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사교육 효과 없다'라는 주장이 공허한 이유

새 날 2013. 12. 4.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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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육 보조 수단으로서의 사교육, 사실상 우리 사회에 없어선 안 될 필수재임엔 틀림없지만 자녀에 대한 과도한 사랑과 자녀의 성공을 통해 보상 받으려는 부모의 대리만족 심리 그리고 그로부터 비롯된 지나친 경쟁으로 발현된 교육열 등이 한데 어우러져 이땅에선 양날의 검이 된 지 오래다. 

 

사교육 광풍이 몰고 온 폐해

 

뭐든 지나치면 문제가 되는 법인데, 사교육 시장 또한 이 원칙에서 한 치의 어긋남도 없다.  최근엔 오랜 불경기와 자연적으로 줄어든 학령인구 탓에 그 열기가 많이 수그러들고, 또한 시장 자체의 크기가 쪼그라들어 크게 위축된 측면이 없지 않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아니 지금도 가계를 휘청거리게 할 만큼의 과도한 사교육 비용 탓에 사교육이 마치 악의 축(?)의 대명사인양 취급받아 왔던 게 공공연한 사실이다.

 

ⓒ한겨레신문

 

특히 오늘날 고교 서열화의 형태를 완성시킨 이명박 정부 당시의 사교육 시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마치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팽창을 거듭하며 급속한 성장세를 구가한 것이다.  2007년부터 2010년 사이 학원과 교습소의 숫자가 무려 40% 가까이 늘었다.  서열화된 고교 체계 속에서 내 자식만은 좋은 학교에 보내야겠다는 부모들의 절박한 심정과 이를 교묘히 역이용한 사교육업자들의 이해관계가 절묘하게 교차점을 찾은 셈이다.  사교육 시장이 이렇게까지 커지다 보니 그에 따른 폐해들이 수면 위로 빼꼼히 고개를 내밀지 않을 수 없었을 테다. 

 

 

사교육비가 한 가정의 살림살이를 피폐하게 할 만큼 지대한 영향을 끼쳐오자 정부는 그에 대한 대책을 시급히 마련하고 사교육업자들에 대한 마녀사냥에 나서기 시작했다.  엄격한 규제와 학파라치 제도를 도입, 사교육 업자들을 감시하고, 마치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범법자인양 그들을 몰아세우며, 사교육 광풍의 원죄를 사교육 업자들에게 모두 뒤집어 씌워 버렸다.

 

하지만 사교육 광풍의 이면엔 장삿속의 일부 업자들 농간이 전혀 없진 않았겠지만, 남의 눈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학부모들의 교육 허세 또한 단단히 한 몫 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알다시피 사교육의 선택은 공교육과 달리 순전히 자의적 판단에 의한 자유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지 누군가의 강요에 의한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다.  물론 공교육의 부실에서 기인하는 측면이 없진 않다.  때문에 공교육도 그렇지만 사교육 문제 또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 병폐의 종합선물세트라 생각해도 무방할 듯싶고, 자유경쟁 체제 하에서 사교육시장을 인위적으로 옥죄는 데에도 엄연히 한계가 있을 듯싶다.

 

사교육 효과 거의 없다?

 

그런데 며칠전 '사교육이 성적에 미치는 영향 거의 없다'라는 취지의 기사가 보도되어 눈길을 끈다.  한국교육개발원(KEDI)이 지난 1일 발표한 '종단자료를 통해 본 사교육의 장기적 효과'에 따르면 중등 단계에서의 국어 사교육은 성적과 전혀 상관관계가 없고, 영어와 수학은 매우 미미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좀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 본다면 사교육을 위해 주당 5시간 내지 6시간의 시간 투자와 월 15 내지 20만원 정도의 사교육비 지출이 있어야만 고작 0.5점이라는 영어 수학 성적 상승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국어는 0.05점이란 극히 미미한 상승 효과를 보였으니 상관관계가 전혀 없다고 한들 무리도 아니다.  이와 같은 결과는 사교육을 위해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 봐야 거의 쓸모 없는 행위라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과연 그럴까?  지금부터 이 연구결과에 딴지를 걸어보려 한다.  물론 KEDI의 오랜기간 정성스레 얻어진 연구성과에 태클을 걸 만한 능력과 소양 따위 내겐 전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가지 사회적 현상을 놓고 봤을 때 이들의 연구 결과에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고, 그래서 이렇게 실례를 무릅쓰고자 한다. 

