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한국사 교과서 수정 명령, 국정교과서 체제 수순밟기?

새 날 2013. 11. 30.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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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뜩이나 더웠던 지난 여름을 더욱 뜨겁게 달궜던 한국사 교과서 논란, 그 발단은 애초 이러했다.  보수 일색 뉴라이트 소속 학자들이 대거 집필에 참여한 바 있는 교학사의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가 지난 8월 30일 국사편찬위원회의 검정 심의를 통과하면서부터다.  이후 해당 교과서는 지나친 우편향과 친일, 독재 미화 그리고 부실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며 보수 진보 양 진영간의 학계는 물론이거니와 정치적인 논란에까지 휩싸이는 양상마저 보여왔다.

 

교육부, 한국사 교과서 수정 명령

 

이에 교육부는 9월 11일 논란이 돼온 교학사 교과서에 대해 재검토에 착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당시 검정 심의를 함께 통과한 8종 모두에 대해서도 재검토하겠노란 방침을 정한 바 있다.  결국 검정심의를 마친 나머지 7종 교과서에 대해 보완 권고를 한 데 이어 29일 이들에게 추가로 수정명령이 내려졌다.  8종 교과서에 권고한 829건의 수정 보완 사항 중 788건을 승인하고, 41건에 대해 수정 명령하는 '수정승인 및 수정명령 사항'을 29일 교육부가 출판사에 통보한 것이다.

 

 

당장 교학사를 제외한 6종 교과서 집필진이 교육부의 수정명령에 반발하며 공동대응에 나섰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의 전면 재검토라는 사안 자체도 이제껏 유례가 없는 사상 초유의 일이지만, 뉴라이트에 의해 각종 왜곡과 오류로 점철된 교학사 교과서로부터 발단된 논란이 애초의 취지와 달리 애꿎은 다른 교과서의 내용까지 덩달아 수정해야 하는 결코 웃을 수만은 없는 사안으로 확대됐기 때문이다.

 

때문에 해당 교과서 집필진들로부터 검인정교과서 제도의 취지를 무색케 하고, 국가가 저작권을 쥔 채 이를 행사하는 국정교과서 체제로의 회귀라는 불만이 터져나올 법도 하다.  더욱이 문제가 되고 있는 건 수정 명령이 이뤄진 면면들이다. 

 

교학사 교과서 수정을 빌미로 한 꼼수

 

ⓒ위키트리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죽다니!' '피로 얼룩진 5.18 민주화운동' '궁지에 몰린 전두환 정부' 등의 표현이 교과서 용어로는 부적절하단다.  남영동 대공분실에서의 서울대생 박종철 씨 고문 치사 행위가 세상에 알려지며 오늘날 민주화의 기틀이 된 87년 6.10 민주항쟁의 출발선이 바로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죽다'란 표현이다.  이 표현 그대로 신문 기사에 실린 바 있다. 



아울러 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전두환이 이끄는 계엄군에 의해 무고한 시민 수천명이 다치거나 사망했으니 광주 도시 전체가 피로 얼룩진 건 너무도 당연한 일, 군홧발로 민의를 짓밟으며 권력을 찬탈한 전두환 정권이 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인해 궁지에 몰리면서 결국 물러나게 된 일 또한 엄연한 역사적 사실일진대 어찌하여 이 표현이 부적절하다고 한 것일까.

 

반대로 교학사 교과서에 대해서는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인 서술을 삭제하도록 명령했단다.  '이승만 대통령이 특별 경찰대 해산을 명령했다고 기자회견했다'란 부분인데, 이는 대한민국 건국 뒤 국회가 친일세력 청산을 위해 만든 특별 경찰을 일반 경찰이 무장해제시키고 결국 반민특위가 해체됐다고 서술한 부분에 해당한단다.

 

교과서 수정명령, 뉴라이트 교과서 통과 위한 무리수

 

이러한 결과는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 있는 걸까?  과거 독재정치를 미화하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더군다나 금번 수정명령을 한 심의위원회의 구성이 어떻게 이뤄진 건지 알려진 바 전혀 없어 절차적 객관성에도 의문부호를 붙여야 할 상황이다.  최대한 공정하게 위원들을 구성했으니 믿어달라는 교육부 차관의 말은 그저 공허하기만 할 뿐이다.  과거의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8년 금성교과서 파동 당시에도 수정 명령을 내린 역사교과전문가협의회 명단이 소송에서 패소하며 공개된 바 있는데, 한쪽으로 편향된 인사들로 구성된 것이 드러나 논란이 일었던 바 있다.

 

결국 교과서 수정명령은 뉴라이트가 만든 친일 역사왜곡 교과서를 어떡하든 통과시켜야 하는 집권세력의 무리수가 빚은 결과다.  검정에 최종 합격했으면서도 교학사 교과서 때문에 생뚱맞게 불똥이 튀어 교과서 내용을 수정해야 한다는 사실도 어이가 없는데,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술한 내용마저도 자신들 입맛대로 바꾸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 정부는 자신들의 생각과 같지 않으면 종북몰이에 줄 세우거나 맘에 들지 않는 사안에 대해선 메스를 마구 들이대고 있으며, 또한 자신들의 이념과 사상을 설파하기 위해 가장 기본이 되는 아이들의 역사 교과서마저 입맛에 맞게 고쳐나가고 있다.  검인정교과서 체제 하에서는 이러한 시도가 어려우니 이젠 공공연하게 국정교과서 체제로의 회귀마저 꿈꾼다.  민주주의는 점차 희미해져가고, 전체주의적 악취만이 진동해 오고 있다.  오호통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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