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도끼상소 퍼포먼스 유감

새 날 2014. 7. 2.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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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일 기초연금제도가 시행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 당시 만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기초연금 20만원을 지급하겠노라고 공약한 바 있다.  그러나 정작 대통령이 된 뒤엔 자신의 공약을 전격 후퇴시키며, 소득 하위 70% 노인에게 국민연금과 연계하여 차등 지급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다.  기초생활보장제의 생계급여를 받는 약 40만 명의 노인들에겐 기초연금제도가 시행되더라도 혜택이 전혀 돌아가지 않아 그저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중복 지급 금지 규정 탓이다.  기초연금을 받으면 그 액수만큼 기초생활보장제의 생계급여 액수를 삭감해 지급받게 되는 얄궂은 규정이 이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더욱 키워가고 있다. 

 

ⓒ경향신문

 

기초연금 혜택 수여 대상에서 배제된 빈곤노인들이 이에 항의하고 나섰다.  노비 옷을 입고 '도끼상소 퍼포먼스'를 펼쳐보인 것이다.  지난 1일 빈곤 노인 기초연금 보장연대 관계자들이 서울 종로구 청운 효자동 주민센터 앞에 모여 기초생활보장 수급 노인들에 대한 기초연금 혜택 수여를 촉구하고 나섰다.

 

힘든 삶 때문에 어깨가 축 늘어진 이들을 기어코 거리로 내몬 정부의 엉성한 정책이 야속하기만 하다.  그런데 난 이들의 하소연에 대해 백번 이해하고 찬성하는 입장이지만, 이날의 퍼포먼스 형식은 솔직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많고 많은 형태 중 왜 하필이면 노비 복장과 왕에 대한 상소를 택한 걸까.  

 

이를 보고 있자니 뜬금없이 "조선 건국 이래로 600년 동안 우리는..."으로 시작되는 노무현 대통령의 2002년 대통령 후보 수락 연설이 떠오르며 가뜩이나 갑갑한 마음이 더욱 무겁게 가라앉고 말았다.  희한하게도 해당 퍼포먼스는 박근혜 정권이 국민에게 온갖 스트레스를 안기며 한껏 답답하게 만들었던 가슴을 더욱 짓누르게 하는 일등공신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대통령은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들이 잘못됐다고 한다.  청와대의 인사 참사를 제도 탓이라며 이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6.4 지방선거를 통해 진보 교육감이 대거 당선되자 교육감 직선제를 없애야 한다고 한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서는 남탓으로 돌리기 신공을 선보이더니 초동 대처에 실패한 해경을 아예 해체하겠노라는 깜짝 필살기마저 보여주었다.  자신만 빼고 이 세상 모두는 잘못됐으며, 스스로의 기준에서 볼 때 그릇된 결과는 오롯이 남과 제도 탓에 불과할 뿐이다.

 

가뜩이나 불통과 독선에 사로잡힌 채 오로지 자신을 중심으로 한 독특한 세계관을 지닌 분이 바로 현재의 대통령일진대, 비록 퍼포먼스에 불과하다지만 국민이 노예라도 되는 양 노비 옷을 입고 펼친 '도끼상소 퍼포먼스'는 자칫 그분에게 그릇된 신호를 보내줄 개연성마저 엿보인다.  대한민국의 여왕님이 되어 오만한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상황에서 외려 더더욱 날개를 달아주는 꼴이 아닐까 싶다.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이는 현재의 대통령이라면 결코 불가능한 시나리오가 아닐 테다.  아울러 이러한 모양새를 보고 있자니 그 자체만으로도 내겐 스트레스다.

 

대한민국의 주인은 국민이며, 권력 또한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런 사실을 잊고 있거나 알면서도 아예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현 집권세력에게 더욱 강하게 각인시키기 위해서라도 이왕지사 국민이 마치 노예인 양 스스로 대통령 앞에서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리는 퍼포먼스보다 세상의 주인은 우리라는 것을 떳떳하면서도 멋진 모습의 그것으로 연출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울러 정부는 빈곤 노인들의 상대적 박탈감 해소를 위해 적극 발벗고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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