세월오월'의 전시 유보 결정은 자신의 불참 속에서 강행된 결정이며, 예술가의 표현에 대한 자유를 보장하는 일과 광주정신은 별개가 아니다" 라는 말을 남겼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작품 철거와 함께 비엔날레 행사를 파행에 이르게 하고 있는 걸까?  이번 특별전에 참가하기로 했던 이윤엽 작가는 "홍성담 화백의 작품이 검열을 통과하지 못한 것이라면, 반대로 다른 작가들의 작품은 검열을 통과하기라도 한 것인가?"라고 반문하며 자신의 작품을 스스로 해체하고 나섰다. 

 

ⓒ뉴시스

 

그랬다.  비록 직접 눈에 보이진 않지만, 이번 홍 화백 사태가 정치적 잣대에 의해 예술적 표현이 제한받거나 행정에 의해 과도할 정도로 간섭을 받는, 숨막힐 듯한 분위기 속에서 연출된 교묘한 사전검열이었다면 작가들이 느끼는 자괴감은 우리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크게 다가왔을 테다.  

 

홍성담 화백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작품이 외압에 의해 수정되고, 그 이후에도 전시마저 유보되는 과정에서 공안당국이 개입했으리란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해당 과에서 상황파악을 위해 공안당국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광주광역시의 한 고위 관계자의 말을 빌리자면, 그와 같은 의혹에 더욱 힘이 실리는 모양새다. 

 

이번 비엔날레의 특별전에 함께 참여하기로 했던 작가들의 입장에서 볼 때 홍성담 화백의 작품이 사전검열이란 무지의 장치에 의해 수정돼야 했고, 또 전시마저도 유보되는 몰상식한 상황을 지켜 보는 일 자체가 여간 고통스럽지 않았을 테디.  이윤엽 작가의 앞서 언급처럼 자신들만 사전검열을 통과했다는 사실은 결코 기쁨이 아닌, 검열의 칼날이 언제든 자신들의 예술혼마저 난도질할 수 있을 것이란 공포감으로 엄습해 왔기 때문일 테다.



세월호에 갇힌 채 숨져간 아이들이 '가만히 있으라'는 기성세대의 지시에 의해 안타까이 희생됐듯 그들 역시 홍 화백 사태의 본보기를 통해 사전검열의 만행에 대해 그저 가만히 있으라고만 한다.  암묵적인 이러한 조치에 작가들은 세월호의 아이들처럼 차마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검열의 칼날을 휘둘렀던 이들은 홍 화백의 작품을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이라며 예술의 향연인 광주비엔날레 행사에 애초 발을 못 붙이게 하고 있다.  편협한 정치적 잣대가 예술가들의 사상마저 조율하려는, 21세기의 시대정신과는 전혀 어울릴 법하지 않은 해프닝을 연출해내고 있는 것이다.

 

작품에 대한 평가는 공안이나 행정당국에서 이뤄져야 하는 게 아닌, 오로지 시민들의 몫으로 남겨둬야 한다는 한 시민단체의 주장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이번 광주비엔날레의 파행 사태는 우리 사회가 과거로 퇴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류의 잣대와 검열이 비단 이들 작가들만의 문제일까?  아닐 테다.  예술가의 표현에 대한 자유마저 제한하며 옭아맬 정도의 유연성이라면 우리가 숨쉬며 생활하는 일상과 그 공간 또한 마찬가지로 언제든 비슷한 류의 편협한 잣대와 검열이 들이대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즉 이 문제는 너만의 문제가 아닌, 너와 나 그리고 우리 모두의 문제다.  그래서 이번 사태가 우리에게 더욱 심각하게 다가온다는 얘기다.

 

결국 광주비엔날레재단 역시 홍성담 화백의 '세월오월' 작품 속에서의 주어 없는 누군가처럼 그저 허수아비에 불과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20세기의 망령이 21세기를 살아가는 현재에 되살아나 헌법 제22조에서 보장하는 작가들의 예술적 표현에 대한 자유를 옭아매고, 몰상식한 기운을 우리 사회에 잔뜩 불어넣으려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들은 '가만히 있으라'고 하는 이러한 비극적인 사태 앞에서 이들 작가들이 어찌 뿔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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