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손병두의 유신시대 찬양, 망령 깨우는 주술인가

새 날 2013. 10. 27.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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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인(公人)은 달리 공인이 아니다.  만인을 위해 공적인 일에 몸을 담고 있으니 행동거지 하나 하나며 말 한 마디조차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해관계가 극명하게 갈리거나 논란의 여지가 있는 사안에 대해선 몸과 마음가짐을 더욱 조심해야만 한다.  

 

고 박정희 대통령 34주기 추도식 거행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이사장이란 직책은 공인에 가깝다.  현직 대통령의 선친과 관련된 직무이기에 조금이라도 돋보이는(?) 행동을 보였다간 자칫 권력의 의중이 반영된 행위로 오해받기 십상이다.  그렇지 않다면 권력을 등에 업은 채 건방떤다며 곡해를 불러올 개연성마저 있다.

 

 

10월 26일은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한 지 34해째 되는 날이다.  이날 오전 국립 현충원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하지 않은 가운데 조용한 추도식이 거행됐다.  다음은 손병두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이사장이 낭독했던 추도사의 일부다.

 

손병두 "간첩 날뛰느니 유신시대가 더 좋았다"

 

우리 서민들은 간첩이 날뛰는 세상보다는 차라리 유신시대가 더 좋았다고 부르짖는다.  최근 국가반란 음모를 꾸민 종북좌파 세력이 적발됐는데 이들을 척결하려는 공권력의 집행을 두고 유신회귀니 하는 시대착오적 망발이 나온다. 

  

아직도 5.16과 유신을 폄훼하는 소리에 각하의 심기가 조금은 불편할 것으로 생각하나 마음에 두지 말라.  서민을 사랑한 각하의 진심을 서민들이 가슴으로 느끼고 있다.  

 

무지한 인간들의 생떼와는 상관없이 대한민국은 조국 근대화 완성의 길로 매진하고 있다.  그 길로 질주하는 따님의 국정지지율이 60%를 넘었다. 

 

오늘은 당신의 따님 박근혜 대통령 정부 아래서 마음껏 당신을 추모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니 당신을 향한 그리움이 더욱 간절하고 사무친다.  당신께서 만들고자 했던 대한민국을 박 대통령과 함께 반드시 건설하겠다.

 

추도사에선 고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 고스란히 묻어 나온다.  정확히 거기까지였으면 다행이었을 듯싶다.  그러나 공인으로서는 무척이나 경솔하다랄 수밖에 없는 발언들을 이내 쏟아냈다.  정치적 반대진영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며, 5.16과 유신의 온당한 역사적 평가마저 그릇된 것인 양 불순한 속내를 그대로 보이고 만 것이다. 



손 이사장이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이사장이란 직책을 갖지 않은 채 개인적인 소견을 밝힌 것이었더라면, 그 또한 '그럴 수 있겠구나' 라며 받아들이고, 또 한 명의 자칭 보수가 권력에 잘 보이기 위해 이상한 소리를 했노라며 제2의 변모씨 내지 정모씨 정도로 치부했을 수 있다.  허나 그의 자리는 그런 직위가 아니다.

 

물론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이사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찬양하는 행위는 너무도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인데, 뭐가 그렇게 문제가 되느냐며 반문할 수도 있다. 

 

대한민국의 살아있는 권력은 박근혜 대통령이다.  현직 대통령의 선친이 고 박정희 대통령이 아니었더라면 이토록 집중적인 관심과 성토가 있었을까?  공인이 살아있는 권력 앞에서 아양떨듯 대놓고 낯 간지러운 발언을 했기에 문제의 소지가 있는 것이다. 

 

고이 잠든 유신 망령 깨우는 주술

 

유신시대가 더 좋았다라는 그의 발언은 섬찟하기까지 하다.  물론 일리는 있다.  일부의 사람들, 유신시대를 분명 그리워하고 있을 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언급했던 서민 대다수는 그렇지 않다.  개인의 권리와 자유마저 마음대로 행사하거나 누리지 못하고 일방통행식의 무소불위 독재권력 밑에서 신음하던 대다수의 서민들, 이를 반겨할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권력의 정점에 서 있거나 그렇게까지는 못되더라도 권력의 일부를 향유하던 이들에겐 너무도 살기 좋고 행복에 겨웠을 유신시대다.  손 이사장 또한 당시 이와 비슷한 부류에 속해 있었는가 보다.  애닲도록 유신 찬양을 부르짖고 있는 모양새가 꼭 그렇다.  서민이란 이름을 함부로 차용하여 유신을 그리워한다고 한 그의 표현, 참으로 저열하기 짝이 없다.

 

이미지 출처 : 구글 검색을 통해

 

5.16은 당시 현역 군인이었던 박정희가 불법으로 군사력을 동원하여 일으킨 쿠데타가 명백하다.  아울러 유신은 이러한 쿠데타로 권력을 쥔 그가 장기 집권을 획책했던 역사적 증거물이고, 이를 통해 국민들의 권리와 자유를 상당 부분 침해했던 것 또한 엄연한 팩트다.  최근 역사 교과서의 왜곡과 같은 자칭 보수세력들의 전방위적인 움직임도 그렇거니와, 역사적 사실 부정이 오히려 시대착오적인 행위가 아니라면 과연 무어라 해야 하는 걸까?

 

손 이사장의 표현을 빌리자면 박정희 대통령의 따님께서 조국 근대화 완성의 길로 질주하고 있단다.  박근혜 대통령, 그래서 제2의 새마을운동을 부르짖고 나섰는가 보다.  조국 근대화를 꾀했던 박정희 대통령의 유업을 그대로 이어받아 마침내 조국 근대화의 완성을 꾀하려 함인가 보다.  

 

그러나 방법과 과정이 크게 잘못됐다.  반대진영에 놓인 사람들을 향해 모두 종북 좌파라 싸잡아 가둬놓고, 부정선거에 대해선 감추기에 급급한 채 부실 수사로 대충 마무리지으려는 시도, 박정희 추모예배와 같은 공공연한 박정희 찬양과 고무, 정치의 기본 정신은 망각하고 대통령의 뜻과 다른 의견에 대해선 철저히 외면하며 불통과 독선으로 치닫는 외통수, 아울러 이젠 대놓고 박정희의 유신시대를 그리워하며 이를 공개적으로 읊어대는 정점에 이른 권력의 오만함, 그야 말로 시대착오적인 발상과 행위 앞에서 할 말을 잃게 하고 만다.

 

손 이사장의 박정희 추도사는 고이 잠든 유신의 망령을 깨우는 주술행위에 다름 아니다.  새마을운동의 부활을 외쳤듯 이젠 제2의 유신시대를 공식 선포하기라도 하겠다는 것이 아닐까 하여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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