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박 대통령식 신뢰와 원칙이란, 바로 이런 것?

새 날 2013. 9. 25.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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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지키지 못할 약속은 절대 하지 않겠다. 공약은 반드시 지키겠다" 며 호언장담해오던 박근혜 대통령이다.  본인 스스로도 신뢰와 원칙이란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살아온 터다.  

 

신뢰와 원칙의 대통령, 박근혜

 

덕분에 박근혜 하면 신뢰와 원칙이, 신뢰와 원칙 하면 박근혜가 연상될 정도로 매우 깊고도 강한 인식이 국민들의 뇌리에 각인된다.  그녀에겐 신뢰와 원칙이 커다란 정치적 자산이 된 셈이다.  이러한 그녀의 모습을 쭉 지켜 봐왔던 국민들, 18대 대통령선거에서 기꺼이 그녀를 선택하게 된다.

 

ⓒ경향신문

 

어느덧 취임한 지 7개월이 막 지난 시점, 박 대통령의 탄탄한 지지율처럼 마냥 견고해 보이기만 하던 그녀의 신뢰와 원칙에 거대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것도 단 방향이 아닌 전방위적인 흐름을 보이고 있어 애초 박 대통령 자신이 스스로 언급해온 신뢰와 원칙의 정체가 과연 무엇이었던 건지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상황이다.

 

시험대에 선 박 대통령식 신뢰와 원칙

 

1. 기초노령연금 등 잇따른 공약 파기

 

그중에서도 그녀의 제법 견고해 보이는 성곽의 심장부를 무엇보다 강한 충격으로 타격을 시도하려는 한 녀석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바로 잇따른 공약 후퇴와 파기이다.  가장 최근엔 기초노령연금 공약 축소를 두고 벌어지는 사회적 논란이 거세다.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20만원의 기초연금을 지급하겠다던 호기롭기만 한 공약은 후퇴를 거듭, 결국 지급대상과 지급금액이 동시에 축소되는 절름발이 형태가 될 것으로 전해진다. 

 

이뿐만이 아니다.  4대 중증질환 보장 등 기타 복지분야 공약도 줄줄이 후퇴를 예고하고 있다.  재원 마련을 이유로 들고 있지만, 이는 이미 공약을 들고 나왔을 때부터 예견되어왔던 사안이거늘, 결국 모두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표를 의식한 선심성 공약이었던 셈이다.  비단 복지분야 뿐이겠나.  경제민주화와 권력기관 독립과 같은 공약 등도 벌써부터 줄줄이 후퇴하고 있던 차였다. 

 

2. 국회 선진화법 수정 움직임

 

지난해 대선 후보였던 박근혜 대통령이 주도하고, 여야 합의로 빛을 보게 된 국회 선진화법에 대해, 법안 처리와 국회 운영을 자신들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이유로, 개정 내지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으로부터 불거져나오고 있다.  이를 위한 공론화의 움직임마저 감지되고 있는 상황이다. 

 

날치기와 직권상정, 그리고 국회 내 폭력행위를 근절하고 선진화된 정치문화를 정립하고자 박 대통령이 후보시절 적극적으로 주도하여 만들어놓은 법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하여 다수당의 횡포를 이용, 다시 뒤집어놓으려는 속셈이다.  국회 선진화법은 바로 이와 같은 상황을 막기 위해 박 대통령 자신이 만들어낸 법안이다.  통과된 지 불과 몇 개월 되지도 않은 법을 폐기, 다시 예전처럼 날치기로 법안 처리를 강행하기라도 하겠다는 뜻인가?

 

3. 국사편찬위원장, 뉴라이트 계열 학자 내정

 

뉴라이트 계열의 우편향 교과서 논란을 빚었던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 교육부가 직접 나서 검정 승인된 모든 교과서를 재검토하겠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여전히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그런데 박근혜정부가 이러한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역사 교과서의 검정 승인을 담당하는 국사편찬위원회의 위원장에 대표적인 이승만 미화 역사학자인 뉴라이트 계열 유영익 한동대 석좌교수를 내정한 것이다.  유 내정자는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 집필자인 권희영, 이명희 교수가 이끄는 한국현대사학회의 상임고문이기도 하다. 

