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자사고 지정 취소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까닭

새 날 2014. 3. 25.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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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고의 탄생은 이전 정권이었던 이명박 정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통령이 내세웠던 이른바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는 학생과 학부모 등 교육 주체의 요구에 걸맞는, 특성화 및 다양화된 교육 서비스를 목표로 전국에 걸쳐 모두 100개의 자사고를 만들겠노라는 야심찬 포부였다. 

 

하지만 불과 시행 수 년만에 자사고는 일반고 슬럼화의 주범이 된 채 용도 폐기의 처지에 내몰리게 됐다.  이러한 연유를, 정권이 바뀔 때마다 매번 반복적으로 겪는, 우리만의 고질병인 '정책 뒤집기'의 폐해라는 측면도 무시할 순 없겠지만, 그렇다고 하여 단순히 그 이유만으로 자사고의 퇴출을 논해야 할 만큼 문제가 그리 단순치는 않다. 

 

실제로 서남수 교육부 장관은 평소 이명박 정부의 고교 다양화 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해 왔고, 이 정책이 본질적으로 수직적 다양화와 서열화라는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기에 무차별적인 시장주의를 교육에 도입하여 경쟁과 입시를 심화시켜선 안 된다고 주장해왔다.  아울러 그는 최근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 일반고 슬럼화의 주범으로 자사고를 지목한 바 있다.

 

특목고는 전체 고교 중 약 5%의 비중을 차지한다.  때문에 자사고가 탄생하기 이전까지만 해도 지금과 같은 일반고 학력 저하 현상의 두드러짐은 없었다.  도입 취지 그대로 수월성 교육이 필요한 일부 우수 학생들만의 학교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체 고교의 20%를 차지할 만큼 그 문호가 대폭 넓어진 자사고가 등장하면서 판도는 급격히 변했다.  본격적인 고교 서열화가 시작되었고, 그에 따라 우수 학생들의 특목고 자사고 쏠림 현상이 심화돼 상대적으로 일반고 학력 저하 현상이 가속화된 것이다.

 

ⓒ한겨레신문

 

그렇다면 일반고의 수준이 과연 어느 정도의 나락으로까지 떨어졌길래 '일반고 슬럼화'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걸까?  이를 위해 몇 가지 통계를 인용해야 할 것 같다.  지난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교육부의 2012년 '서울 지역 자사고-일반고 신입생 중학교 내신성적'을 분석한 결과, 자사고 신입생 중 중학교 내신이 상위 20%인 학생은 전체의 49.7%에 달한 반면, 일반고의 경우 18.1%로 그 절반에도 못 미쳤다.  그 반대로 하위 50% 학생의 경우 자사고는 5.1%에 불과했지만, 일반고는 50.7%에 달해 중하위권 학생의 일반고 쏠림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고교 유형별 학비 격차 또한 무시 못할 수준이다.  정의당 정진후 의원이 분석한 '고교 유형별 학비현황 정책보고서'에 따르면 2013학년도 고등학생 1인당 연평균 교육비는 외고가 863만 원으로 가장 많았으며, 자사고 777만 원, 예술고 685만 원 순으로 집계됐다.  반면 일반 사립고는 296만 원, 공립고는 277만 원으로, 일부 특목고와 자사고의 학비가 일반고에 비해 평균 2-3배 이상, 최대 8배 가까이 차이가 난 것으로 분석됐다.

 

학비에 자연스레 따라붙는 건 아마도 가구의 소득수준과  부모의 학력 격차일 텐데, 서울교육정보연구원의 서울교육종단연구 자료 분석 결과 학교 유형별 가구 소득의 경우 2011년 기준 일반고는 '400만원 미만' 48.1%, '600만원 이상' 23.2%인 반면, 자사고는 '400만원 미만' 27.2%, '600만원 이상' 44.8%로 집계됐다.  한편 일반고 자녀를 둔 아버지의 4년제 대학 학력 이상 비율은 51.9%, 어머니 34.8%인 반면 자사고의 경우 아버지 72.9%, 어머니 54.4%로 나타났다.

 

결국 부모의 학력과 소득 격차가 학교의 서열화 형태로까지 나타나고 있었으며, 이는 다시 아이들의 학력 격차로 이어지는 악순환과 부작용의 양태로 발현되고 있는 셈이다.



