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성인물 보는 초딩? 의심해서 미안하구나

새 날 2014. 2. 23.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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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국무총리 산하 정부출연연구기관인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발표한 통계 자료 하나로 인해 대한민국 사회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초등학생 고학년에 해당하는 4-6학년생들의 다수가 성인사이트에서 성인물을 이용하느라 잠이 부족하다고 답변한 이유 때문입니다.

 

해당기관은 전국의 4-6학년 초등생과 중고교생 9521명을 대상으로 '한국 아동 청소년 인권실태조사 통계 설문조사'를 벌인 바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중학생의 0.8%, 고등학생의 3.4%가 성인물 때문에 잠이 부족하다고 답변한 것으로 나타난 반면, 마냥 응석받이라 생각했던 초등학생의 무려 61.6%가 그와 같은 답변을 한 것입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 걸까요?  상식적으로 볼 때 절대 납득할 수 없는 결과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요새 초등학생들의 성장속도가 과거에 비해 확실히 눈에 띨 정도로 빨라진 사실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밤마다 '야동'을 즐겨 보느라 눈탱이 벌개질 정도는 절대 아니리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단체로 성 조숙증에라도 걸린 걸까요?



아울러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질풍노도의 시기를 한창 지나고 있을 중학생과 고등학생의 비율이 고작 0.8%와 3.4%대에 각각 머물고 있다는 점 역시 초등학생들과 비교해볼 때 상대적으로 너무 적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었습니다.

 

미디어 매체들이 이를 놓칠 리 없습니다.  이러한 결과에 맞춰 함께 부화뇌동하며 졸지에 순진한 초등학생들을 야동 때문에 잠못이루는, 게슴츠레한 눈의 파렴치 초딩으로 둔갑시켜 놓고 있었습니다.

 

 

하기사 미디어 매체들이 무슨 죄가 있겠나요.  보도자료를 기반으로 기사를 작성했을 테고, 가히 충격적이라 할 수 있는 이러한 결과에 대해 사회에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서라도 비중있게 다루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일 테니까요.

 

초등학생들은 신문 기사 등 미디어매체를 잘 활용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을 터이기에 정작 멘붕에 빠졌을 것이라 짐작되는 부류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학부모들입니다.  저러한 결과를 자신들의 무관심 탓으로 돌리며 모두들 자책하기에 바빴을 테고, 한편으로는 충격으로 인해 자녀들을 괜시리 의심하거나 감시하게 되는 의심병에 걸렸을 확률이 높습니다.

 

하지만 다음날인 18일, 해당 기관은 통계 자료가 잘못됐다며 아래와 같은 정정안내 보도자료를 게재했습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결국 전국의 초등학생 학부모들을 화들짝 놀라게 만들었던 통계결과는 잘못된 것으로 일단락지어진 것입니다.  해프닝이었던 셈이지요.  우선은 다행이라 해야 하는 게 분명 맞겠지요? 

 

그러나 전국의 초등학생들을 하루 아침에 야동 보는 꼬꼬마 파렴치로 둔갑시켜 놓은 채, 아울러 자신의 자녀 만큼은 철석 같이 믿어왔을 초등학생의 학부모들로 하여금, 일순간 자식을 향한 의심의 눈초리, 레이저 빔을 마구 쏘아올리게 함과 동시에 천륜지간의 신뢰마저 와르르 무너뜨리는 아픔을 겪게 해놓고 고작 통계 오류에 대한 정정안내 보도자료 한 장으로 이를 때우려는 정부와 해당 기관이 무척 야속하기만 합니다.

 

개인간 단순한 한 마디 말 실수도 사과를 해야 옳은 법이거늘, 더군다나 일개인도 아닌, 정부 산하 기관이 벌여놓은 실수에 대해 나 몰라라 딴청 부리는 건 책임 있는 정부 기관의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국무총리실과 해당 기관은 통계 오류 보도로 인해 실추되었을 초등학생과 학부모의 명예(?) 회복을 위해서라도 단순한 보도자료 배포로 끝낼 것이 아니라 정중한 사과를 해야 함이 마땅하며, 향후 이와 비슷한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당 업무에 만전을 기해야 함이 옳겠습니다. 

 

대한민국의 초딩들아, 한동안 너희들을 의심해서 미안하구나. 사과하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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