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에 날개 달아준 국방부

새 날 2013. 12. 2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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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중인 남수단에 파견된 한빛부대가 일본 자위대로부터 실탄 1만발을 지원받은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 15일께부터 남수단의 현직 대통령과 전직 부통령이 이끄는 종족 간 분쟁이 내전으로 확전되면서 유엔 평화유지군(PKO)의 안전까지 위협받는 지경에 이르게 됐다.  이에 우리 한빛부대는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상황을 감안, 지난 21일 예비탄약 확보를 위해 유엔 남수단임무단(UNMISS) 본부에 탄약지원을 요청, 일본의 육상자위대로부터 실탄 1만발을 지원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에서는 한빛부대의 실탄 지원 요청에 따른 대응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아베 총리와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 기시다 후미오 외무장관, 오노데라 이쓰노리 방위장관이 참여하는 일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4자회의가 23일 오후 긴급 소집됐으며, 현지 사정이 급박하다는 이유로 한빛부대에 대한 실탄 제공을 전격 결정한 바 있다.

 

한편 일본의 NHK방송은 한국 군 부대장으로부터 21일밤 일본 남수단 자위대 대장인 이가와 켄이치에게 직접 전화 연락이 와 "한국 부대 진영에 만오천명의 피난민이 있지만 주위에 적 투성이라 탄약이 부족하니 1만발의 소총탄약을 꼭 빌려달라"는 요청이 있었다는 보도를 24일 내보냈다.  이후 탄약을 지원받게 된 한국군으로부터 "협력에 감사한다. 탄약은 일본 군대와 한국 군대의 강한 유대의 상징"이라는 감사의 전화 또한 잊지 않았단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국방부는 24일 "실탄 지원과 관련한 모든 것은 유엔 남수단임무단에서 한 것이고 일본에 직접 탄약을 요청한 것이 아니다.  유엔에 지원을 요청한 것이고 유엔을 통해 탄약을 지원받은 것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라고 강조하고 나섰으며, 남수단임무단의 주선으로 일본 자위대가 탄약을 제공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일본 NHK 방송이 보도한 한빛부대장이 자위대에 직접 전화를 걸어 탄약을 빌려달라고 요청했다는 사실은 무엇일까?  과연 누구의 주장이 맞는 걸까?

 

그렇다면 일본으로부터 탄약을 빌리는 일이 왜 이토록 문제가 되는 걸까?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무기수출 3원칙을 채택한 이후 무기의 국제공동개발 및 생산, 인도적 목적의 장비 제공 등 일부 예외를 두고 있지만 무기나 실탄을 직접 건네는 것은 엄격하게 규제해 왔다.  무기수출 3원칙이란 공산권 국가, 유엔이 무기 수출을 금지한 국가, 국제분쟁 당사국 또는 그 우려가 있는 국가에는 무기를 수출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아베 총리는 한빛부대에 실탄을 지원해주며 이를 예외로 규정, 무기수출 3원칙을 사실상 백지화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23일 한빛부대에 실탄을 제공한 사안에 대해 "무기수출 3원칙의 예외 사례로 규정한다. 적극적 평화주의에 입각해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정에 공헌한다"는 내용의 담화문을 발표하며 이번 실탄 지원을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의 이론적 배경이랄 수 있는 일본의 새 안보 이념, 적극적 평화주의로까지 연결짓고 있었다.

 

집단적 자위권이란 자국이 직접적인 적의 공격을 받지 않더라도 동맹국이 침략받을 경우 무력으로 개입할 수 있는 국제법적 권리를 말한다.  이에 대해 일본은 1968년 헌법 해석을 통해 "국제법상 집단적 자위권을 보유하지만 현행 헌법 9조에 따라 헌법을 개정하지 않는 한 방위만 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해 왔다.  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일본이 1946년 11월에 공포한 헌법 9조, 이른바 평화헌법, 은 승전국인 미국의 주도로 만들어진 것이다.  일본의 군국주의를 영원히 제거하기 위해 전쟁과 무력사용 및 전투력 보유를 금지한 것이 주요 골자인데, 일본은 최근 평화헌법을 개정, 무력 사용 제한을 없애 집단적 자위권의 용인을 목표로 하는 우경화 노선을 취해 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벌어진 이번 사안은 일본 자위대가 해외에 탄약을 지원한 첫 사례로서 그 빌미를 제공해 준 국가가 공교롭게도 우리라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아울러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추구하면서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논리는 다름 아닌 유엔평화유지군(PKO) 활동 도중 우방이 위험에 처했을 때 도움을 준다는 부분인데, 이마저도 우리나라가 최초의 사례가 된 셈이다.   

 

일본은 우리와 상호군수지원협정이 체결되지 않은 국가로서 이들로부터 탄약을 지원받음으로써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의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는 적극적 평화주의 논리에 대해 결국 우리나라가 적극 도와주는 셈이 돼버렸다.  더욱 황당한 건 일본의 우경화 전략에 힘을 실어주면서 감사하다는 인사까지 빼놓지 않았다는 대목이다.  할 말을 잃게 한다.

 

일본의 우경화 망동을 막지는 못할 망정 되레 부추긴 이번 해프닝, 정부의 커다란 실수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자칫 일본의 본격적인 우경화 행보에 일본의 가장 큰 피해 당사국 중 하나인 우리가 그들의 우경화를 용인해 주며 날개를 달아준 꼴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탄약을 빌려주는 일조차 긴박하게 돌아갔던 일본 정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느슨하게 조치한 듯한 느낌 지울 수 없는 국방부의 태도는 충분히 비판받아 마땅하다.  아울러 일본은 이번 사례를 본격적인 우경화의 도구로 삼는 우를 범하는 일 따위 없어야 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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