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자사고 교장들은 왜 집단반발에 나선 걸까?

새 날 2014. 7. 23.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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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교육청의 자사고 폐지 방침에 맞서 서울지역 25곳의 자사고 교장들로 구성된 자사고 교장 연합회가 공동대응에 나섰다.  이들은 지난 21일 서울 프레지던트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교육청의 일반고 전환 자사고 지원 방안을 수용할 수 없으며, 현재 진행 중인 공교육 영향 평가도 당장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아울러 지정 취소되는 자사고가 등장할 경우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는 엄포도 잊지 않았다.

 

ⓒ연합뉴스

 

그렇다면 이들의 집단 행동을 가능케 한 동인은 과연 무얼까?  여기엔 다목적의 포석이 깔려있다.  우선 6.4 지방선거를 통해 새로 선출된 교육감의 정치적 색깔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테다.  이전 문용린 교육감의 경우 기회가 닿을 때마다 자사고 폐지는 절대 없노라고 누누이 강조해 왔던 터라 자사고들의 입지가 탄탄했지만, 조희연 신임 교육감의 경우 선거운동 당시부터 자사고의 폐지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혀왔기 때문에 이들이 위기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조희연 교육감을 향한 견제와 길들이기의 의도가 담겨있는 것으로도 보인다.  신임 교육감을 향한 선전포고를 통해 자신들이 호락호락 당하지만은 않을 것이란 이미지를 강하게 각인시켜 일종의 임기 초반부터 기선을 제압하겠노란 신호를 보낸 셈이다. 

 

하지만 보다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교육부의 핵심 기준을 중심으로 올해 재지정 대상 전국 자사고 25곳을 분석했다.  그랬더니 기준에 미치지 못한 곳이 무려 17곳(68%)에 이르렀고, 이를 올해 서울 지역 재지정 대상 학교로 한정지을 경우 총 14곳 중 9곳(64%)이 기준에 미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즉 올해 평가 대상인 서울지역 자사고 중 다수의 학교들이 교육부 기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가 이미 인지하고 있던 찰나 교육청이 평가지표 표준안을 바탕으로 평가를 진행, 이를 발표하게 될 경우 자사고 폐지 절차의 수순 밟기에 들어갈 것은 너무도 뻔한 노릇, 이를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던 듯싶다.  이에는 과거 집단행동을 통해 달콤한 승리를 쟁취했던 학습효과도 한 몫 단단히 한다.

 

서남수 전 교육부장관은 일반고 슬럼화의 주범으로 일찌감치 자사고를 지목한 바 있고, 이를 무력화시키고 일반고의 역량을 높이기 위해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방안' 시안을 지난해 8월 발표했다.  그러나 시안이 발표되자마자 자사고 교장들이 집단 반발하고 나섰으며 학부모들의 원성과 비난 또한 쇄도했다.  조직적인 움직임이었다.  자사고 학부모들의 반대운동은 교육부 주최의 공청회마저 무력화시키는 등 극단적인 형태로까지 발전해갔다.  결국 교육부가 이에 굴복한다. 

 

ⓒ연합뉴스

 

시안을 발표한 지 불과 두 달만인 10월, 확정 발표된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방안'엔 자사고의 무력화도, 일반고 살리기도 모두 없었다.  자사고의 선발권을 폐지하겠다던 애초 계획은 오히려 선발권을 강화시키는 꼴이 돼버렸다.  결국 교육부는 일반고 살리기가 아닌 자사고 살리기 정책을 내놓고 만 셈이다.

 

지난해 자칫 학생 선발권을 빼앗기며 무력화될 뻔 했던 자사고를 조직적인 집단행동을 통해 오히려 자신들에게 유리한 결과로 이끌었던 달콤한(?) 경험을 되살려 이번에도 비슷한 결과를 기대하며 집단 행동에 옮긴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들의 입장을 전혀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이명박 정권이 내세웠던 '고교다양화정책'이란 실험에 누구보다 앞장서서 참여한 죄밖에 없다고 여길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 역시 오락가락 갈짓자 행보를 보여 온 우리 교육정책의 희생양에 불과할 뿐이다.  

 

하지만 무엇이든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한 법이다.  자사고는 학교에 자율성을 부여해 다양하고 특색있는 교육과정을 운영하라는 취지로 만들라고 했건만, 오히려 대부분의 학교들이 입시 위주의 획일성 교육을 강화시키며 그동안 전문 입시학원 형태로 탈바꿈해 온 경향이 짙다. 

 

'자율'을 부여해 주었더니 이를 지나칠 정도로 악용하여 방종으로 진화한 것이다.  이러한 결과에 대해 자사고는 할 말이 없다.  결국 자사고는 운영 수년 만에 고교 서열화, 일반고 슬럼화, 교육차별 심화, 사교육 부담 가중 등을 유발해 온 장본인으로 지목되었거늘, 자신들의 방만한 운영 결과는 나몰라라한 채 억울하다며 집단 행동에 나선 셈이니, 이들에게 공교육 몰락에 원죄는 없다손쳐도 운영의 묘를 살리지 못해 벌어진 작금의 상황에 대해 전혀 죄가 없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한편 21일 경기도교육청이 전국에서 처음으로 자사고인 안산동산고를 재지정하지 않겠다고 교육부에 통보했다.  재지정 기준점으로 정한 점수에 미달했기 때문인데, 물론 자사고의 최종 지정 취소 결정은 교육청과의 협의를 통해 이뤄지게 돼있어 이를 놓고도 현재 교육청과 교육부 간 갈등이 첨예하게 빚어지고 있다.  곧 입시 시즌이다.  교육 주체들의 혼란을 막기 위해서라도 빠른 시간 내 이에 대한 교통정리가 이뤄져야 할 듯싶다.  

 

어쨌든 자사고가 실패한 정책이란 건 논란의 여지가 없다.  때문에 이들의 방종에 대해 반드시 철퇴가 필요하긴 한데, 문제는 무 자르듯 단 번에 해결할 수 없다는 데에 있다.  비단 자사고의 집단적인 반발 때문만은 아니다.  현재 자사고에 몸담고 있는 수많은 교육 주체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들에 대한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이 함께 모색돼야 하는 이유이다. 

 

ⓒ한국일보

 

아울러 전국에서 가장 많은 자사고를 휘하에 거느리고 있는 조희연 교육감은 자사고 교장들의 조직적인 집단 반발이나 학부모 등의 실력 행사 그리고 법적 조치라는 협박성 발언과 집단 행동에 굴하지 말 것이며, 애초 교육감 후보로 나설 당시의 초심을 유지한 채 꿋꿋하게 원하는 정책 펼쳐주기 바란다.  일반고의 정상화만이 공교육을 살리는 첩경이란 사실, 이는 누가 뭐라 해도 진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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