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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고 학생선발권 유지, 결국 일반고 살리기는 공염불?

새 날 2013. 10. 29.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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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남수 교육부장관은 일반고 슬럼화의 주범으로 일찌감치 자율형사립고(이하 자사고)를 지목했다.  아울러 그가 표적으로 삼은 자사고를 무력화시키고 일반고의 역량을 한껏 끌어올리기 위한 일환으로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방안' 시안을 지난 8월에 발표한 바 있다.  

 

교육부,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 방안 확정 발표 

 

 

그러나 시안을 발표한 지 불과 두 달만인 28일 확정 발표된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방안'에 따르면 자사고의 무력화도, 일반고 살리기도 모두 공염불이 됐다.  자사고의 선발권을 폐지하겠다던 계획은 오히려 선발권을 강화시키며 이명박정권이 완성한 고교 서열화를 더욱 공고히 하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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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애초 8월에 발표된 시안조차도 일반고 슬럼화의 주 원인인 특수목적고와 전국 단위 자립형사립고에 대한 핵심 대책이 빠져, 과연 자사고의 무력화만으로 일반고를 살려내는 것이 가능할까라는 회의적 시각이 지배적이었었다.  그런데 그나마도 원안에서 크게 후퇴하게 된 셈이니, 일반고의 슬럼화가 더욱 가속화되리란 건 불을 보듯 뻔하다.

 

더욱 안타까운 건 이번 방안이 후퇴하게 된 배경이다.  시안이 발표된 직후부터 자사고 교장을 필두로 학부모들의 원성과 비난이 봇물을 이루었다.  자사고 학부모들의 반대운동은 교육부 주최의 공청회마저 무력화시키는 등 극단적인 형태를 띄며 발전해갔다.  지나친 치맛바람이다.  결국 교육부가 이에 굴복했다.  몇 명의 치맛바람에 의해 백년지대계가 급선회될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교육부는 불과 2.6%에 불과한 자사고생과 그의 학부모들을 위해 전체 고교생의 71.5%나 차지하고 있는, 절대 다수의 일반고생들을 희생시킨 셈이다.  이제껏의 교육 정책들이 숱하게 변화를 겪어오며 누더기 마냥 너덜너덜해진 것은 아마도 이렇듯 줏대없는 정책을 일삼아온 교육 당국의 탓이리라.

 

자사고와 이해관계에 놓인 당사자들은 이번 방안으로 오히려 쾌재를 부를 듯싶다.  신입생 선발시 면접 평가를 도입하여 우수학생에 대한 선택이 더욱 수월해졌기 때문이다.  자사고 교장들과 학부모들은 내심 흡족한 듯 표정관리에 나선 모양새다.  이쯤되면 자사고를 무력화시키기는 커녕 날개를 달아준 셈이다.



알맹이가 빠진 방안은 앞으로 특목고-자사고-특성화고-일반고 순의 서열화를 더욱 굳건히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나아가 일반고의 슬럼화 및 고립 현상은 시간이 갈수록 심화될 수밖에 없다.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강화된 고교 서열화의 틈바구니에서 보다 좋은 학교로의 진학을 위해 사교육시장으로 내몰리며 이에 더욱 의존하게 되리란 건 보지 않고도 뻔한 일이다.  일반고의 슬럼화와 고교 서열의 가속화는 결국 사교육시장만을 배불리게 만드는 셈이다. 

 

자사고에 날개를.. 고교 서열화와 일반고 슬럼화 가속

 

한편 일반고 위기의 심각성을 뒤늦게 깨달은 서울시교육청에서도 나름의 정책들을 마련하여 운용해 오고 있다.  특히 문용린 서울시교육감이 새로 부임한 뒤 일반고를 살리겠다며 야심차게 내놓은 정책 하나가 있다.  바로 '교육과정 거점학교'다.  그런데 이 정책, 영어 수학 심화과목 거점학교를 백지화하며 반쪽 정책으로 만들어 놓더니, 그나마 나머지 반쪽인 예체능과 직업교육을 위한 거점학교 또한 예상대로 절반 이상이 정원 미달되는 등 기대 이하의 수준으로 운용되고 있었다. 

 

 

서울시교육청의 '교육과정 거점학교 추진 경과 및 현황' 자료에 따르면 시범운영 학교 21곳 중 11곳이 정원을 채우지 못했고, 예체능 거점학교 13곳 중 7곳은 학생을 재차 모집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실은 이 정책을 내놓기 전 문 교육감이 일반고의 '자율학교 지정 제도'를 먼저 들고 나온 적이 있으나 이 또한 졸속이란 평가 속에 유야무야된 바 있다.  따라서 거점학교 정책은 그의 후속이자 대안이 된 셈이며, 문용린 교육감의 대표적인 정책으로 꼽혀 왔다.  하지만 주도면밀한 검토 없이 허둥지둥 서둘러 만들어진 경향이 강해 진작부터 제대로 자리를 잡을 수 없을 것이란 전망이 컸던 만큼 이러한 결과는 그와 같은 우려를 그대로 드러낸 셈이다.

 

결국 일반고의 슬럼화를 막기 위해 나온 방안들은 일부 이해집단의 압력에 의해 누더기가 되며 껍데기만 남은 채 유명무실한 정책이 돼버려 이를 살려내는 일은 더욱 요원해져 버렸다.  서울시교육청에서 운영하는 기존의 정책들도 졸속으로 이뤄지고 있어 일반고의 부활은 기대 난망인 상황이다.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 방안'은 일반고의 강화 방안이 아닌, 오히려 자사고의 입지를 더욱 강화시켜주는 꼴이 돼버렸다.  애초의 취지와는 정반대의 결과인 셈이다. 

 

고교 서열화와 일반고 슬럼화 현상을 없애는 궁극적인 대책, 결국 고교 체계를 서열화되기 이전으로 뜯어고치는 근본적인 처방 외엔 대안이 없다.  이를 회피하며 두루뭉술 다른 묘수를 찾으려다 보니 자꾸 엉뚱한 결과만 빚어지고 있는 셈이다.  일반고 슬럼화의 주범이 자사고라던 서남수 교육부장관의 패기 넘치던 주장은, 무엇 때문에, 누구에 의해 흔적도 없이 꼬리를 내리게 된 것인지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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