 

'사교육 효과 없다'라는 주장이 공허한 이유

 

우선 지난달 18일 사상 최초로 공개된, 우리 사회 전체를 떠들썩하게 했던 서울대학교 입학자료에 대해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2013학년도 서울대 정시모집 합격자를 서울 지역 일반고등학교만으로 국한시켜 놓고 봤을 때 강남 서초 송파구 등 강남3구 출신이 70%를 차지하고 있으며, 양천과 노원까지 포함할 경우 80%를 넘어선다는, 그야 말로 충격적인 결과 말이다. 

 

ⓒ서울대학교

 

알다시피 강남 지역은 사교육 1번지라 불리는 곳이고, 아울러 양천 역시 준 강남으로 불릴 만큼 교육열이 뛰어난 지역이다.  부동산 가격 또한 이를 따른다는 설이 있을 정도이니 우리의 교육열을 짐작케 하고도 남는다.  그렇다면 노원은?  학원가가 밀집한 노원 역시 교육 특구라 불리며 사교육 과열 현상마저 보이고 있는 곳이다.  이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 걸까?  이들 지역의 공교육 여건이 아무리 좋기로서니 서울대 진학 80%라는 쏠림현상이 사교육의 힘 없이 과연 가당키나 하단 말인가.

 

이뿐만이 아니다.  실질적으로 사교육의 직접적인 소비 주체인 학생들 대부분이 성적 향상에 있어 사교육이 크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전국의 초중고생 9080명을 대상으로 최근 1년간 조사한 바에 따르면 그들의 87.4%가 학원 등 사교육이 성적 향상에 도움된다고 인식하고 있었고, 아울러 부모의 경제수준이 높을수록 사교육을 더 많이 선호하고 있었으며 그의 영향력을 크게 신뢰하고 있었다.  소득 상위층의 사교육 경험률은 82.1%, 중산층 71.4%, 저소득층 41.5%의 순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는 앞서의 서울대 진학 결과와 궤를 함께하는 것이며, 결국 사교육에서마저 부모의 경제력에 의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아무리 사교육 효과가 없다는 통계자료를 들이대더라도 결국 사교육 소비의 당사자들인 학생들 스스로 사교육의 영향력을 인정하고 있는 셈이라 사교육의 효과가 미미하다는 일각의 주장이 과연 설득력을 갖춘 것인지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사교육의 존재와 영향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근거는 또 있다.  경제적 개념으로 바라볼 땐 실은 보완재의 성격이 강하지만, 교육자라는 직업적인 측면에선 사교육과 대척점에 위치해 있는 공교육 선생님들, 이들마저 자신들의 자녀는 사교육에 의존하고 있었다.  '사교육 걱정없는 세상'이 전국 초중고교 선생님 690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벌인 결과 선생님들 대부분이 사교육을 받은 학생들 때문에 수업 진행에 차질을 빚어 고통을 받고 있으면서도 정작 자신들의 자녀들 역시 사교육을 시키는 것으로 조사된 것이다.  무려 93%에 해당하는 선생님들이 동료 선생님의 자녀가 사교육을 시키고 있다고 응답했다.

 

물론 학교라는 직장에 얽매어 있다 보니 여건상 어쩔 수 없어 사교육에 의존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선생님들 스스로 사교육의 영향력을 인정하고 있다는 방증일 테다.  일선 학교의 교사들마저 사교육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교육적 여건이라면 과연 사교육의 효과가 거의 없다라는 주장, 설득력이 있을까?

 

혹여 이번 KEDI의 연구결과가 애초 사교육 절감 시책을 앞세운 정부의 용역을 발주 받아 '사교육의 효과는 없다'라는 답을 미리 정해 놓은 상태에서 그에 꿰맞추듯 이뤄진 결과는 절대 아닐 것이라 생각하고 싶다.  즉 애초 사교육의 무용론을 설파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연구 성과가 아니길 바랄 뿐이다. 

 

아무리 사교육의 폐해가 실존하더라도 어차피 수레가 한 바퀴만으로 굴러갈 수 없듯 사교육 역시 공교육과 함께 맞물려 돌아가야 할 교육계의 운명 공동체와 같은 존재다.  사교육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의미다.  때문에 이를 무조건 좋다고 받아들일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하여 이의 폐해만을 내세우며 마냥 배척할 수만도 없다.  사교육 문제의 해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이를 무조건 때려잡을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 못하는 공교육을 살려내면 된다.  정작 정부가 나서서 해야 할 일은 학파라치 같은 규제 일변도의 사교육 정책이 아닌 바로 공교육을 바로 세우는 일일 테다.  

 

사교육은 받아봐야 효과가 전혀 없어 별로 이로울 게 없다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함인 듯한 이번 연구결과, 하지만 실제 현실 속에서 교육 소비자들이 직접 몸소 느끼는 상황과의 괴리감이 너무 큰 듯하여 그저 공허하게만 와닿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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