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박정희의 그림자.. 우상인가 망령인가?

새 날 2014. 8. 10.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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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1

 

지난 2011년 10월 어느날, 시사인 주진우 기자가 '박정희의 맨얼굴'이라는 책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일이 있었다.  그는 이날 아래와 같은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일보

 

대학생이나 자기 딸뻘 되는 여자를 데려다가 저녁에 이렇게 성상납 받으면서 총 맞아 죽은 독재자는 세상 그 어디에도 없다.  육영재단, 영남대, 정수장학회 등 박정희가 남겨놓은 재산이 너무 많아 10조 원은 족히 넘고도 남는다.

 

그해 11월 주 기자는 박정희의 아들 박지만 씨로부터 해당 발언으로 인해 고소를 당한다.  지난 8일 서울고법에서는 해당 건에 대한 2심 선고가 있었다.  이날 재판부는 1심과는 달리 무죄를 선고했다.  500만원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원심을 깨고 200만원을 배상하라는 일부 승소 판결을 내린 것이다. 

 

재판부는 주 기자의 발언에 대해 사실로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진실 규명의 과정 중 하나로 판단할 수 있기에 위법성을 인정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장면 #2

 

ⓒ뉴시스

 

허수아비로 표현된 박근혜 대통령을 박정희와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뒤에서 조종하고 있는 미술작가 홍성담 씨의 작품 '세월오월'이 거센 논란에 휩싸이자 홍 작가는 결국 수정을 택했다.  이 과정에서 홍성담 씨는 광주시로부터 수정 압력을 받았노라며 수정 작업을 하나의 항의성 퍼포먼스 형태로 승화시킨 바 있다.

 

ⓒ노컷뉴스

 

그렇다면 어떻게 수정된 것일까?  박 대통령의 얼굴엔 닭 머리 그림이 덧붙여졌고, 박정희의 계급장은 꽃그림으로 가려졌다.  하지만 광주비엔날레재단은 지난 8일 문제 부분을 탈부착이 가능한 형태로 수정한 것은 진정한 의미의 수정이 아니며, 직접적으로 현실을 비판하는 성격이 강해 특별전에서 기대하는 목적과 다를 수 있기에 해당 작품의 전시가 불가능하다며, 결국 수정된 작품마저 전시 유보라는 결정을 내리고 만다.

 

 

요 며칠새 우리 사회 일각에서 벌어진 일들이다.  가장 최근에 일어난 사건들만 언급했다.  이들에겐 공통분모가 존재한다.  바로 박정희라는 인물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란 따위다.  물론 20세기의 유물에 불과한 박정희가 다시 살아나고 있는 배경엔 당연히 그의 딸 박근혜 대통령의 영향이 큰 비중을 차지할 수밖에 없다.  그녀가 아니라면 굳이 지금 이 시기 박정희가 새삼 떠오를 이유 따위 전혀 없다.



여기선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언급은 논외로 하자.  위의 사건에서 보듯 우리 사회가 여전히 박정희의 굴레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채 이곳 저곳에서 기이한 현상들이 벌어지고 있고, 또 아직도 박정희란 인물이 우리의 관념 속에 살아남아 곳곳을 헤집는 듯한 묘한 느낌 때문에 그 부분만을 짧게 언급해 보고 싶기 때문이다. 

 

대중들은 박근혜 대통령을 박정희의 아바타 쯤으로 인식하고 있는 모양새다.  박정희 향수가 더해지며 이러한 현상은 18대 대선 당시 정점을 찍고, 그녀가 무난히 당선되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한다.  물론 그 이후에도 박정희를 둘러싼 온갖 해프닝은 여전하다.  그녀가 대통령직을 유지하고 있는 이상 박정희는 우리 주변을 언제나 배회하며 죽었으되 절대 죽지 않은, 그러한 형태의 인물로 영원히 남아있는 셈이다. 

 

ⓒ이데일리

 

그림이 거북하다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수정 압박을 가해 박 대통령을 닭으로 둔갑시키고, 또 박정희의 계급장을 꽃모양으로 감춘다고 하여 실체 내지 진실마저 과연 덮을 수 있을까?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다. 

 

결국 주진우 기자의 발언에 대한 재판 건이나 홍성담 씨의 그림 사건이 빚어지게 된 배경엔 우상인지 망령인지 도무지 그 실체를 알 수 없는, 박정희라는 인물이 떡하니 버틴 채 '세월오월' 그림에서 보듯 우리 사회를 교묘히 조종하는 몰상식함이 담겨있다.

 

박정희 그가 사망한 지도 어느덧 35년이란 세월이 지났고, 21세기에 발을 들여놓은 지도 벌써 십수년이 흘렀건만, 그는 여전히 일부 살아남은 자들에 의해 우상의 형태로 남아 사회 곳곳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우리 사회를 짓누르며 배회하고 있는 박정희, 그는 진정한 우상일까 아니면 관 속에 가둬놓아야 할 망령에 불과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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