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학교폭력문제의 해결 주체는 교육당국이 돼야 한다

새 날 2014. 6. 29.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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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이들의 얘기를 듣고 있다 보면 깜짝 깜짝 놀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친구들끼리의 사소한 다툼인 듯해 보이는 문제조차도 학교폭력이랍시고 경찰에 신고하겠노라 으름장을 놓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실제로 신고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인 모양이다.  살풍경이 따로 없다.  어쩌다가 아이들 문제에 경찰까지 개입해야 하는 삭막한 세상이 오게 된 것인지 그저 통탄스러울 따름이다. 

 

학교폭력문제가 이슈화되고 심지어 이 때문에 피해자가 목숨마저 잃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자 사회 전체의 이성이 마비된 채 집단 트라우마에라도 빠져든 듯싶다.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 학교폭력문제를 뿌리 뽑겠다며 각종 캠페인이며 오만 가지 대책들을 연일 내놓고 있는 상황이다. 

 

부랴부랴 경찰서에 117 학교폭력신고센터가 개설되었고, 학교엔 학교전담경찰관이 투입되어 연신 아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의 눈초리로 희번덕거린 채 바라보고 있다.  물론 사람의 눈길이 닿지 않는 요소요소엔 이미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어 24시간 작동 중이다.  아무리 학폭문제가 심각하다 해도 이 정도면 우리 아이들의 숨이 턱턱 막히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이로부터 얻어지는 효과는 일견 대단해 보인다.  117 학교폭력신고센터가 개설된 지 불과 2년만에 신고 건수가 눈에 띨 정도로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경찰청이 밝힌 바에 따르면 지난해 117센터에 접수된 일 평균 학교폭력 신고 건수가 238건으로 2012년에 비해 22%나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긴 학교폭력이 4대악의 범주에 포함되어 이를 뿌리 뽑겠다며 모든 행정력이 총 동원되다시피 했으니, 이런 결과는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줄어들지 않았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학교폭력문제를 다룬 영화 '우아한 거짓말' 포스터

 

하지만 학교폭력문제를 지금처럼 초동시점부터 경찰이 직접 개입하여 이를 해결하는 방식이 과연 맞는 것인지는 늘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이로 인한 폐단은 없는 걸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28일 노컷뉴스가 보도했던 서울 모 사립초등학교에서의 학교폭력문제 사례를 한 번 살펴보도록 하자.  이는 유사 자폐증을 앓던 아이가 해당 학교에 다니며 동급생과 상급생 등에게 세 차례에 걸쳐 심한 학교폭력을 당하며 벌어진 사건이다. 

 

폭력의 양상은 상당히 끔찍했다.  한 번은 양쪽 눈의 위아래 속눈썹이 잘려 나갔으며, 또 다른 날엔 흉기로 허벅지를 13차례나 찔린 적도 있었단다.  이쯤되면 가만히 있을 부모가 어딨겠는가.  격분한 학부모가 이의 해결을 위해 학교 측에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의 개최를 요구하였으나 학교 측은 "교육청에 자문을 구한 결과 이런 경우 학폭위는 열 수 없고 즉시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며 이를 거부했단다.

 

결국 해당 건은 피해 아동 측이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 측과 학교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며 소송전으로 비화됐다.  난 다른 무엇보다 교내의 학폭문제를 학교 당국이 끌어안으려 하지 않은 채 경찰에 신고하라고 한 대목으로부터 이 사건의 심각성을 엿볼 수가 있었다. 



학교 측은 최선을 다했노라고 항변하고 있지만, 기사 내용만으로 유추해 볼 땐 학교 측이 잘한 구석이라곤 눈꼽만큼도 없어 보인다.  학폭위는 신고가 접수되는대로 바로 열렸어야 했으며, 해당 건을 경찰에 떠넘기기 전에 학교 안에서 먼저 문제의 원인을 찾고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어야 함이 옳다.  일종의 책임 방기이자 회피이다.  결국 이 문제는 법정에서 시시비비가 가려지게 될 전망이다. 

 

그런데 왜 학교는 자신들이 해결해야 할 학내 문제마저도 경찰에 책임을 떠넘기기 일쑤일까?  물론 예산 문제로 인해 학교폭력 전담교사가 모든 학교마다 배치되지 않았을 수도 있겠고, 여건상 교내에서 해결하기가 곤란한 경우도 있을 수 있겠다.  어쨌든 학교 측이 안일한 자세로 임한 대목은 비난받아 마땅한 노릇이지만, 학교 당국이 이렇게까지 미온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배경엔 어쩌면 경찰의 직접적인 개입과 같은 정부의 성과주의식 문제 접근 방식이 수면 아래에 숨겨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경찰의 보호막 속 학교 울타리와 아이들은 언뜻 안전해 보이는 것 같지만, 교내외에서 벌어지는 사안은 무엇보다 교육 당국에서 해결하는 방식이 우선 순위가 되어야 한다.  공권력의 개입은 행정력의 낭비를 초래함과 동시에 학교폭력문제의 해결을 위한 근본 대책이 결코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경찰의 위압감 때문에 겉으로 드러나는 학교폭력의 숫자는 크게 줄어든 듯 보이지만, 실은 보다 교묘한 방식의 폭력으로 진화해가고 있는 중이다.

 

 

교육부가 발표한 '2013년 2차 학교폭력 실태조사'에서도 이와 같은 양상은 고스란히 드러난다.   학교폭력 유형이 변화해가고 있다.  겉으로 쉽게 드러나는 금품갈취나 강제심부름과 같은 유형은 감소하는 반면, 언어폭력과 사이버 괴롭힘과 같은 교묘한 방식의 유형이 상대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일종의 풍선효과다.  물리적인 폭력 형태의 자리를 은밀한 그것이 대신 채워가고 있는 셈이다.

 

공권력이 아이들의 다툼에까지 개입하다 보니 동네꼬마 녀석들의 골목대장을 놓고 벌이는 아이들 간 다툼이나 친구 사이의 사소한 언쟁조차도 신고되는 웃지 못할 상황마저 연출되기도 한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에 대해 공권력을 교내로 끌어들이는 건 행정력과 공권력의 낭비이자 과잉이다.  정작 학교 당국이 해결해야 할 문제에 대해 안일해져가고 미온적으로 대처하려는 데엔 바로 이러한 배경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일 테다. 

 

다시 처음 얘기로 돌아가 보자.  자신을 자꾸 놀린다며, 계속 그러면 학교폭력신고센터에 신고하겠다는 요즘 아이들의 협박 아닌 협박이 내겐 영 익숙치가 않다.  하긴 집단따돌림과 같은 행동들이 사소한 놀림에서부터 시작될 수도 있는 일이니 어쩌면 전혀 납득이 어려운 문제만은 아닌 듯도 싶다. 

 

학교폭력문제가 심각하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긴 하지만, 경찰을 교내에까지 끌어들임으로써 아울러 아이들에 대한 감시의 시선을 놓지 않는 이상 학교폭력과 크게 연이 닿지 않는 아이들에게조차 학교 생활과 교우관계에까지 영향이 미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경찰의 개입보다 학교폭력문제 해결의 주체는 학교 당국이 되어야 한다.  학교 당국의 근본적인 변화 없이 공권력에 의존한 채 학교폭력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득보다 실이 많을 수밖에 없으며 학폭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은 더욱 요원해져갈 테다.  아이들의 우정마저도 자칫 공권력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세상이 곧 도래하지 않을까 싶어 심히 우려스럽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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