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영훈초 영어몰입교육 금지 헌법소원, 누굴 탓해야 하나

새 날 2013. 12. 17.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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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영훈초등학교 학부모들이 지난 12일 교육부의 영어몰입교육 금지 정책에 반발하며 헌법재판소에 헌법 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그에 앞서 지난 10월 서울 사립초등학교 학부모들은 교육당국의 영어몰입교육 금지 정책 방침을 철회해 달라는 탄원서를 교육부에 제출하였으며, 해당 계획을 철회하지 않는다면 행정소송 등 후속 대응에 나설 것임을 예고한 바 있다.  이를 실행에 옮긴 셈이다.

 

사립초 영어교육 정상화 계획

 

지난 9월 교육부는 사립초등학교 영어교육 정상화를 위해 2014학년도 신입생 모집부터 영어 몰입교육을 정규 교육과정에서 제외키로 하였으며, 신입생 모집요강에 영어몰입교육을 광고하지 못하도록 각 시도 교육청에 요청하고, 이를 어기는 학교의 경우 시정명령을 내리기로 한 바 있다. 

 

교육부의 방침에 따라 서울시교육청은 '사립초 영어교육 정상화 계획'을 세우고 국제학급을 만들거나 초등 1,2학년에 대한 영어수업 등 편법 영어교육을 내년부터 못하도록 중단 조치를 내렸다.  아울러 수학, 사회, 과학 등 일반 과목을 영어로 수업하는 몰입교육에 대해서도 3,4학년은 주당 2시간, 5,6학년은 주당 3시간을 초과하지 말 것을 지시했다.  이를 어길 시 특별 장학지도를 시행키로 했다.

 

참고로 현행 초중등교육법에 따르면 초등학교 1,2학년 교육과정에는 영어교육을 아예 편성할 수 없다.  아울러 수학, 사회, 과학 등 일부 과목을 영어로 수업하는 것 또한 3,4학년은 주당 2시간, 5,6학년은 3시간 이내로 편성토록 돼 있다.

 

ⓒ경향신문

 

이와 같은 결과는 서울시교육청이 지난 7월 서울 시내 사립초등학교 40곳을 대상으로 영어교육 실태를 조사한 결과 1,2학년 정규수업에서 영어를 가르치거나 전 과목에서 영어몰입 교육을 하는 등 서울시내 사립 초등학교 10곳 중 9곳이 편법으로 영어교육을 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난 데 따른 후속 조치들인 셈이다.

 

영어몰입교육 금지 정책, 헌법 소원 제기

 

정부의 정책에 따른 반발은 거셌다.  서울 사립초등학교 학부모들이 거리로 나서 시위를 개최하는 등 집단행동마저 불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내세우고 있는 근거는 무얼까?

 

초등학교 1,2학년의 영어교육을 금지하는 것과 영어 이외의 교과목 시간에 영어로 수업하는 것을 영어교과 수업시간으로 하는 것은 헌법에 위배된다.  초등학교 저학년에 대한 외국어 교육이 한국어 학습을 방해한다는 객관적, 과학적 근거가 없다.  영훈초의 교육과정은 지난 17년간 교육부의 승인을 받아 진행됐던 것이다.  미취학 아동을 위한 영어유치원 개설을 허용하는 것이나 국내에 개설된 국제학교에 다니는 한국학생들의 경우를 볼 때에도 평등의 원칙에 위배된다.  인천의 교육국제화특구에는 국비까지 지원하며 영어몰입교육을 허가했다.  '교육국제화특구 특별법'을 만들어 교육법상 교과과정 편성의 예외를 두고 영어몰입교육을 추진하는 것은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사립학교라는 공교육의 틀 내에서 영어몰입교육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사설학원으로 갈 수 밖에 없는데 이는 사교육을 줄여야 한다는 교육부의 취지와 배치되는 것이기도 하다.

 

이들의 주장이 결코 틀린 것만은 아닌 듯싶다.  왜냐면 무려 17년동안 교육당국이 사립초등학교의 편법 영어교육에 대해 특별한 제재 없이 방치해 오다 이제와서 하지 말라 하니 발끈하며 거리로 나설 법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여타의 주장이 옳다손쳐도 교육 특별법에 의해 허용된 영어몰입교육 허가를 놓고 자신들이 균등하게 받을수 있는 권리를 침해당했다는 주장엔 동조할 수가 없다.  



앞서도 살펴봤지만 현행 초중등교육법에 따라 영어교육은 초등 3학년 때부터의 시행이 의무화되어 있다.  만일 영훈초등학교 학부모들이 주장하는 것과 같이 사립초등학교에만 초등 1,2학년의 영어교육을 허가하게 된다면 이들 소수의 학교들을 제외한 대다수의 학교가 3학년 때부터 영어교육을 받고 있는 셈이니, 반대로 이들 대다수의 학교 학생들이 균등하게 교육 받을수 있는 권리를 오히려 침해당하는 꼴이 아닌가.

 

영어몰입교육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사교육의 배만 불리게 된다는 논리 또한 설득력이 떨어진다.  역으로 학교측의 지나치게 앞서가는 영어몰입교육 때문에 이를 쫓기 위해, 혹은 주변의 친구들보다 조금이라도 앞서갈 요량으로, 그동안 사교육에 의존해왔던 측면이 더 강하지 않았을까.

 

 

헌법재판소에 헌법 소원을 제기하던 12일, 서울 사립초등학교 20개교 학부모들이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대규모 집회를 가졌다.  하지만 시위 참가자들 대부분이 모자를 푹 눌러쓰고 얼굴 가득 마스크로 가린 채였다.  이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 걸까.  결국 자신들의 주장이 세상에 자신있게 내놓을 만큼 그들 스스로 떳떳치 못함을 증명해 보이고 있는 셈 아닐까.

 

교육 당국의 오락가락 정책과 교육 이기주의가 낳은 산물

 

설사 이런 식의 교육 이기주의에 기대 교육 받은 아이들이 장차 자라나 아무리 똑똑한 재원으로 성장했다 하더라도 과연 이 나라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이런 결과를 빚은 원인은 우선 교육 당국의 오락가락 행정 탓이 가장 크다.  우리의 교육 정책은 하루가 멀다 하고 이리 고쳐지고 저리 고쳐져 이미 누더기가 되어 버린 건 주지의 사실이다.  아울러 지난 10월 일반고 역량강화방안 정책의 예에서 봤듯 자사고 학부모들이 집단행동에 나서며 자신들의 목소리를 강하게 내비치자 기존 정책을 180도 바꿔 오히려 자사고의 입학 전형에 특혜를 주는, 말도 되지 않는 우를 범했던 정부이기에 '학부모들의 집단행동이면 안 되는 일이 없구나' 란 신호로 받아들여졌을 공산이 매우 크다.  일종의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긴 셈이다. 

 

결국 사법부의 판단에 떠넘겨져버린 사립초의 영어몰입교육은 교육 당국의 허술하며 체계적이지 못한 정책과 일부 학부모들의 교육 이기주의가 빚어낸 한 편의 희극이 돼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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