다행히 이번 정부 들어서며 이명박 정부의 핵심 교육정책인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를 사실상 폐기하기로 방침을 정한 듯싶지만, 지난해 일반고 역량강화 방안 정책에서 목도했듯 이해당사자들의 극력 반발이 오히려 자사고의 입지를 더욱 강화시켰던 선례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부가 자사고에 대해 처음으로 운영성과를 평가해 일정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학교는 지정을 취소해 일반고로 전환키로 했단다.  내년 2월 지정기간이 끝나는 자사고 25개교와 자율형 공립고 21개교 등 총 46개교에 해당하며, 이번 평가는 초중등교육법령에 따라 교육감이 자사고와 자공고를 5년마다 평가해 지정 취소 또는 지정 기간을 연장토록 한 규정에 따른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자사고의 폐지 결정을 교육감의 권한으로 넘긴 점과 교육감의 재량으로 지정취소 기준을 설정할 수 있다는 부분에서 과연 이번 평가가 실효를 거두게 될지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현재 대부분의 자사고가 서울에 몰려있는 상황에서 그동안 문용린 서울시교육감은 자사고 폐지 주장에 대해 반대의 입장을 일관되게 밝혀왔기 때문이다.  과연 객관적이며 제대로된 평가가 이뤄져 실제로 자사고 퇴출의 길이 열릴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기 짝이 없다.

 

자사고를 둘러싼 교육 주체들간 얽힌 이해관계를 푸는 과제도 싶지 않다.  자사고 교원들과 학부모들이 자사고 폐기 정책에 맞서 그동안 조직적인 움직임을 보여왔고, 헌법 소원 등의 법적 대응도 만만찮다.  지난해의 일반고 역량 강화 방안 대폭 후퇴의 단초도 바로 이들의 움직임 탓이다.  때문에 만약 실제 지정 취소 학교가 발생하더라도 지난해의 승리를 발판으로 더욱 거센 움직임을 통해 이의 결과를 뒤집으려 할 게 분명하다.

 

아울러 5년 단위의 평가는 너무 긴 감이 있다.  우리의 교육을 백년지대계가 아닌, 오년지소계란 우스갯소리로 표현할 만큼 누더기처럼 자주 바뀌어오던 상황에서 왜 하필 자사고 운영 평가만 5년이란 하염없이 긴 시간이 주어진 걸까.  당장 전교조 역시 이에 대해 논평을 내고 교육부의 발표는 자사고 연장을 위한 편법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폈다.  이는 자칫 5년마다 이들에 대한 형식적인 면죄부의 역할을 하며, 자사고 생명 연장에 단단히 일조할 개연성이 높기 때문이다.  일반고의 슬럼화 문제와 고교 서열화 폐해에 대한 제대로된 제동을 위해서라면 외려 상시적인 자사고 퇴출의 길이 열려 있어야 이치적으로 맞는 게 아닐까?

 

교육부가 이번에 빼든 칼은 과연 제대로된 칼이 맞을까?  지난해처럼 형식적으로 휘두르다 마는 건 아닐까?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방안'을 마련한답시고 자사고의 성적 제한 폐지를 골자로 한 선발 방식에 대대적인 변화를 꾀해 이의 무력화를 시도하다가 기존 자사고 교육 주체들로부터의 거센 항의와 반발에 막혀 오히려 이들에게 면접권을 부여해 자사고의 선발권한을 더욱 강화했고, 때문에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방안이 아닌 자사고 강화 정책이란 호된 질책과 비아냥을 감수해야만 했던 교육부다. 

 

대부분의 자사고들이 애초 설립 취지였던 다양화와는 거리가 크게 멀어져가는 느낌이다.  일반고에 비해 비싼 교육비를 부담해야 하고, 좀 더 입시에 특화된, 일종의 입시 전문기관으로 전락한 가운데, 역으로 고교 서열화를 조장하고 일반고의 슬럼화에 가속페달을 밟게 해준 장본인이 바로 자사고 아닌가 싶다. 

 

때문에 고교 교육의 정상화를 위한 자사고의 폐기 처분, 너무도 당연하다.  다만, 자사고에 현재 몸 담고 있는 교육 주체들에 대한 배려도 필요하겠고, 급격한 변화는 득보다 실이 더 많을 터이기에 점진적인 폐기 절차를 밟아야 마땅할 듯싶다.  하지만 교육부가 발표한 운영 성과 평가에 따르는 퇴출 제도가 과연 그에 부합하는 제도인지의 여부는 여전히 의심스럽기만 하고, 때문에 교육 현장에 혼란을 더욱 부추겨 결국 이로 인한 피해가 교육 주체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되지는 않을까 하여 내심 우려스럽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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