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자사고 약진 일반고 몰락' 실패한 고교다양화정책

새 날 2014. 6. 27.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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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교육부와 한국대학교교육협의회가 발표한 4년제 일반대학의 고교별 신입생 비율 분석 결과가 발표됐다.  한 마디로 '자사고의 약진과 일반고의 몰락'이란 표현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이명박 정권 시절 고교 다양화 정책이라는 미명하에 고교 서열화의 밑그림을 그려놓은 지 불과 수년만에 거의 완성된 수준의 그림이 등장한 셈이다.

 

이는 진작부터 예견된 시나리오로서 일반고가 몰락하는 모습 속에 공교육의 위기 상황이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그동안 교육부와 교육청 역시 고교 다양화 정책의 폐단을 간파, 자체적으로 각종 대책들을 연이어 내놓은 바 있지만, 대부분이 땜질처방 내지 졸속에 가까워 일반고 살리기에 전혀 약발이 먹혀들지 않은 채 오히려 고고 유형별 서열과 등급을 더욱 가속화시키는 모양새다. 

 

그렇다면 이날 발표된 분석 결과를 먼저 살펴보자.  올해 3월에 입학한 대학 신입생 가운데 일반고 출신 비율이 78%를 차지, 지난해에 비해 1.4%포인트가량 떨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언뜻 일반고 출신 비율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것 같고, 더군다나 줄어든 수치도 상당히 미미해 보인다. 

 

ⓒ한국일보

 

그러나 그 대상을 서울 14개 대학으로 좁혀 놓을 경우 사정은 달라진다.  일반고의 약세가 더욱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평균이 63%로 크게 떨어지며 이마저도 소위 인기 대학으로 대상을 더욱 좁히면 수치는 급전직하의 상황에 놓이게 된다.  서울대 46.7%, 성균관대 49.5%, 연세대 49.9%, 서강대 52.7%, 한양대 54.3%, 이화여대 55.7%, 고려대 58.2% 등이다. 

 

ⓒ매일경제

 

그중 서울대의 경우 지난해에 비해 6.0%, 경희대 5.6%, 한양대 2.8%포인트나 일반고 출신 비율이 줄어들며 다른 학교에 비해 유독 낙폭이 컸음을 확인할 수 있다.  반면 자사고와 자율형공립고 모두를 합친 자율고의 입학생 비중은 갈수록 증가해 서울대가 20.3%, 서강대 18.2%, 연세대 16.0%, 성균관대 15.7%, 고려대 15.7%에 이른다.

 

하지만 이렇듯 그냥 절대적인 수치로만 바라볼 땐 일반고와 자율고 상호 간의 격차가 얼마나 크게 벌어져 있는지 확인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때문에 또 다른 자료를 참고하여 상대적인 수치로 비교해 보도록 하자.  다음은 지난해 기준 고교 유형별 학생수를 나타낸다.

 

ⓒ머니투데이

 

전체 유형별 고교 중 일반고생이 차지하는 비중은 71.5%에 해당하며, 자사고는 물론 자율형공립고까지 포함한 자율고의 경우 7.9%다.  일반고생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서울대를 예로 들어볼까?  앞에서도 살펴 봤듯 서울대의 올해 전체 신입생 중 일반고 출신이 46.7%, 자율고 출신은 20.3%에 해당한다.  

 

자율고생의 합격 비율이 일반고생의 그것에 비해 무려 4배 가량 높은 셈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만약 같은 수의 자율고생과 일반고생 기준일 때 일반고생이 1명 합격할 경우 자율고생은 4명씩 합격한다는 의미가 된다.  이제 어느 정도의 차이인지 감이 좀 잡히는가?

 

 

입시 결과에 있어 자사고가 일반고에 비해 실제로 훨씬 유리하게 나타나자 학부모들의 자사고에 거는 기대 심리 역시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교육업체 시매쓰가 최근 초등학생 자녀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자녀가 어떤 고등학교로 진학하기를 원하는가'란 설문조사를 실시한 바 있는데, 그 결과 자사고가 26%로 1위를 차지했으며, 다음으로 일반고, 과고, 외고 등의 순이었다.  최근 자사고가 일반고 슬럼화의 주범으로 지목되며 이의 폐지 논란이 불거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이와 같은 결과가 나왔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 크다.

 

자사고의 인기 비결은 아마도 입시 과정이 특목고에 비해 훨씬 수월한 반면(별도의 시험을 치르지 않으며 추첨과 면접에 의해서만 선발), 입시 결과는 특목고 못지 않게 뛰어난 성과를 보이기 때문일 테다.  결국 입시 결과에 따른 학부모들의 바램마저 이와 맞물리며 유형별 고교 서열화가 더욱 굳어져가는 형국이다.  이로써 고교 다양화 정책은 어느덧 유형별 줄세우기란 거대한 밑그림의 완성단계에 와 있다.  예측했던 대로 자사고가 그의 대단원에 화룡점정을 찍는 모양새다.


 

애초 자사고를 마련했던 취지는 학교 운영의 자율성 보장을 통해 교육 주체들에게 다양한 학교 선택을 가능케 하고, 학교 간의 특색 있는 교육 프로그램 경쟁을 통해 공교육의 질을 높이자는 데에 있다.  그러나 이러한 취지는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진 지 오래다.  자사고는 그들에게 보장된 자율권을 대부분 입시에만 쏟아부으며 고급 입시 학원과 같은 모양새로 전락, 애초 설립 취지를 무색케 해온 측면이 강하다.  자율권을 지나치게 오남용한 결과다.

 

다양화라기보다는 선택된 기득권 아이들만을 위한 엘리트 교육 기관으로 전락한 채 입시 경쟁이란 불구덩이 속으로 더욱 거세게 몰아붙여 공교육 기반을 크게 흔들며 설립 취지와는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치닫고 있는 자사고, 이렇듯 각종 폐해를 양산하고 있는 상황에서조차 공교육를 살려내야 할 책임이 있는 교육 당국이 이를 그대로 방치하고 있는 건 일종의 직무유기로 봐야 하지 않을까? 

 

다행히 6.4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자사고가 가장 집중돼 있는 서울 지역을 비롯 다수 지역에서 진보 교육감들이 대거 선택을 받음으로써 일반고와 공교육에 대한 정상화 정책이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공교육 붕괴에 위기감을 느낀 교육 주체들의 한 표 행사 덕분이다.  물론 그의 핵심 중 하나는 자사고의 존폐 여부가 될 가능성이 높다.

 

때마침 올해 시행되는 자사고 성과 평가 결과는 교육부가 교육청과 협의 하에 자사고 지정 취소 여부를 결정할 중요한 단초가 될 전망이다.  설립 취지와는 달리 지나친 입시 위주의 교육으로 내달리며 사교육을 더욱 부추기고 공교육을 무력화시켜 고교 서열화의 대단원을 마무리지어온 자사고에 대해 교육 당국은 어떤 식으로든 메스를 가해 비정상적인 공교육을 올바른 형태로 바로잡아야 할 테다.  때문에 이번 신임 교육감들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며 기대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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