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사초 실종, 핵심쟁점은 나몰라라 의혹만 부풀려

새 날 2013. 10. 3.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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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초 실종 사건을 이야기함에 앞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건 하나가 있다.  지난 2008년 이명박 대통령 취임 이후 논란으로 불거졌던 이른바 '국가 기록물 반출 사건'이다.  당시 이 사건은 전직 대통령과 현직 대통령 간의 알력 다툼으로 비화되기까지 했던 기억이 있다.

 

2008년 국가 기록물 반출 사건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8년 퇴임하며 회고록 집필 등을 목적으로 대통령기록관에 이관한 자료와 동일한 내용의 사본을 만들어 봉하마을 사저로 가져갔다.  일명 봉하마을 이지원이다.  당시 이명박정부와 한나라당, 국가기록원은 이를 대통령 지정 기록물 유출 사건으로 규정하고 검찰에 고발했으며, 해당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당시 노 전 대통령 측이 국가기록원에 반납한 봉하마을 이지원과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에 보관된 기록물을 대조 확인한 결과 차이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한편 지난 3월 26일 노무현재단이 대통령기록관을 방문했을 당시 검찰 관할 하에 봉인 절차를 거쳐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에 보관돼온 봉하마을 이지원 시스템의 봉인이 해제되어 무단으로 뜯겨 있었고, 2010년 3월과 2011년 8월 두 차례에 걸쳐 이에 접속한 흔적이 발견됐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검찰, 사초 실종 사건 발표

 

ⓒ중앙일보

 

2일 검찰의 사초 실종 수사 결과 발표에 따르면 대통령기록관에 정식으로 이관된 기록물에는 대화록이 존재하지 않았고 빠져나간 흔적도 없어 애초부터 대화록이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에 이관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국가기록원 보관용으로 만들어진 참여정부시절 청와대 문서관리 시스템 이지원의 백업용 사본(NAS)과 기록 이관에 쓰인 외장하드디스크에서조차 대화록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는 게 검찰의 결론이다. 

 

그런데 대통령기록관에 존재하지 않았던 그 대화록이 청와대 문서관리 시스템의 사본인 봉하마을 이지원에서 발견된 것이다.  아울러 검찰은 봉하마을 이지원에서 대화록의 삭제 흔적을 발견하여 복구했으며, 이곳에서 별도의 대화록 최종본이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참고로 이지원 시스템은 한번 생산된 문건은 절대 지울 수 없도록 설계돼 있다.  즉 문서 삭제 기능이 아예 없는 것으로 확인된 것이다.  

 

풀리지 않은 의혹들, 도대체 왜?

 

봉하마을 이지원은 청와대 문서관리 시스템의 사본이기에 이곳에 대화록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청와대 문서관리 시스템에도 분명히 대화록이 남아있어야 함이 옳다.  그렇다면 청와대 문서관리 시스템과 국가기록원에 대화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아울러 만에 하나 대화록을 실제 폐기할 의도가 있었다면, 국가정보원에 남겨진 대화록도 그렇고, 봉하마을 이지원에 남겨진 대화록마저 모두 함께 폐기됐어야 함이 옳지 않겠는가?  따라서 노무현재단이나 민주당에서 항변하는 바와 같이 일단 노무현정부의 사초 실종에 대한 열쇠는 풀린 셈이다.  어떤 연유 때문인지 알 수 없어 비록 국가기록원에는 대화록이 남아있지 않지만, 어쨌든 대화록 자체는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국가기록원과 청와대 문서관리 시스템에 대화록이 남아있지 않은 이유를 밝혀내야 하는 것이 앞으로 검찰이 풀어야 할 숙제이다.

 

2008년 국가기록원에 반납한 봉하마을 이지원과 국가기록원의 기록물을 대조한 결과 차이가 없었다는 검찰의 결과 발표는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걸까?  당시 검찰의 발표와 지금 발표가 다른 이유를 보다 명확히 밝혀야 할 필요성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또한 삭제 기능이 없는 봉하마을 이지원에서 발견된 대화록 초안 삭제에 대한 원인도 밝혀져야 한다.  이 부분에서 2010년과 2011년 이명박정부 시절 봉하마을 이지원의 봉인이 무단 해제된 채 두 차례의 접속 기록이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황상 정치적 의도가 의심된다

 

검찰이 핵심 논란 부분에 대해선 아직 명확하게 밝혀내지 못한 상황에서 서둘러 수사 결과를 발표한 부분은 작금의 정치적 상황을 고려해볼 때 숨은 의도가 있지 않은가 하는 의구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채동욱 검찰총장 사태와 기초연금 공약 후퇴 그리고 진영 장관의 항명에 따른 인사 파동 등 온통 여권에 불리하게 돌아가는 정국과 10.30 재보궐 선거라는 굵직한 이슈를 눈 앞에 둔 시점이란 사실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예상했던 대로 검찰 수사 발표와 동시에 수세에 몰려있던 새누리당은 물 만난 고기 마냥 야권에 십자포화를 퍼붓기 시작했다.  역시나 그 공세 대상의 중심엔 문재인 의원과 민주당 친노세력이 자리잡고 있다.  언론 또한 이러한 여권의 공세에 적극 팔을 걷어부치고 나선 상황이다.  대화록을 마치 야권에서 의도적으로 삭제한 것처럼 단정짓는 기사 제목으로 모든 매체들을 도배하며 속보 띄우기에 여념이 없다.

 

앞으로 검찰이 풀어야 할 숙제는 산더미 같다.  수많은 의혹과 쟁점에 대한 명확한 결론 없이 중간결과를 서둘러 발표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검찰의 정치 개입에 대한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때문에 이번 사초 실종 사건 또한 시기적으로 판단할 때 수많은 여타 사건들처럼 최종 결과 여부를 떠나, 정치권의 국면전환용 희석제의 용도로 활용하려 하고 있다는 의심을 떨쳐내기가 사실상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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