 

검정 교과서를 두고 한창 논란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역사 교과서의 검정 책임자인 국사편찬위원장을 이런 인물로 발탁했다는 것은 박 대통령의 역사인식과 의중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며, 결국 교육부장관이 국민들 앞에 직접 나서 발표한 교과서 재검토 약속은 논란을 잠재우기 위한 일시적인 시간벌기용 쇼에 불과했던 것임을 박 대통령 스스로 인증한 셈이 된다.  한 마디로 다 필요 없고 그냥 내 생각과 의지대로 가겠다는 의미이다.

 

4. 흔들리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국민 대통합은 어디로?

 

정부가 자랑해 마지 않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또한 북한의 일방적인 이산가족상봉 연기 통보로 인해 신뢰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최근의 남북관계 개선 성과가 그동안 정부가 지켜온 원칙이 통했기 때문이라며 통일부 광고까지 내보내는 등 자축하는 분위기에 놓여있었으나 다시금 삐걱거리는 대북정책으로 인해 정부는 멋쩍은 상황이 되었으며,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신뢰와 원칙이 과연 제대로 작동하는 것인지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마저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



박 대통령, 취임 일성으로 반드시 국민 대통합을 이루겠노라 약속한 바 있다.  이를 위해선 소통과 배려, 적절한 양보의 미덕이 발휘되어야 한다.  하지만 국민 대통합은 커녕 야당을 무슨 벌레 취급하기 일쑤이고, 급기야 '국민적 저항'에 맞닥뜨리게 될 것이라는 협박성 발언마저 서슴지 않았다. 

 

북한에게 일방적인 굴종을 강요하듯 야당에게도 똑같은 방식으로 굴종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결코 바람직스럽지 않아 보인다.  북한이 이산가족상봉 연기라는 어깃장을 놓게 되자 견고할 것만 같았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조차 쉽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가.  내치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애초 박 대통령의 국민 대통합이란 화두를 꺼내들었던 때와 작금의 행태가 너무도 달라 박 대통령 스스로 신뢰를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는 중이다.

 

박 대통령식 신뢰와 원칙이란?

 

박 대통령,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지지율에 높은 관심 기울여오며, 이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써온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최근 박 대통령의 목소리에 유난히 힘이 들어간 이유 또한 높은 지지율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것쯤 누구든 간파 가능하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강조해온 신뢰와 원칙이 지금과 같이 상식적인 수준을 크게 벗어나게 된다면, 즉 박 대통령식 신뢰와 원칙의 참모습이 실은 작금의 여러 상황들처럼 국민을 기만하거나 실망시키는 모습들이라면, 지지율은 예상보다 아주 쉽게 꺼져내릴 가능성이 있다.  박 대통령에게서 유난히 빛이 나던 신뢰와 원칙, 그렇기 때문에 반대로 빛을 잃게 될 경우 그 효과는 유난히 빛나던 그 이상의 결과를 빚어낼 공산이 크다.

 

사실 박근혜 대통령에겐 신뢰와 원칙의 이미지가 자신의 모든 것일 수도 있다.  현재의 정치적 자산 또한 대부분 이를 통해 축적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의 붕괴는 그녀가 가진 모든 것을 잃는 것과 매 한 가지의 일이 된다.  게다가 임기 초반 한꺼번에 무너진 신뢰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빚을 수도 있다.  무너진 신뢰를 되쌓기란 사실상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박 대통령식 신뢰와 원칙의 민낯이란 게 바로 위에서 언급했던 그런 형태의 것들이라면 정말이지 심히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임엔 틀림없다.  비록 실금이라 하더라도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유리는 결국 잘게 부서져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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